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성 갤러리 개관 특별전 현장이 문화재청 사범단의 현장 급습으로 아수라장이 된 지 사흘이 지났다.
인사동과 종로 일대의 고미술 거리는 온통 이 대형 스캔들로 번뜩이고 있었다. 언론은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의 위작 및 신분 세탁 의혹'을 대서특필했고, 인터넷과 뉴스 채널은 강민우 수석 감정위원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카르텔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질겼다.
"결국 보석으로 풀려났군요."
신교동 한옥 사랑채. 윤서진 조사관이 서류 봉투를 마루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이빨을 악물었다.
그녀의 눈 밑에는 피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문화재청 상층부와 대형 로펌, 그리고 정경계의 거물들이 연쇄적으로 움직이면서 강민우에 대한 현장 감정 보류 신청은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고, 압수된 불화와 서첩에 대한 정밀 감정 역시 태성 갤러리 측에 우호적인 외부 감정위원단으로 재배정되어 버린 상태였다.
"권장생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원로 감정단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윤서진이 기사 스크랩을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지방 사찰 불화와 서첩의 표면에서 검출된 화학 안료 반응은 '현대적 보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쓰인 보존제 성분'일뿐이며, 3년 전 매장당했던 전직 보수사 서한별이 사적 배신감과 공명심에 눈이 멀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발표했어요."
서준은 툇마루 기둥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 시야는 이제 완벽한 검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남은 왼쪽 눈마저 시야의 절반 가까이가 검은 먹구름으로 먹혀 들어간 상태였다. 서준은 고개를 깊게 비스듬히 기울인 채, 남은 아주 미세한 시야의 조각으로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윤 조사관님."
서준의 목소리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놈들은 십수 년 동안 돈과 권력으로 감정위원회의 입을 사들였고, 미술품의 신분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교전권을 쥐고 있습니다. 서류 몇 장과 기자회견 따위로 무너질 탑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대로 두면 서준 씨의 입지만 더 악화돼요! 문화재청 내부에서도 서준 씨를 수사 기관에 고발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있단 말입니다."
"놈들이 진짜 노리는 건 따로 있습니다."
서준이 천천히 손을 들어 스승의 오래된 가죽 가방을 감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딱딱하게 굳은 장인의 손. 비록 시력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지만, 안목이 개안한 이후 그의 촉각은 비단 결 하나, 안료의 입자 하나까지 몸으로 기억해 내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강민우와 태성 갤러리가 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으면서까지 시간을 버는 이유…… 그것은 조만간 있을 태성그룹 100주년 경매에 올려질 '진짜 대작' 때문입니다."
"진짜 대작이요?"
윤서진이 눈을 크게 떴다.
"감은사 불화와 이원익 서첩은 놈들의 거대한 세탁 공정에서 나온 작은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놈들의 진짜 목적은 수백억 원의 가치를 지닌 국보급 유물을 가짜로 낙인찍어 유출하거나, 그 반대로 완벽한 위작을 국보로 대체하여 대기업 비자금을 세탁하는 거대한 거래입니다."
서준은 품 안에서 황 노인이 피신하기 직전 몰래 전해주었던 조그만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황 어르신이 인사동 지하 시장에서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태성 갤러리가 비밀 수장고에 은닉해 두고 있는 또 다른 유물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금동관과, 조선 초기의 미공개 회화 한 점."
서준은 남은 왼쪽 눈의 희미한 시야로 윤서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수장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수장고라니요? 태성 갤러리의 비밀 수장고는 최첨단 보안 장치와 경호원들로 가득 찬 구역이에요! 저조차 사범단 정식 수색 영장 없이 진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영장은 필요 없습니다."
서준의 손끝이 대나무 칼날 위를 스쳐 지나갔다.
"놈들이 자진해서 문을 열게 만들 겁니다. 강민우는 지금 자신의 완벽했던 위작 공법에 제 손끝이 닿았다는 사실에 지독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서준은 마루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력이 가물거려 휘청거렸지만, 윤서진이 부축하기도 전에 자신의 의지로 기둥을 짚고 단단하게 바로 섰다.
세상을 보는 두 눈은 점점 어둠 속에 삼켜지고 있었지만, 거대한 거짓의 탑을 무너뜨릴 청년의 손끝은 그 어느 때보다 시리도록 매섭게 다듬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