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앞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

by소시야 서새미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시선은 눈이 향하는 길, 눈의 방향을 뜻합니다. 비유적으로는 주의나 관심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여러분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나요?


시선이 두려웠던 사람

저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시선을 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누가 한마디 하면 받아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말을 못 하거나 버벅대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화가 나거나 주눅이 들면 말문이 막힙니다. 그러다 한 번씩 독한 말을 툭 던지고 맙니다.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었기에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왜 나는 이럴까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까르르 웃으며 자유롭게 어울릴 수는 없을까요?


사과 한 쪽에 담긴 기억

제게는 오래된 아픔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가끔 "가시나가 왜 말대꾸를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고 아들을 으뜸으로 여기신 분이라, 어린 저에게는 억울한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집에 사과가 하나 남은 날이었습니다. 가장 큰 쪽은 남동생에게, 그다음 사분의 일은 여동생에게 돌아갔습니다. 남은 것을 할머니와 제가 나누었고, 제 몫은 팔분의 일 조각이었습니다. 그 작은 조각을 손에 쥐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말대꾸를 하면 또 "가시나가 왜"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억울해도 입을 닫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서운함을 말로 꺼내 본 경험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모이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그 시선이 두려운 이유를 따라가 보면, 결국 사과 한 조각 앞에 앉아 있던 그 아이에게 시선이 멈춥니다.

동료와 일대일로 이야기할 때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모인 작은 모임에서는 지금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양파 같은 사람

9년 5개월째 한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지인의 고백입니다. 1년 전쯤 새로 온 상사가 지인의 동료에게 "아직도 저 사람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면, 그 색이 분명히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지켜봐도 쉽게 구별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자기 색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 크고 작은 이유로 시선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것이겠지요.


작은 변화의 시작

"시선을 받아도 어울릴 수 있다면 좋겠다." 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한마디가 제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사람이 되자'였습니다. 재미있게 말하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고, 『아부의 기술』이라는 바카라을 펼쳤다가 다 읽지도 못하고 덮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작은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 점심시간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다음 주 점심은 직접 소고기국을 끓여 대접하겠다며, 아내가 한 말은 "파는 것보다 맛있다고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집사님, 기대할게요. 다음 주엔 아침밥을 조금 적게 먹고 와야겠어요" 했더니, 옆에 계신 분이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와야 정확한 맛 평가를 하죠" 하며 웃으셨습니다. 저도 "맞는 말씀이에요. 다음 주가 정말 기대됩니다" 하고 함께 까르르 웃었습니다. 지금도 다음 주 점심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우리는 모두 시선을 의식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시나요? 안 쓴다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신경을 쓰며 삽니다. 문화와 관습, 체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일입니다. 여름에 털신발을 신고 오는 아이, 겨울에 반소매 옷을 입고 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 옷이 예뻐서 입었고, 엄마는 따라다니며 입지 말라고 하셨지요. 저는 "어머님, 그냥 두세요. 스스로 느껴야 제대로 입을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는 그날 하루 고생하더니 다시는 그렇게 입지 않았습니다. 문화도, 날씨도 함께 작용한 일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의 시선, 남들의 시선보다 자기 마음에 먼저 귀를 기울였던 셈입니다. 저도 그 아이처럼,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느끼며 배워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시선 앞에서 자유로우신가요?

저는 아직 시선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작은 모임에서는 여전히 조금 긴장하고, 화가 나거나 주눅이 들면 말문이 막히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선을 받을 때 '내가 뭘 잘못했나?'를 먼저 떠올리던 제가, 이제는 '이 자리가 어떤 즐거움을 줄까?'를 생각해 보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점심시간에 소고기국 이야기로 함께 까르르 웃던 그 순간처럼, 시선은 때로 나를 판단하는 눈이 아니라 함께 웃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방향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나요? 혹시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 입을 닫고 계신다면, 오늘은 작은 농담 한마디로 먼저 말을 건네 보시면 어떨까요?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웃음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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