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무서운 엄마, 개가 귀여운 딸

by소시야 서새미

열 걸음이 100m 같던 길

찬바람이 부는 가을날이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그 개들이 있는 집 앞만 지나가면 되는 열 걸음 남짓한 길이 그날은 100m보다 멀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다섯 집만 건너면 교회었는데, 교회 바로 앞집에서는 개를 키웠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습니다.

멀리서부터 컹컹 짖는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쿵쿵 뛰었고, 손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발은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개들이 집 안쪽에 있는 날은 겨우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한 걸음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날엔 꼭 엄마 손을 붙잡고서야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개에게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린 마음에는 '개는 무서워'라는 생각이 단단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곰처럼 커다란 개

어른이 되어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노크를 했는데 대답이 없어서 문을 살짝 밀고 들어섰습니다. 그 순간 곰처럼 커다란 개가 불쑥 나타나 제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섰습니다. 저도 모르게 "엄마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주인이 나와 "멍멍아, 그만!" 하자, 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번에도 물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저는 아무리 작고 귀여운 강아지도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교회 가는 길에서 심어진 두려움에, 어른이 되어 겪은 그 순간이 한 번 더 못을 박은 셈이었습니다.


엄마의 두려움을 배운 아이

결혼하고 딸이 태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자란 딸도 자연스럽게 개를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무서워하니까 나도 무서운 것'이 당연한 배움이었던 것입니다. 제 두려움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딸의 한마디가 내 심장을 멈추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고모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습니다. 고모 댁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있습니다. 다녀온 딸은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중 강아지를 안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 무섭지 않아?"

딸이 대답했습니다.

"강아지 안 무서워."

그 한마디에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제가 평생 넘지 못한 벽을 딸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딸은 자연스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만져 본 강아지

얼마 뒤 딸과 함께 공원에 갔다가, 귀여운 강아지와 산바카라 나온 분을 만났습니다. 딸은 망설임 없이 강아지를 쓰다듬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도 만져 봐."

가을 하늘 아래 포근한 날씨였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습니다. 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아주 살짝, 손끝으로 강아지를 만졌습니다. 꿈틀거리는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습니다.

'아, 안 무섭네.'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엄마가 자신처럼 강아지를 만지는 모습에 함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이렇게 작고 귀여운 강아지는 나를 위협하지 않는데. 그 작은 경험 덕분에 저는 한 번, 두 번 강아지를 만져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극복 중입니다

저는 아직 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큰 개는 여전히 무섭습니다. 주인이 잡고 있는 강아지를 살금살금 만져 보는 정도이고, 직접 안아 보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개에게 물린 적이 없습니다. 위협을 느꼈던 경험만으로도 두려움은 이렇게 오래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엄마의 두려움을 보고 배웠지만, 직접 겪은 좋은 경험으로 그것을 지웠습니다. 두려움은 배워서 생기기도 하고, 경험으로 다시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딸이 보여 주었습니다.


트라우마, 꼭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굳이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극복하고 싶다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좋은 경험을 쌓아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두려움 때문에 일상이 힘들 정도라면, 혼자 애쓰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트라우마는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있다면 아주 작은 용기를 내어 보면 어떨까요? 저의 '살짝 만져 보기'처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저마다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