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가 참 불편합니다. '한계'라는 말이 좋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한계에 부딪혀 시도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한계를 다르게 말합니다.
"가스나가 말대꾸하노"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가스나가 말대꾸하노." 그 말을 자주 들으며 자라다 보니 '나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한계를 정해 두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것이 제 삶의 기본값이었습니다.
도전이 아니라 시도였다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제 삶에는 도전보다 '시도'라는 말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육일지와 관찰일지를 쓰다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은, 는, 이, 가' 같은 조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았고, 읽을 때도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을 만회해야 했고, 그래서 그림동화바카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화를 읽다 보니 문장 속에서 조사가 어떻게 쓰이는지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와 주말에 하는 공부였지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 조금씩 삶의 스케줄을 채워 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헤쳐 나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시도하면서 제 삶이 다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잠 5시간, 몸이 알려준 한계
하루 공부 분량을 정하고 시간을 채워 가다 보니 가장 어려운 한계는 수면 시간이었습니다. 하루 5시간을 자지 못하면 몸이 아팠습니다. 두 번 앓고 나서는 무조건 5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먼저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집안일을 나누고, 딸과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고, 공부 시간을 배정했습니다.
시간을 쓰는 법을 발견하는 기쁨
내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최대한 소화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새로웠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가장 쉽게, 시간을 잘 쓰며 해내는 방법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나물 반찬을 장만하는 데 1시간이 걸린다면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사 먹고, 고기는 구워 먹기로 했습니다. 딸은 빨래를 널고, 남편은 설거지를, 저는 청소를 맡기로 정했습니다.
딸과 약속한 20분
제가 배울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참여와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딸은 엄마가 바카라 읽는 걸 싫어했습니다. 바카라에 빠져 불러도 대답이 늦었기 때문입니다.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응" 하고 대답은 해도 하던 걸 멈추고 딸에게 가는 반응이 느렸던 것입니다. 게다가 딸과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 시간, 때로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그래서 너랑 대화하려면 시간을 정하면 좋겠어. 오늘은 20분만 얘기해도 될까?"
딸은 "좋아" 하고 대답했고,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자,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얘기해 줘."
알람이 울리면 딸도 대화를 마무리하고 엄마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주는 평화가 참 좋았습니다. 저는 한 명이고, 그런 저를 적절히 조절하며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나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중
제 한계는 온라인 게임 생활,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 그리고 나를 찾고 알아가는 배움으로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 한계를 내려놓고 여유로운 삶 속에서 늙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늙는다는 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같은 날들, 약 봉지가 매일의 일상이 되는 삶입니다. 조금 움직였으면 한참 누워 뒹굴거리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편안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벼가 익어 가듯이 사람도 늙어 가며, 그때 느끼는 한계를 누리는 삶이 됩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한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계는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나를 알고 돌보게 해 준 길이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