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민우의 오만한 경고가 서늘한 복도벽을 타고 차갑게 튀어 올랐다.
서준은 고개를 살짝 기운 채, 남은 왼쪽 눈의 시야 조각으로 강민우의 매끈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한때 같은 수장고 바닥에서 무릎을 맞대고 아교를 개던 동문.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이제 화려한 명품 정장과 자본의 오만함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포장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널 버리신 게 아니야, 민우 형."
서준의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복도의 정적을 잘라냈다.
"스승님은 네가 자본의 더러운 돈맛에 들려 안료의 정직함을 버렸을 때, 이미 깊은 슬픔 속에서 눈을 감으셨다. 넌 장인의 손을 버리고 사기꾼의 손을 택한 거야."
"입 닫아라!"
강민우의 얼굴이 순간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여유롭던 표정 뒤에 숨겨진 추악한 본성이 마침내 균열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민우는 서준의 야상 점퍼 깃을 거세게 낚아채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네가 뭘 안다고 입을 놀려?! 스승님의 그 고지식한 장인 정신이 뭘 지켜줬는데?! 300년 된 고지를 구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병원비가 없어 약 한 알 제대로 쓰지 못할 때 그 정직함이 돈 한 푼 내어주더냐?!"
강민우의 눈에 실핏줄이 씨뻘개 서며 이빨을 악물었다.
"세상은 정직한 보수 따위엔 일절 관심이 없어! 오직 화려하게 포장된 국보의 이름에만 수십억을 던진다! 난 스승님이 평생 들였던 그 기술로 이 미술계의 정점에 섰어. 네놈처럼 어두운 골방에서 시력이나 잃어가는 가난한 환쟁이 따위가 날 가르치려 들지 마라!"
서준은 점퍼 깃이 틀어잡힌 채로 가만히 민우의 떨리는 눈동자를 응시했다.
민우의 말속에 숨겨진 뼛속 깊은 결핍과 분노. 그 역시 한때는 정직하게 붓을 쥐던 장인이었으나, 가난과 세상의 무관심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삼켜져 스스로 카르텔의 악마가 되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품을 도륙하고 동문의 삶을 짓밟은 죄가 사해질 수는 없었다.
"형의 그 가짜 화려함 아래, 내 손끝이 무엇을 읽어냈는지 아나?"
서준이 조용히 손을 들어 강민우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오랜 세월 물을 다루고 삼포를 갈아내어 딱딱하게 굳은 서준의 장인 손가락이 민우의 손목 마디를 사정없이 쥐어짜자, 강민우의 미간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감은사 불화의 연화대 구석, 그리고 이원익 서첩의 바탕지 틈새. 형이 덧칠해 놓은 그 가짜 안료 밑바닥에 형의 특수 배접 풀과 '민(民)' 자 음각 낙관이 그대로 숨어 있더군."
강민우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 이럴 리가……! 그건 겉면을 파내지 않고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부위인데……!"
"형은 내 안목(眼目)이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서준은 민우의 손을 차갑게 쳐내며, 가방을 어깨에 고쳐 메었다.
"난 내 두 눈이 온통 검은 어둠으로 덮이는 한이 있더라도, 형이 그어놓은 가짜의 먹선들을 세상 앞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까발릴 거다. 그게 스승님이 내게 남겨주신 마지막 배접 칼의 무게다."
"서한별…… 너 이 새끼……!"
강민우가 분통을 터뜨리며 복도 벽을 고통스럽게 짚었을 때, 전시장 입구 쪽에서 신교동 한옥에서 헤어졌던 문화재청 조사관 윤서진이 사범단 조사원 둘을 동반하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강민우 위원님. 문화재청 사범단 윤서진 조사관입니다."
윤서진이 수사 협조 요청서를 강민우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태성 갤러리가 오늘 출품한 <이원익 친필 서첩> 및 고려 <관음보살도>에 대해 위조 및 불법 신분 세탁 혐의로 정밀 감정 보류 및 현장 조사 명령이 내렸습니다. 본인과 감정팀 전원은 지금 즉시 조사에 응해 주십시오."
전시장은 순식간에 수십 대의 취재진 카메라 플래시와 관람객들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강민우는 흙빛이 된 얼굴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당황하는 경호원들과 취재진의 포위망 너머로, 서준은 가방을 멘 채 천천히 뒤를 돌아 전시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남의 차가운 빌딩 숲 위로 서산의 노을이 핏빛으로 짙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서준의 오른쪽 눈 시야 전체를 가로막은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왼쪽 눈마저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시야 속에서, 빌딩의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들이 가뭇없이 뒤틀려 보였다.
눈은 점점 어둠 속에 갇혀가고 있었으나, 서준의 손가락 끝에는 가짜들의 세상에 단단한 균열을 낸 정직한 빛깔이 시리도록 뜨겁게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