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172년 6월 1일, 날씨: 모르겠음.
아빠는 요즘 나랑 말을 거의 안 한다. 수염도 안 깎고, 세수도 안 한다. 냄새도 난다. 무엇을 할까? 매일 바쁘다. 할머니도 집에 거의 안 온다. 아빠가 오지 말라고 했나? 전화할까? 할머니에게? 그래. 어려운 건 아니지.
“여보세요.”
“할머니, 나. 하진이.”
“웬일이니, 할미에게 전화를 다 하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냥.”
“왜, 아빠와 싸웠니?”
“아빠?”
“그래, 아빠.”
“싸움을 왜 해? 얼굴 보기도 힘들어. 말도 안 해. 요즘.”
“그렇구나.”
“할머니, 혹시 알아?”
“뭘?”
“아빠 말이야. 아빠 요즘 왜 그래? 맨날 뭘 쓰고 있어.”
“할미도 잘 몰라. 할미한테 말 좀 해줘. 아빠가 무엇을 요즘 하는지.”
“왜? 나도 모른다니까. 아빠랑 싸웠어?”
“아니, 할미가 아빠와 왜 싸우니.”
“그런데 왜 몰라? 할머니 아들인데?”
“어른이 되면, 서로 말하지 않는 게 많단다.”
“거짓말, 싸웠는데? 분명히?”
“하진이는 아빠와 싸웠니?”
“아니. 내가 아빠랑 왜 싸워?”
“그런데, 요즘 하진이와 통 말을 안 섞는다며.”
“뭘 섞어? 안 섞는데?”
“그게 아니라, 아빠와 하진이가 말을 안 한다며.”
“그건 아빠 잘못이야. 바쁘니까.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아빠와 하진이도 싸운 게 아닌데, 서로 말하지 않잖아.”
“그건 아빠 잘못이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
“아, 됐어. 할머니랑 말 안 해. 이상한 소리만 하고. 끊어!”
괜히 전화했다. 화가 나네. 아빠랑 왜 싸워? 할머니 바보. 할머니도 모른다. 아빠가 뭘 하는지. 그렇다면 직접 알아봐야지. 오늘 하루 아빠를 따라가야겠다. 학교는? 몰라. 아빠가 나간다.
“아빠.”
무시한다. 큰 소리로 말하자.
“아빠!”
“어, 왜?”
“안 들려? 내가 불렀잖아.”
“미안, 못 들었어.”
“어디가? 세수도 안 하고? 수염은 왜 안 깎아? 양치는 해?”
아무 말도 안 한다. 분명해. 양치도 안 하고, 세수도 안 하고, 수염은 당연히 안 깎는다.
“어디 가냐고.”
“볼 일이 있어. 다녀올게.”
“나 오늘 학교 안 가.”
쾅, 띠리릭. 문이 잠겼습니다.
우 씨, 듣지도 않고? 어디를 급하게 가? 학교를 안 간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오늘은 반드시 알아낸다. 따라가자. 근데 따라가? 버스도 타야 하고 지하철도 타야 하는데? 혼자서 무서운데. 그리고 아빠 나간 지도 꽤 됐는데. 5분이나 지났어. 5분. 그럼 아빠 걸음을 못 따라잡아. 어떡하지? 포기하자. 대신, 아빠 방을 뒤져보자. 아빠 방 앞이다. 아빠, 미안해. 들어갈게. 아뿔싸! 문이 잠겼다. 도대체가! 되는 게 없네! 유민지한테 전화해야지.
“여보세요.”
“하진이.”
“아침부터 전화를?”
“싫어? 그럼, 끊는다.”
“또, 그런다. 왜?”
“외계인, 잠긴 방문 열 수 있어?”
“잠긴 문?”
“응”
“그건 왜?”
“할 수 있어? 없어?”
“있을걸, 아마.”
“오, 대단하군. 집으로 와.”
“너희 집? 이 시간에?”
“응, 이 시간에.”
“학교는?”
“좀 늦게 가면 돼. 싫으면 말고, 끊는다.”
“알았어, 지금 갈게. 오늘 너 이상해.”
후후후, 유민지가 잠긴 문을 열 수 있다니. 생각보다 쓸모가 많은 외계인이군. 대낮에 별도 보여 주고, 유민지는 마법사일지도.
“어서 와.”
“아빠는?”
“몰라, 나갔어.”
“그래서, 잠긴 문이 어디인데?”
“여기.”
“흠......”
유민지는 사각형 바카라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작고 날카로운 반짝이는 저건 무엇이지?
“그게 뭐야?”
“얘들은 몰라도 돼.”
“뭐냐고. 그게.”
“잠긴 문을 열 비밀 열쇠야.”
유민지는 손잡이 중앙에 작은 구멍에 그것을 넣는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한다. 쳇, 그럼 그렇지. 흉내만 네네. 믿은 내가 바보다. 작은 이마에 작은 땀이 송골송골 맺는다. 이제 그만해도 돼. 유민지. 화 안 낼게. 얼굴에 파리가 붙었다. 집중력이 대단하다. 얼굴에 파리가 앉은 줄도 모른다. 그 정도만 해. 미안해지니까.
딸깍.
열렸다.
