건강검진 결과를 다시 펼쳐보는 밤
신장내과에서 돌아온 날 밤이었다.
식탁 위에 건강검진 결과지를 펼쳐 놓았다.
몇 번이나 읽은 종이인데도 눈은 같은 문장에 멈췄다.
조직검사 권고.
의사는 급한 표정이 아니었다.
당장 큰일이 난 것처럼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단백뇨 수치가 높게 나왔고, 원인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아 주고, 설거지까지 마쳤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신장내과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초록불이 켜졌는데도 몇 사람은 바로 건너지 않았다.
한 남자는 서류봉투를 겨드랑이에 낀 채 신호등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아주머니는 건너편 차선을 한 번 더 살핀 뒤에야 발을 뗐다.
나도 모르게 그들 곁에 남아 있었다.
건너도 된다는 신호와 건너고 싶은 마음은
꼭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모두 잠든 뒤였다.
결과지는 식탁 위에 펼쳐져 있었고 주방 불은 꺼져 있었다.
싱크대 모서리에 물컵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누군가 다시 집어 들겠지만,
지금은 잠시 잊혀진 것처럼.
나는 결과지를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검색창에 단백뇨를 입력했다가 지웠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혹시 하는 마음이 따라왔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때부터 오래된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물셋 가을.
몸에 잘 맞지 않던 정장을 입고 첫 출근을 하던 아침.
겨울이 오기 전 아버지 내복을 사 들고 집으로 가던 저녁.
병실 창가에 앉아 바깥만 바라보던 어머니의 뒷모습.
새벽마다 울던 아이를 품에 안고 거실을 서성이던 밤.
나는 결과지를 보고 있었지만,
정작 펼쳐지고 있던 것은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앞으로만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온라인 게임을 생각했고,
더 넓은 집을 생각했고,
가족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고,
아이의 내일을 걱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건네받은 종이 한 장은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운다.
몸보다 먼저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결과지를 천천히 접었다.
방문 틈 사이로 아이 방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조직검사를 앞둔 어느 밤.
걱정되는 것은 병만이 아니었다.
지나온 날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왔다는 것,
그리고 아직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조직검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조직검사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춘 한 사람이,
스물셋 가을부터 오늘 밤까지의 시간을 다시 펼쳐 보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