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친 발길질에 찌그러진 철제 문이 사정없이 흔들릴 때마다, 천장 가득 쌓여 있던 아교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서준의 머리 위로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문 열어, 이 새끼야!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사복 용역들의 고함이 낡은 목조 계단을 울렸다.
서준은 오른쪽 눈의 절반을 가로막은 검은 어둠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며, 작업대 위에 누워 있는 관음보살도를 재빨리 챙겼다. 그는 스승에게 물려받았던 오래된 가죽 공구 가방에 불화와 대나무 칼, 그리고 방금 확인한 강민우의 음각 낙관이 찍힌 배접지 조각을 밀어 넣었다.
'쾅! 쾅!'
경첩이 뜯겨 나가며 문이 벌컥 열리기 직전, 서준은 표구실 구석, 황 노인이 일러주었던 작은 환기창 겸 뒷문으로 몸을 던졌다.
손바닥과 무릎이 음습한 바닥을 쓸며 생채기를 냈지만,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서준이 어두운 골목길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지하 표구실 안쪽에서 가구가 뒤엎어지고 집기가 깨져 나가는 요란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어라? 놓쳤다! 뒷문이다! 잡고 불화부터 챙겨!"
골목을 울리는 용역들의 발소리를 뒤로한 채, 서준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혜화동 미로 같은 골목길을 향해 내달렸다.
시야의 우측이 어둡게 꺼져 있어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벽에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눈앞이 아지랑이처럼 어지러웠지만, 가슴 품에 끌어안은 가죽 가방의 묵직한 감촉만이 그를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몇 시간 뒤, 종로구 신교동의 고요한 한옥 골목 안쪽.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는 조그만 단층 한옥의 사랑채 마당에는 은은한 솔향과 마른 한지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서준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채 툇마루 구석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황 노인의 소개로 겨우 피신해 들어온 이곳은, 문화재청 사범단 소속 말단 조사관 '윤서진'의 사가(私家)였다.
"이게 태성 갤러리 용역들이 목숨 걸고 찾던 그 불화란 말이죠?"
마루 중앙에 찻상을 놓던 윤서진이 턱으로 서준의 가방을 가리켰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각진 뿔테 안경을 쓴 서진은, 문화재청 내부에서 독종으로 불리는 젊은 여성 조사관이었다. 타협을 몰라 상부의 눈밖에 난 채 변두리 조사직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고집과 감식안만큼은 서준조차 혀를 둘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단순한 불화가 아닙니다."
서준의 목소리는 낮고 피곤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려 말에 그려진 희귀 괘불탱 위에, 현대산 주사 안료와 아교를 덮어씌워 100년 된 삼류 사찰 불화로 위장해 둔 물건입니다."
서진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뒤틀렸다. 그녀는 서준의 허락을 받고 가방에서 관음보살도를 꺼내 마루 위에 넓게 펼쳤다.
"……말도 안 돼. 겉면의 이 조잡한 단청 밑에 진짜 고려 불화의 결이 있다는 건가요?"
서진이 주머니에서 특수 루페(돋보기)를 꺼내 불화 표면에 바짝 대었다. 서준이 대나무 칼로 파내었던 연화대 하단, 붉은 안료가 벗겨진 자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서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진짜네요…… 안쪽 비단의 밀도와 먹선 궤적이 조선 시대의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이 주초석 안료 층 틈새에 숨겨진 먹선…… 이 낙관은 태성 갤러리 강민우 위원의 고유 낙관이잖아요?"
서진이 루페를 거두며 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각진 안경알 너머로 경악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이글거렸다.
"서준 씨. 당신, 3년 전 수장고 사건으로 매장당했던 그 서한별 보수사 맞죠?"
서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서한별'은 그가 3년 전 누명을 쓰고 매장당하기 전 쓰던 본명이었다.
"……그 이름은 버렸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남의 족자나 때를 벗겨주는 이름 없는 표구사일 뿐입니다."
"거짓말 마세요!"
서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청 사범단 내부에서도 3년 전 <경교명승첩>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당신이 왜 그런 조잡한 현대 안료로 위작을 만들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불화에 쓰인 수법과 강민우의 낙관이 사실이라면, 3년 전 사건도 태성 갤러리와 강민우가 짜고 당신에게 덮어씌운 거라는 건가요?"
"진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서준이 자신의 가늘고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상은 이미 저를 횡령범이자 위작범으로 기억하고 있고, 놈들은 거대한 자본과 권력 뒤에 숨어 있습니다. 문화재청조차 놈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믿어요!"
서진의 단호한 목소리가 한옥 마당의 정적을 사정없이 깼다. 서진은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비단으로 싸인 오래된 바카라자 하나를 꺼내 서준의 앞에 놓았다.
"이건 조선 초기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선생의 친필 서첩(書帖)입니다. 문중에서 문화재 지정을 위해 신청이 들어온 물건인데, 감정단에서는 이원익 선생의 친필이 아니라 후대의 완벽한 '모사본'이라며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제 직감을 믿어요. 이 글씨 뒤에 무언가 숨겨져 있습니다."
서진이 서준의 손을 지그시 바라보며 절박하게 입을 열었다.
"서준 씨. 당신의 그 전설적인 손끝으로 이 서첩을 한 번만 봐주세요.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태성 갤러리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려면, 저 같은 조사관의 공식적인 기록과 당신의 완벽한 보수 증거가 함께 필요합니다."
서준은 윤서진이 내민 이원익 선생의 서첩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눈의 시야 구석을 가리고 있는 검은 먹구름 잔상이 또다시 아찔하게 진동했다. 한 번 더 안목을 쓰면 왼쪽 눈마저 시력을 잃어갈 것이라는 지독한 경고가 뇌수를 찔렀다.
그러나 윤서진의 정직하고 간절한 두 눈, 그리고 서첩 배접지 너머로 번져 나오는 은은한 고지의 묵향(墨香)이, 서준의 가슴속 깊이 침전되어 있던 장인의 정직한 피를 다시금 뜨겁게 내뿜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