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안녕하세요, 업데이트가 늦습니다. 집필은 꾸준히 진행 중인데, 현생업이 바쁘다 보니, 온라인카지노로 옮기는 게 쉽지가 않네요. 고온다습한 계절입니다. 제습기, 약냉방 그리고 Julie London의 노래를 들으며 심신을 차분하게 이어갔으면 합니다. 모두 건강유의하시고요. 시작합니다.
4. 2172년 4월 15일, 날씨: 콧물.
엄마가 없는 날이 이어진다. 하늘은 참 높다. 손을 쭉 편다. 하늘에 손이 닿지 않는다. 떠다니는 구름을 만지고 싶었는데. 아빠가 그랬다. 엄마는 구름을 타고 여행 중이라고. 구름을 타면 엄마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쁜 구름을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꼭 엄마가 타고 있을 것 같으니까. 콧물이 흐른다. 엄마한테 혼나겠네. 엄마가 콧물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하진아, 아파?”
“.......”
“최하진? 안 들려?”
“.......”
“최. 하. 진!”
하하하, 유민지를 화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유민지 목소리만 안 들려.”
“으휴, 못 산다. 정말.”
“유민지, 왜 못 살아? 아파?”
“으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말을 어떻게 말아? 동그랗게?”
“최. 하. 진.”
“재미있지? 하하하.”
“속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하고, 콧물 좀 닦아.”
“속이 터진다고? 펑! 이렇게?”
“하진이가 오늘따라 왜 그럴까? 왜 심술일까? 이리로 와봐.”
“왜?”
유민지의 손이 내 이마에 닿는다. 아뿔싸! 당했다. 이렇게 복수를 하나. 아, 아리송해, 아리송하다고! 손 치워! 아리송한 느낌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얼굴은 왜 벌게져?”
“유민지, 네가 공격하니까 그렇지.”
“으휴, 열이 좀 있네. 약은?”
“약? 요즘 아빠가 바빠. 엄마가 여행 간 이후로 매일매일 바빠. 우리 아빠 이상해.”
“여행...... 그래도 약은 혼자 챙겨야지. 그 정도도 못 해?”
“뭔 상관? 갑자기 유민지 목소리가 안 들린다.”
“따라와. 잔말 말고.”
유민지의 손이 내 손에 닿는다. 아뿔싸! 당했다. 아, 아리송해. 아리송하다고! 왜 손을 잡는데! 날 어디로 끌고 가려고! 악마 유민지! 그런데, 유민지의 손은 이렇게나 따뜻하고 부드럽구나. 엄마 손도 그랬는데. 유민지와 엄마는 참 닮았네.
“안녕하세요.”
“어린 아가씨가 약국에는 무슨 일로?”
“제 친구가, 열이 좀 있어요. 콧물도 좀 나고요, 감기 초기 증상인 것 같아요.”
“친구 누구? 아, 옆에 있는, 손을 꼭 잡은 아이?”
“네, 이름은 최하진입니다. 그리고 저는 유민지입니다.”
“똑똑한 아이구나.”
흰옷을 입은 아줌마가 다가온다. 이마에 손을 댄다. 아뿔싸! 당했다. 도대체 유민지나 아줌마나, 허락도 없이 왜 만지는 거야.
“왜 이러세요?”
“열이 있는지 봐야지.”
“안 아프다고요. 콧물만 흐른다고요.”
흰옷을 입은 아줌마가 봉투에 무언가 담아준다. 그리고 유민지에게 무언가를 말한다. 난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여자친구가 많이 챙겨주네.”
“여자친구 아닌데요. 우리는 서로 원수라고요.”
“알고 있니? 여기에 들어온 이후로 민지의 손을 쭉 잡고 있는데? 원수라면서? 원수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유민지가 복수 중인데요.”
“무슨 복수?”
“손잡기 복수요. 유민지가 손을 잡으면 느낌이 아리송해지니까요.”
“아리송해?”
“두근두근하고. 땀도 나고. 간지럽기도 하고. 아무튼, 뭐, 이상해요.”
약국을 나와서도 우린 손을 맞잡는다. 유민지는 이상하다. 손을 놔주지 않는다. 왜 이렇게도 날 싫어할까?
“손을 놔.”
“네가 빼면 돼.”
“그래도 되는 거야?”
“응, 네가 그러고 싶으면.”
“정말 뺀다.”
“응, 네가 그러고 싶으면.”
뺄 수 없다. 커다란 눈망울이 내게 던지는 말은 입으로 전한 말과 달라서다. 빼면 다시는 놀지 않는다. 빼면 아는 척 안 한다. 빼면 우리 사이는 끝이다, 등. 등. 등. 그런데, 왜 겁을 먹지? 친구 안 하면 되잖아. 다시는 안 놀면 되잖아. 앞으로 아는 척 안 하면 되잖아. 그러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데......
엄마는 날 버렸어.
유민지도 날 버리는 거야?
그건 싫어.
죽기보다 싫다고.
“왜 안 빼?”
“에헴, 그냥 복수해.”
“무슨 복수?”
“손잡기 복수. 그래, 그래, 내가 당해준다. 마음씨 좋은 내가 당해준다고.”
“나. 원. 참.”
5. 2172년 5월 3일, 날씨: 바람.
살랑살랑 아기 바람이 내 앞을 스친다. 바람을 타고 고사리손만 한 작은 나뭇잎은 춤을 춘다. 바람을 타볼까? 하지만 어렵다. 내가 무겁다. 텔레비전에서 아빠 바람은 집, 자동차, 나무, 사람 등을 태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한 곳만 오래 머물면 지겹다. 그래서 바람은 우리를 태워 다른 곳으로 보낸다. 바람을 타고 훌쩍 날아가면 좋겠다. 엄마도 아빠 바람을 타고 여행 중일까?
“아빠, 엄마는 언제 와?”
“......”
“아빠, 오늘 준비물 사야 해.”
“무슨 준비물?”
“아빠, 엄마는 언제 와?”
“......”
“아빠, 오늘 선생님이 칭찬했어.”
“그래? 대단하네, 우리 아들.”
“아빠, 엄마는 언제 와?”
“......”
아빠는 엄마 이야기만 하면, 입을 다문다. 엄청 커다란 자물쇠를 채운 입이다. 다른 이야기는 다 하면서, 왜 엄마 이야기는 안 하는지 모르겠다. 벌써 몇 개월째다. 엄마는 긴 여행 중이다. 오늘은 엄마가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야겠다. 반드시.
“아빠, 엄마는 언제 와?”
“......”
“말해줘. 엄마는 돌아와?”
“......”
“말해달라고! 말해달라고!”
“하진아.”
“응, 아빠, 말해줘. 엄마는 언제 와?”
“엄마는...... 사실, 아빠와 헤어졌어.”
“헤어져? 나도 유민지랑 헤어지고 다음 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 다시 만나.”
“그런 게 아니야. 엄마와 아빠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더는 돌아오지 않아.”
“왜? 하진이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엄마한테 말해 줘. 내가 말 잘 듣는다고. 다시는 엄마 화나게 안 한다고. 응?”
“그런 게 아니야.”
“아빠가 엄마를 화나게 했어?”
“맞아, 아빠가 엄마를 화나게 했어.”
“빨리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 엄마가 화가 풀릴 거야.”
“엄마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너무 멀리 여행을 떠나서? 거기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그래, 하진아. 엄마는 너무나 먼 여행을 하는 중이라, 아빠 전화를 받기가 어려워.”
“그 여행은 언제 끝나?”
“모르겠어. 아빠도.”
“여행이 끝나기는 해?”
“그것도 모르겠어.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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