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6: #아방가르드-햇살로 그린 달빛, 4화

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by카테난조

땀·물방울·소름 따위가 살갗이나 표면에 잘게 많이 돋아나 있는 모양.



Episode6:

#아방가르드-햇살로 그린 달빛, 4화






11. 2172년 9월 17일, 날씨: 살랑살랑


그렇게나 더웠는데, 온통 빨간 세상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잠자리가 보인다. 그것도 여러 마리다. 어린 잠자리의 날갯소리가 들린다. 사락사락. 뺨을 살포시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린다. 살랑살랑. 세상은 점점 하늘색으로 변해 간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빨갛다. 유민지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 개학 후, 벌써 칠 일째다. 첫날은 그럴 수 있다. 매일 학교에 오는 게 싫증 나니까. 그래서 가끔 늦게 학교에 간다. 짜증이 난다. 전화를 해 볼까? 내가 왜? 화가 난다. 오늘은 따진다.[707] 왜 안 나오는지를.


“선생님, 유민지 무슨 일 있어요? 오늘도 학교에 안 나오나요?”

“민지? 민지는 당분간 학교에 오지 않을 거야.”

“왜요? 왜 안 나와요?”

“나도 모르겠어.”

“선생님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하진아, 왜 그렇게 화가 났니?”

“화 안 났는데요.”

“궁금하면 민지에게 전화를 해봐.”

“제가요? 유민지한테요? 왜요?”

“그래도 해 봐. 둘이 친하잖아.”

“제가요? 유민지하고요? 아닌데요.”

“둘이 안 친해? 늘 함께잖아.”

“선생님, 정말 모르시네요. 저는 유민지를 싫어해요.”

“싫어한다고? 매일 웃고 있으면서.”

“누가요? 제가요? 웃어요? 유민지랑 있을 때?”

“하진이만 모르고 다 알걸.”

“선생님! 아니라고요! 유민지는 외계인인데! 납치할지도 모르는데!”

“그래, 그래, 선생님이 미안해. 하진이와 민지는 서로 안 친해. 맞지?”

“맞아요, 우린 안 친해요. 아시겠죠?”

“선생님이 꼭 기억할게. 그래도 생각나면, 전화해 봐. 민지가 하진이 전화를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기다린다고요? 제 전화를? 왜요?”

“하진이는 안 친해도, 민지는 항상 웃으면서 말했어. 하진이와 제일 친하다고.”

“유민지가요? 그럴지도요. 하긴, 유민지는 저 말고 친구가 없어요. 하하하”

“그러니까, 마음 착한 하진이가, 전화하면 민지는 분명히 기뻐할 거야.”

“흠, 전화를 해 볼까요?”


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 뚜르릉.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뭐지? 다시 해 보자.


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뚜우, 뚜르릉.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전화를 안 받는다. 예전에는 바로 받았는데.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연한 분홍색을 띤 까끌까끌한 고무찰흙을 만지는 느낌이다. 엄마가 떠났을 때도. 아빠가 나를 못 본 체했을 때도 비슷하다. 유민지에게도 비슷한 마음이다. 이상하다. 유민지! 유민지! 유민지! 혹시 내가 비밀을 말했을까 봐? 그래서 학교에 안 나와? 진짜 하늘에 약속해.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그러니까 학교에서 보자. 심심해. 네가 없으니.


“아빠, 유민지 아빠랑 친해?”

“친하냐고? 뭐, 그렇지. 친하지.”

“아빠는 알아?”

“뭘?”

“유민지가 학교에 안 나오는 이유. 들은 것 없어?”

“민지가 결석[708]한다고? 전화는 해 봤니?”

“결석? 그게 뭐야? 민지가 결석을 왜 해?”

“그니까, 아빠 말은, 학교에 안 나온다고?”

“응, 벌써 칠 일째야.”

“일주일이라, 전화는?”

“전화를 안 받아. 그러니까 아빠한테 따지잖아.”

“따진다고? 어른에게 그런 말 쓰면 안 돼.”

“왜? 따지는 게 왜? 친구끼리 자주 쓰는데?”

“어른한테는 쓰면 안 돼. 무슨 뜻인지는 알고 쓰는 거니?”

