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준의 예상은 정확했다. 강민우는 불안에 짓눌려 있었다.
자신이 만든 완벽한 위공법의 결을 서준이 손끝 하나로 간파하고, 배접지 속 깊이 숨겨두었던 음각 낙관까지 짚어냈다는 사실은 민우의 자존심이자 약점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아무리 언론과 로펌을 동원해 사건을 무마했더라도, 그 ‘손끝의 안목’이 살아있는 한 카르텔의 신분 세탁 시스템은 언젠가 완벽하게 파탄 날 수밖에 없었다.
사흘 뒤 밤, 종로구 신교동 한옥 사랑채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서준 씨! 태성 갤러리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범단 사무실에서 방금 돌아온 윤서진 조사관이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태성 갤러리 법률 대리인 명의로 도착한 공식 서한이 쥐어져 있었다.
"강민우 위원이 비공식 자리를 요청했어요. 태성 갤러리 지하 비밀 수장고에 보관 중인 고려 시대 '금동관'과 조선 초기 회화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서준 씨가 주장하는 '위작 의혹'이 사실인지 정밀 감정으로 끝장을 보자는 겁니다."
"독약이 든 성배로군요."
서준은 툇마루 구석에서 찌그러진 대나무 칼을 무명천으로 매끄럽게 닦아내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함정인 걸 알면서도 가시겠다는 건가요? 수장고는 사복 용역들과 최첨단 보안 장비로 가득 찬 폐쇄 구역이에요. 서준 씨를 비밀리에 압박하거나, 또 다른 누명을 씌워 철저히 매장하려는 속셈입니다!"
"그곳이 아니고서는 놈들이 세탁하려는 진짜 유물들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눈은 완벽한 검은 정적에 삼켜져 있었고, 남은 왼쪽 눈마저 시야의 절반 이상이 먹구름처럼 까맣게 먹혀 들어간 상태였다. 이제 서준은 고개를 깊게 비스듬히 꺾지 않으면 사물의 형태조차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민우 형은 제 '안목'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을 겁니다. 자신이 세운 가짜의 탑이 제 손끝에 무너질지, 아니면 제 눈이 먼저 완전히 멀어버릴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겠죠."
서준은 가죽 가방을 단단히 어루만졌다. 두 눈을 가린 가혹한 어둠 속에서도, 손가락 마디마디는 스승의 보수 공구와 안료의 무게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날 한밤중, 강남 태성 갤러리 지하 3층 비밀 수장고.
육중한 특수 강철 문이 나지막한 이음새 소리를 내며 열리자, 습도 50%, 기온 18도로 완벽하게 통제된 차갑고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유리 수장관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미공개 국보급 유물들이 정갈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수장고 한복판,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주황색 비단으로 싸인 거대한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강민우가 명품 정장 차림으로 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 뒤로는 태성 갤러리 사복 용역 수십 명이 위압적인 기세로 서준과 윤서진을 둘러싸고 있었다.
"제 발로 지옥문을 열고 들어왔구나, 서준아."
강민우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숙인 채 겨우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서준의 비참한 자태를 바라보며 비틀린 실소를 흘렸다.
"오른쪽 눈은 이미 완전히 멀었고, 왼쪽 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불쌍해서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겠다. 그런 눈으로 대체 뭘 확인하겠다는 거냐?"
"형이 숨겨놓은 진짜와 가짜의 결이지."
서준은 윤서진의 부축을 고의로 뿌리치고,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대리석 테이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강민우는 비단 상자 하나를 열어 내부의 유물을 노출시켰다.
천년 세월의 녹이 퍼렇게 앉은 고려 시대의 '금동관(金銅冠)'. 그리고 그 옆 상자에는 인물들의 옷주름과 산수가 오롯이 남아 있는 조선 초기의 미공개 인물화 한 점이 깔려 있었다.
"이 금동관과 인물화는 이번 태성그룹 100주년 특별 경매의 메인 출품작이다."
민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문화재청과 국내 최고의 원로 감정단이 검증을 마친 완벽한 진품이지. 서한별,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도 이 유물들의 신분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서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대지 마라!"
경호원 하나가 서준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강민우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두어라. 어차피 눈도 보이지 않는 놈이다. 저 앙상한 손가락으로 어디 한번 마음껏 주물러 보라지."
강민우의 오만한 눈빛 너머로, 미세한 불안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다.
서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천년 세월의 청동 녹이 앉은 금동관 표면에 살며시 다가섰다.
'읏……!'
손끝이 금동관의 측면, 미세한 입자 층에 닿는 순간 뇌수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거대한 안통(眼痛)이 몰아쳤다.
남아있던 왼쪽 눈의 희미한 시야마저 사정없이 뒤틀리며 칠흑 같은 어둠이 서준의 눈앞을 덮쳐왔다. 마지막 남은 시력마저 모조리 깎여 나가는 처절한 대가.
그러나 서준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파앗――!'
온몸의 신경 세포가 찢어지는 듯한 전율 속에서, 다섯 번째 '안목(眼目)'이 서준의 손끝에서 사납게 피어올랐다.
금동관 표면을 덮고 있는 푸른 청동 녹. 그것은 세월이 만든 정직한 산화막이 아니었다. 특수 질산 용액과 수지 봉합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청동 녹을 입힌 현대식 화학 부식 공법이었다.
그리고 그 진품 금동관의 원래 껍데기는 이미 잘려 나가 해외 밀반출용 궤짝에 담겨 있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진품의 틀을 그대로 떠서 만든 완벽한 도금 모조품이었다.
서준의 손끝은 이어 조선 초기 인물화의 비단 표면으로 옮겨갔다.
'스스스…….'
비단 결의 밀도와 안료의 침투 깊이. 손끝을 관통해 들어오는 감각은 완벽한 진품의 숨결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그 진품 인물화의 우측 하단, 낙관이 찍혀 있어야 할 공간에 칠해진 미세한 배접 풀의 밀도에서 소름 돋는 카르텔의 수법을 읽어냈다.
"이 금동관은 정교하게 부식시킨 가짜 도금품이고…… 이 조선 초 인물화는 진짜다."
서준의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정적에 휩싸인 지하 수장고 안을 갈랐다.
강민우의 얼굴이 순간 흙빛으로 질려갔다.
"하지만…… 이 인물화의 낙관 부위에는, 3년 전 수장고에서 사라졌던 스승님의 개인 인장(印章) 흔적이 지워진 채 덧칠해져 있더군."
서준이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 갇힌 두 눈으로 강민우가 서 있는 방향을 똑바로 지목했다.
"민우 형. 넌 스승님이 평생 보관하시던 유작과 개인 수장품까지 빼돌려 태성 갤러리의 비자금 세탁용으로 매각하고 있었던 거야."
지하 수장고 안의 공기가 얼음처럼 차갑게 동결되었다.
강민우의 매끈했던 표정이 완전히 짓뭉개지며, 자본의 탈 뒤에 숨겨두었던 최후의 추악함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