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시와징후
“등단비가 필요합니다.”
예전엔 그런 전화를 꽤 자주 받았습니다.
바카라을 몇 권 구매해야 작품을 실어줄 수 있다는 곳도 있었고,
회원 가입이나 심사비가 필요하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작은 문예지들의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그 방식으로 제 이름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괜한 자존심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시만큼은 돈이 아니라 문장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등단비나 기타 비용이 없는 곳들을 중심으로 아주 천천히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답장은 대부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아내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아이는 제 옆에서 혼자 웃고 있었습니다.
별것 없는, 평범하고 조용한 밤이었습니다.
그때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와징후 편집장입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보내주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10편 중 2편이 이번 계간지에 소개됩니다.”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내한테 휴대폰을 들이밀었습니다.
“봐봐. 이번엔 진짜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진짜 시인 다 됐네?”
저는 괜히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후회하지 말고 지금 사인 받아둬.”
물론 바로 등짝 맞았습니다.
그날은 맥주 거품이 다 꺼질 때까지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다리던 바카라이 도착했습니다.
제 시가 계간지 2026 시와징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온라인카지노였습니다.
“한번 써볼까?”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해서, 이런 실험 저런 실험을 반복하며 문장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신무군산문학상 대상을 받고도 오히려 더 깊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칭찬을 받아도 마음은 공허했고, 글은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심사평을 읽으면서 조금 신기했습니다.
특히 아래 문장에서 한동안 시선이 멈췄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동안, 바람은 파문을 만들고 내 존재는 또 다른 흔적으로 남는다.”
돌이켜보니 저는 예전부터 자꾸 ‘바람’을 쓰고 있었습니다.
신무군산문학상 때도 그랬고, 이번 심사평에서도 다시 바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붙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버리는 마음, 금방 사라지는 표정, 말하지 못한 감정 같은 것들.
바람은 형태가 없는데도 흔적을 남깁니다.
파도를 만들고, 창문을 흔들고, 사람의 마음까지 지나갑니다.
아마 저는 그런 순간들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바람을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심사평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내가 완전히 틀린 방향으로 쓰고 있었던 건 아니구나.’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좋은 문장을 쓰는 날보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계속 쓰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을, 앞으로도 오래 쓰고 싶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