“뭐, 화도 나고.......짜증도 나고......궁금도 하고.......심심도 하고.......자꾸 생각도 나고...... 이때 쓰는 말?”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구나. 아빠는. 그러니까 하진이 마음이 지금 그렇다고?”

“응, 그래서 아빠한테 따지는 거야.”

“하진아, 그럴 때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아니고.”

“‘민지가 걱정됩니다.’라고 말해야지.”

“걱정한다고? 내가 유민지를? 왜? 진짜, 아빠는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해. 그래서, 유민지는 왜 안 나오냐고.”

“아빠가 알아볼게. 아빠는 어제도 만났어.”

“누구를? 유민지를?”

“아니, 유민지 아빠를.”





아빠는 유민지 아빠와 친하다. 그러니 매일 만나지. 다 큰 어른이 매일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 엄마가 있으면, 아빠는 혼날 텐데, 그것도 엄청.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하루빨리 여행에서 돌아와야 하는데. 엄마! 빨리 와! 아빠가 점점 이상해져. 우리는 엄마가 있어야 해. 몇 살부터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하루하루 사진을 펑 찍은 것처럼 그려진다. 엄마·아빠는 모른다. 그래서 가끔 한꺼번에 많은 사진이 머리에 뿌려진다. 꽉 뭉친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빠도, 할머니도, 요즘은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엄마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아침밥도 먹고, 점심밥도 먹고, 저녁밥도 먹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난 아닌데. 엄마가 여행가던 그날도, 내게는 오늘인데.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엄마가 떠난 그날은 항상, 내게는 오늘인데.


“하진이랑 같이 안 가?”

“엄마 혼자 가야 해.”

“아빠랑도?”

“응 아빠랑도.”

“그래서 어디가?”

“비밀이야.”

“엄마와 하진이는 비밀이 없다며?”

“그렇지. 그런데 오늘은 비밀이야. 하진이가 엄마를 좀 봐줘.”

“봐달라고? 어디를 보라는 건데?”

“아니, 엄마 말은 혼자 가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진짜 혼자 가? 슬슬 화가 나려고 하네.”

“하진이 화가 나?”

“화나 나. 혼자 있어야 하니까.”

“이따가 하진이가 좋아하는 ‘뿅뿅촉’ 사 올게.”

“진짜? 뿅뿅촉?”

“그럼, 진짜지. 하지만, 이번에만 먹는 거다. 몸에 안 좋아.”

“신나는데! 엄청! 아빠도 안 사 줘. 절대로.”

“몸에 안 좋다니까. 불,량.식.품.”

“학교에서 유행이야. 그리고 불량은 아닌데? 멀쩡해. 그리고 다 먹으면, 보물이 나와.”

“보물? 그게 뭘까?”

“뭐긴 뭐야, 무적 반지지.”

“무적 반지? 그것으로 뭘 하는데?”

“엄마는 그것도 몰라? 한국에 10개만 있는 무적 반지를? 그것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어.”

“무엇이든지?”

“응, 무엇이든지. 뭐라더라, 어른이 되면, 그런데, 몇 살부터 어른이지? 그래서, 무적 반지를 보여줘야 해. 거기가 어디더라......., 그런데, 나도 사실은 몰라. 진짜인지도. 그게 뭐 중요해? 뽑는 게 중요한 거야. 엄마. 내 말을 알겠지? 그리고, 무적 반지를 뽑은 친구를 본 적은 없어. 거의 안 나와. 그래서 마구마구 사야 해.”

“어린이의 마음을 이용하는, 정말로, 나쁜 불.량.식.품.이네.”

“엄마, 멀쩡하다니까. 자꾸 불량이라네. 약속했다! 꼭 사 와!”


엄마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눈을 감는다. 셋만 셀 거다. 그리고 눈을 뜨면, 비닐봉지에 ‘뿅뿅촉’를 가득 담아 온, 엄마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나, 둘, 셋!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눈을 뜬다. 엄마는 없다. 다시 눈을 감고 눈을 뜬다. 엄마는 없다. 엄마를 기다린다. 아니다. ‘뿅뿅촉’을 기다린다. 무적 반지의 주인을. 나는 아니다. 엄마가 안 사 오니까. 엄마가 안 오니까. 엄마는 그곳이 그렇게 좋을까? 하진이도 잊을 만큼. 무적 반지의 주인이 되면, 엄마의 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너무 너무나. 화가 난다.





