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by소시야 서새미

AI 시대,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

2026년 7월, 나는 'AI 교육, A to Z' 과정을 들었다.

정작 그 여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 건, 인공지능의 원리도 최신 기술도 아니었다. 그 과정을 안내해 준 한 담당자의, 아주 작은 태도들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딸처럼 곱고, 미소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처음 등록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그랬다. "네네네~" 하고 밝게 답하며, 언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하나하나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다정함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 아침, 9시 수업에 1분 늦었을 뿐인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준 적이 있었다. 별일 아니라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배려가 참 고마웠다.

교육 사진을 찍어야 하는 그 담당자는 "조금만 서 줄 수 있을까요?" 하고 조심스레 부탁하여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되물었다.

"조금만 서면… 이렇게 서면 될까요?"

그 짧은 대화 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었던 시간, 무더위조차 잊게 할 만큼 따뜻했다.


옛말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녀가 건넨 말들은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늦음을 탓하기보다 먼저 걱정해 주고, 작은 부탁에도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작은 말 한마디들이 쌓여, 낯선 교육장을 '함께'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지금 AI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고, 인간의 질문에 답하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나는 이번 교육을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하게 깨달았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존중의 말투'라는 사실이다.

AI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기다려 주지는 못한다. 답을 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봐 주지는 못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겸손한 말, 존중하는 태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AI 시대일수록 이 기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이 아무리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 준다 해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AI를 배우러 갔지만 결국 사람을 다시 배웠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그리고 그 존중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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