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1.
2172년 3월 7일, 날씨: 구름
오늘 짝꿍을 만났다. 나보다 큰 여자아이다. 무섭다. 엄마 말고는 여자는 처음이다. 그 큰 여자가 다가온다.
“안녕, 유민지야. 네 이름은?”
이름을 말해야 하나? 못 들은 척하고 등을 돌려야지.
“안녕, 선생님이 우리가 짝꿍이래. 내 이름은 유민지, 너는?”
무서운 여자다. 등을 쿡 찌르면서 또 말을 건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과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하기 싫어.”
“왜?”
“엄마가 모르는 사람하고 말하지 말랬어.”
“어머, 지금도 말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이른다. 우리 엄마 대따 세.”
“그래?”
“응.”
“그래서 네 이름은 뭐라고?”
“우리 엄마 대따 세다니까?”
“그래, 너희 엄마 엄청 강해. 이름이 뭐야?”
“안 가르쳐 줘.”
“왜? 엄마한테 혼나서? 겁쟁이네, 호호호.”
“씨, 나 겁쟁이 아니야.”
“그럼 이름을 알려줘.”
“최하진.”
무서운 여자다. 엄마를 안 무서워한다. 이따가 엄마가 오면 다 말할 테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센데. 다 죽었어, 유민지.
“아빠? 엄마는?”
“엄마는 오늘 바빠. 그래서 아빠가 왔는데, 분위기 왜 이래?”
“엄마가 더 센데..... 아빠는 약해.”
“응? 아빠가 이겨, 엄마는 아빠한테 져.”
“거짓말, 맨날 엄마한테 혼나면서.”
“아빠가?”
“응, 아빠가.”
“섭섭하네. 모처럼 아빠가 데리러 왔는데, 반가워하지도 않고.”
“아빠.”
“응, 하진아, 말하렴.”
“아빠 진짜 세?”
“그럼, 아빠 진짜 세.”
“그럼, 쟤 좀 혼내 줘.”
걸어오는 유민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넌 이제 죽었어.
“안녕, 넌 누구니?”
“안녕하세요, 유민지입니다. 하진이 짝꿍입니다.”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이게 아닌데?
“아빠, 혼내라니까?”
“왜?”
“쟤 이상해. 엄마를 안 무서워해.”
“참, 하진이도.”
“혹시 하진이가 괴롭혔니?”
“아니요, 하진이가 짝꿍이라 좋아요.”
“그래? 하진이가 수줍음이 많아. 잘 부탁해. 예쁜 공주님.”
“아빠! 쟤는 공주가 아냐! 아빠는 왜? 엄마한테도 공주라고 부르고! 모든 여자는 다 공주야?”
“하진아, 무슨 소리니, 하하하”
누군가 이쪽으로 온다. 어른 남자다.
“어? 선배?”
“어이, 너는 웬일? 아, 너도 여기야? 그나저나 여기 살아?”
“저번 주에 이사했어요.”
“그래?”
“네, 저도 공주님 데리러 왔지요.”
어른 남자는 이상하다. 다 공주라 부른다. 여자를.
“아빠, 오늘 늦었어요.”
“응, 아빠가 미안해. 우리 공주님.”
“민지가 네 딸이야? 아이가 너무 예쁘고 똑똑하네. 우리 아들과 비교하면.”
“그렇죠? 너무 예쁘죠. 그런데, 너무 빨리 컸어요. 빨리 크지 않아도 되는데.”
“아, 제수씨...... 아, 미안하네.”
“아닙니다. 지난 일입니다.”
유민지는 아빠라 불리는 어른 남자의 손을 꼭 잡는다.
“아빠, 하진이가 짝꿍이에요.”
“하진이? 누구지?”
“하하하, 내 등 뒤로 숨은 아들 녀석이야.”
“아 선배님 아들이 하진이에요? 이거 신기하네요.”
“그러게, 이렇게 또 인연이 이어지네.”
2.
2172년 3월 20일, 날씨: 비
주룩주룩. 주룩주룩. 온종일 비다. 느낌이 안 좋다. 유민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승진이랑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언제 둘이 그리 친했대? 얄밉다. 싫다. 유민지. 동갑이면서 누나인 척은.
“오늘 하진이는 왜 시무룩해? 누나한테 말하렴.”
“누나 아니면서.”
“뭐? 잘 안 들려, 하진아.”
“됐다. 너랑 말 안 해.”
“오늘 너무 툴툴거리네. 안 좋은 일 있어?”
“됐다. 너랑 말 안 해. 승진이에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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