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인은 상사에게, 며느리는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돈이나 명예 때문에 힘든 경우도 있지만, 가장 흔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를 아프게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다. 같은 말도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데, 나에게는 가시처럼 박힌다.
상사가 "10년 차나 돼서 그것도 못 해?"라고 했을 때,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옆자리 동료는 달랐다. "10년 차지만 저는 그거 하기 싫어요. 제가 싫어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담담히 받아치는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연차가 쌓였으면 다 잘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 연차에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상사의 감정 섞인 말을 고스란히 받아 안은 채, 나는 그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몸으로 앓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누구는 이걸 잘하고 누구는 저걸 잘한다. 사람마다 고유한 자질이 있다. 무지개가 여러 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 몸의 눈이 눈의 역할을 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가장 아프게 한 편견이었다.
나는 쉬고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성향이다. 아프면 일단 자고, 푹 쉰 뒤에 기도하며 생각에 잠긴다. 뇌가 쉬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제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웃어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쉬고 생각한 뒤에 답을 찾는 사람이다.
내 딸은 정반대다. 얼마 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데, 퇴근 후 한 시간 가까이 내게 상황을 쏟아내며 말로 풀어냈다. 그러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 된다. 속으로 삭이는 나와는 참 다른 모습이다.
말로 푸는 사람, 마음속에 묻어두는 사람, 맛있는 걸 먹는 사람, 여행을 떠나는 사람.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다만 그 스트레스가 나를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가장 약한 곳이 먼저 아프다. 한 차례 앓고 나면, 다시는 그렇게 아프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그렇게 몸으로 배운 나만의 방법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파가며 터득한 방식이다.
나만의 시간에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정해진다.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것을. 내가 해야 할 것은 하면 되고,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것일 뿐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의 감정까지 내가 다 바카라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실컷 하고 나면 기분이 풀리고, 그제야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조금은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