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하나 앞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31회 대덕 백일장 참석

by송현준

올해 처음으로 어제

제31회 대덕백일장에 다녀왔습니다.


글제는 세 가지였습니다.

섬, 항아리, 김밥.

도착하자마자 사람들 틈을 지나

곧바로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돗자리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앉았습니다.


괜히 늦게 펜을 들면

마음도 같이 늦어질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글제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섬은 너무 멀게 느껴졌고

김밥은 너무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제 손은 ‘항아리’ 앞에서 멈췄습니다.


가방에서 오래 들고 다니던 노트를 꺼냈습니다.

몇 번이나 접혔다 펴진 자국이 남아 있는 노트였습니다.

익숙한 펜을 쥐고 첫 문장을 쓰는데

주변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사실 원래는 네 살 딸아이와 함께 오려고 했습니다.


처음 장소는 동춘당공원이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백일장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비 예보로 인해 장소가 대덕문화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혹시 비라도 쏟아지면 아이와 함께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에는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혼자였기에 더 오래 문장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일장은 이상한 자리였습니다.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글제를 받아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꺼내놓습니다.


누군가는 섬을 쓰고

누군가는 김밥을 쓰고

저는 항아리 하나 앞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비워 두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