엄마가 여행 간 후로, 아빠 방에 들어간 적은 없다. 지저분하다. 방 안은 온통 종이다. 흰색 칠판에 빽빽하게 붙은 노란 종이들. 무엇을 적은 거지?
생존, 권리, 존엄, 인권, 자유, 평등, 안전, 자기결정, 행복, 차별, survival, right, dignity, human being, freedom, equality, safety, self-determination, happiness........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빠는 요즘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수북이 쌓인 종이 더미를 본다. 종이 한 장이 바람이 실려 유민지 앞으로 떨어진다. 유민지는 무심코 종이를 집는다.
“Dear, all who cherish human rights around the world,
We are the Depopulist—citizens of South Korea who demand the freedom of human rights,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oday, South Korea is gripped by extreme polarization. Only one answer is allowed. A twisted sense of right and wrong dominates, and any difference is rejected. The government suppresses the rights of anyone who dares to dissent, all under the guise of maintaining order.
We, the Depopulists, are citizens of this nation. We deserve the right to survive. Many of our comrades have shed blood in the fight for freedom and dignity. Even now, as I write, I think of those who cry out against injustice—and my heart aches with tears that will not stop.
Driving out our own people and importing new ones to fuel economic growth is a deranged policy. Whose happiness is this for? The ruling elite of South Korea despise their own impoverished people. They forget that the very force that fed them was the labor of the poor and powerless among their own. In collusion with the government, they plant false hopes of a bright future to confuse and pacify ordinary citizens.
The government boasts of building a utopia through AI. This is a lie. A fabricated dream. That future does not exist. They glorify “Oroneus” the so-called food of the future. But the truth is darker. From the year 2100, every newborn will have a chip implanted in their brain. Every move will be monitored. The watcher? The very “Oroneus” the government praises endlessly. They deny this reality. But we must act now. We must open our minds and remove the wicked chip. We must escape their surveillance. No hospital in South Korea will help. They are complicit.
Join us. We will destroy the chip. In a nation that casts out its own and surveils them through AI, utopia is a cruel joke.
Not long ago, I lost my wife. I still hear her laughter echoing in our living room. She was a Depopulist. She took her own life after enduring government torture. She was an ordinary citizen—not a leader, not a radical. Just one of us, trying to live by her convictions. The government closed the case as suicide due to depression. But she never suffered from depression. I begged for a reinvestigation—dozens, hundreds, thousands of times. The government ignored me. They refuse to hear the voices of ordinary people. They don’t even try.
On June 6th, 2173, at 6:00 p.m., Depopulists from across the nation will gather at C11 for a massive rally. We call on the world to stand with us. This is not just South Korea’s fight. This is your future too.
We, the Depopulists, will act.
Give strength to the Depopulists.
Do not turn away from us.
We will reveal the truth.”
“인권을 사랑하는 세계인에게.
우리는 한국에서 인권의 자유와 자기결정 행복 추구권을 주장하는 디파퓰리스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극단적 양극화로 하나의 정답만 존재합니다. 그릇된 옳고 그름만 존재하여 서로 다름을 배척하는 대한민국.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든 이의 인권을 질서유지라는 명목[691]하에 탄압[692]하는 대한민국.
디파퓰리스트라 불리는 우리도, 대한민국의 시민입니다. 그렇기에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인권의 자유와 자기결정 행복 추구권을 부르짖다 수많은 동지가 피를 흘렸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불의[693]에 항거[694]하여 다름을 외치는 나의 동지를 떠올리면 하염없는 눈물로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자기 민족을 몰아낸 터전에서, 새로운 민족을 수입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발상은 미친 정바카라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행복을 위한 정바카라이란 말입니까?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은 가난하여 힘없는 자기 민족을 혐오합니다. 그들을 배부르게 한 세력이 가난하여 힘없는 노동자인 자기 민족이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들은 정부와 결탁하여 없어도 될, 불필요한 밝은 미래를 심어 평범한 우리의 마음을 혼란하게 합니다.
정부는 AI를 통한 유토피아의 건설로 우리에게 이로움을 선물한다고 자평[695]합니다. 이는 거짓입니다. 이는 날조된 이상[696]입니다. 그러한 미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먹거리인 ‘오로네오스’를 오늘도 자화자찬[697]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는 2100년 출생자부터 머리에 칩을 심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감시자는 정부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오로네오스’입니다. 정부는 한사코[698] 이 사실을 부인합니다. 지금 당장 머리를 열어야 합니다. 사악한 칩을 빼내야 합니다.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한민국 어느 병원에서도 이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들도 공범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세요. 우리가 머릿속의 칩을 파괴하겠습니다. 이방인으로 자국민을 몰아내고, AI를 통해 자국민을 감시하는, 대한민국에서 유토피아는 어불성설[699]입니다.
얼마 전 아내를 잃었습니다. 돌아서면, 거실에서 아내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들립니다. 아내는 디파퓰리스트였습니다. 아내는 정부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700]했습니다. 아내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심지어 디파퓰리스트 내에서 중바카라을 맡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가끔 집회에 참여하는,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려는 평범한 우리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아내는 한순간도 우울증을 겪은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재조사해달라고 수십 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호소했습니다. 정부는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묵묵부답[701]으로 일관[702]합니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말을 무시합니다. 들으려 노력조차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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