12. 2172년 10월 8일, 날씨: 푸덕푸덕


유민지는 거짓말쟁이. 오늘도 학교에 오지 않는다. 거짓말쟁이! 전화도 안 받는다. 정확하게 486번이다. 486번. 486번. 거짓말쟁이! 화가 난다. 아주 많이. 나를 잊은 걸까? 유민지도 여행을 떠난 걸까? 엄마처럼? 왜! 도대체 왜! 다들 여행을 가는데! 나만 두고! 마지막으로 전화한다. 진짜 마지막이다. 하긴, 매일 다짐했는데, 486번을 했네. 그래도 오늘은 정말 마지막이다! 487번째의 전화다. 오늘도 안 받으면, 정말 끝이다. 끝이라고! 알겠어? 유민지!


“여보세요.”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린 익숙한 목소리, 유민지다. 머리가 뜨거워진다. 이마에 땀이 뾰루지처럼 올라온다. 심장은 갑자기 빠르게 뛴다. 등은 셀 수 없는 땀의 지뢰밭이다. 가을인데도, 빠르게 옷은 젖어간다. 초능력이 생겼나? 주위는 느리게 움직인다. 이게 뭐라고.

“여보세요? 최하진?”

“유......민지?”

“응.”


‘응.’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어제 통화한 사람처럼? 넌 그게 돼? 정말 화가 나네. 티를 낼 수는 없지.


“응.”

“왜?”


‘왜?’? 왜겠어! 그동안 뭐 하느라 학교에 안 나온 거야?


“괜찮아?”

“응.”


‘괜찮아?’라니? 얼마 만에 통화하는데, 제대로 안 해? 최하진! 그나저나 왜 이리 어색해? 짧게 답만 하고. 화가 났나?


“화났어?”

“아니. 내가 왜?”

“아니면 말고.”

“할 말 없으면 끊어. 나 바빠.”


‘나 바빠.’라고? 서로가 친한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487번째야. 487번째. 알아? 전화를 안 받으니 몰랐겠지! 왜 그렇게나 했냐고? 화가 났으니까! 왜? 화가 왜 났지? 그런 건 모르겠고! ‘나 바빠.’라니!


“야, 유민지.”

“내가 ‘야’라고 하지 말랬지?”

“야! 유민지!”

“왜! 최하진!”

“야! 야! 야! 야!”

“귀청 떨어지겠네. 작게 말해도 잘 들려.”

“487번째라고, 487번째.”

“그게 무슨 소리니? 487번?”

“그런 게 있어. 너...... 학교 이제 안 와?”

“왜? 보고 싶니? 호호호”

“보고 싶냐고? 내가? 왜? 절대로. 아니.”


좀 세게 말했나? 그러니까 갑자기 보고 싶냐는 이상한 걸 묻는 거야? 그래도, 걱정했다고 말해야 했나?


“흠, 그래? 왜 전화했어?”

“선생님이 전화하라고 해서. 한번 해봤어.”


왜 자꾸 삐딱하게 말하는 거냐. 마음과 다르게 말을 이상하게 한다. 유민지가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을까 봐 조마조마하다.


“선생님이? 단지 그뿐? 그런데, 이상하다. 선생님께는 이미 다 말씀드렸는데.”

“말했다고? 선생님은 전혀 몰라. 사실, 생각도 안 할걸?”

“무슨 말이니?”

“유민지, 너한테 관심[709]도 없다고.”

“오, 최하진, 관심이라는 단어도 알고. 똑똑하네.”

“나 바보 아니다. 놀리지 마라.”

“그럼 넌?”

“나? 뭐?”

“관심이 있냐고. 유민지에게.”

“관심? 너에게? 뭐.....”

“솔직하지 못하긴. 그래서 왜 전화했어?”

“말했잖아. 선생님이 전화하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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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낮에는 한글을 쓰며 밤에는 카테 잉글리시 영어작문을 가르치는 “하키토브”와 "나는 B급 소피스트입니다."를 집필한 안정호입니다. 많은 이와 즐거운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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