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이제 퇴직하고 나이가 들다 보니 "건강하다"라는 말보다는 "안 아픈 곳이 없다"라는 말이 더 낯익다.
젊은이들과는 반대로, 퇴직하고 인생의 60대가 되면 흔히 말하는 건강하다는 것은 약을 먹으면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거의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라는 말과는 차이가 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존심이 센 사람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르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존중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달라진다.
건강한 자존감은 나를 존중하되,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내 모습 중에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얼굴에 점이 있거나 못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정말 어렵다.
건강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어떤 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현실을 잘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 이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일까?
나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존감이란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아니다. 무너진 뒤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이다.
나도 퇴직이 결정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강한 자존감으로 퇴직을 받아들이기까지 내 마음에는 비참함과 억울함, 절망감이 차례로 찾아왔다. 그러다 나중에는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그런 중에 퇴직하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고, 그만큼 나를 찾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퇴직이 내 삶의 전부를 끝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아내가 남편을 두고 한 고백이 마음에 남았다.
"그 사람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에요."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함께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어쩌면 한 개인의 존엄성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빛나는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가.
이것을 잘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쿠션처럼 잘 받쳐 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힘들 때 곁에서 받쳐 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교차로에서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 기다리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열심히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며 우리의 건강한 자존감을 높이고,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세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높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어쩌면 나를 아프게 하면서 성장시킨 사람도 있고, 나를 격려하며 성장시킨 사람도 있다. 나에게 '다름'을 알려 준 사람도 있다.
나는 예전에는 사람이 모두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서로 잘 맞고 편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소장님과 원장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도 있다.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분들이다.
다름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움이 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건강한 자존감은 혼자 스스로 만들어 낼 수만은 없다. 주변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누군가의 격려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통해 내가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면,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은 '후' 하고 불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과 격려, 배움과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영향력을 받아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건강한 자존감은 부족한 부분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빛나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건강한 자존감을 높여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러분은 힘들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지금의 여러분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여러분은 누군가의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