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빛 (觸光)》

소설

by산들강바람


第3章 : 그림자 속의 낙관 (陰刻) — [後半部]


황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일어섰다.


"내 자네 고집을 무슨 수로 꺾겠나. 하지만 조심하게. 인사동 바닥에 태성 갤러리 용역 놈들의 눈통밥이 쫙 깔렸어.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가게 뒷문으로 피해야 하네."


황 노인은 지하 표구실 문을 굳게 단속한 뒤,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거두지 못한 채 목조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다시금 지하 골방에는 음습한 묵향과 아교 냄새, 그리고 죽음보다 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준은 숨을 가다듬고 작업대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오른쪽 눈 시야의 가장자리를 가리고 있는 검은 먹구름 잔상이 신경을 자극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돋보기를 눈에 대었다. 관음보살도의 하단, 300년 전의 진품 비단 결이 드러난 그 조그만 공간은 서준에게 있어 카르텔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유일한 열쇠였다.


'낙관이나 숨은 먹서가 반드시 남아 있다…….'


고서화 보수나 위작 공법에서, 위조범들은 종종 자신들만의 고유한 표식이나 나중을 위한 '인증의 흔적'을 아주 미세한 형태로 음각(陰刻)해 두는 습성이 있었다. 특히 강민우처럼 완벽주의에 가까운 장인적 기교를 가진 인물이라면, 겉면의 가짜 붉은 안료와 진품 비단이 접하는 그 경계선 어딘가에 자신만의 먹선 궤적을 숨겨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서준은 손끝에 아주 가늘게 갈아낸 전통 대나무 칼을 쥐었다.


그는 관음보살의 우측 하단, 붉은 주사 안료가 가장 두껍게 떡칠해져 있던 연화대 줄기 부근을 정밀하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대나무 칼끝이 0.05밀리미터 단위로 안료의 겉껍질을 까 내었다.


서준은 눈을 감고 아랫배로 길게 숨을 내쉬며 세 번째 '안목(眼目)'을 개안했다. 손끝의 모든 신경 세포가 잘게 쪼개진 촉각의 입자가 되어 비단 결 사이를 유영하듯 스쳐 지나갔다.


'파잇――!'


또다시 뇌리를 사정없이 찌르는 날카로운 전율.


시야가 온통 투명한 은빛으로 변하더니, 서준의 손끝을 타고 안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비단 결의 수직선과 수평선이 체로 쳐지듯 선명하게 투시되었다.


그리고 그 비단 결 한복판, 붉은 안료와 검은 먹물이 아주 얇은 유화막 형태로 교차하는 미세한 틈새 속에서, 돋보기로도 쉽게 보이지 않던 손톱 반만 한 크기의 먹선 흔적이 손끝에 감지되었다.


그것은 한자로 삐침을 그어 넣은 음각 낙관(陰刻 落款)이었다.


'민(民)…….'


강민우의 호(號)이자, 그가 수장고 시절 자신의 전용 먹통에 정갈하게 새겨두곤 했던 바로 그 특유의 낙관 체였다.


비단 겉면에는 100년 된 지방 사찰의 관음보살도가 칠해져 있었지만, 그 아래 진짜 고려 불화의 비단 가장자리에는 강민우가 직접 위작 작업을 마쳤음을 증명하는 은밀한 낙관이 칠해져 있었던 것이다.


"찾았다……."


서준의 입에서 차가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3년 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명예를 도륙했던 그 가혹한 범죄의 실제 집행자가 강민우였다는 완벽하고도 물증적인 흔적. 서준의 손가락이 그 은밀한 낙관 위를 쓸어내릴 때, 참아왔던 분노와 슬픔이 뜨거운 혈류가 되어 전신을 휘감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윽……!'


머리통이 사정없이 깨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안통이 서준의 뇌수를 강타했다.


눈앞의 은빛 시야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집히더니, 오른쪽 눈뿐만 아니라 왼쪽 눈의 시야마저 아지랑이처럼 심하게 뒤틀려 흔들렸다.


서준은 비명을 지르며 작업대 위에 엎드렸다. 손에서 놓쳐진 대나무 칼이 바닥으로 떨어져 '찰그랑' 소리를 냈고, 두 손으로 감싸 쥔 서준의 오른쪽 눈에서는 차가운 눈물과 함께 핏빛 섞인 진물이 미세하게 배어 나왔다.


안목을 끌어올려 진실의 낙관을 집어낸 대가.


오른쪽 눈 시야를 덮고 있던 검은 먹구름 잔상이 이제 시야의 절반 가까이를 사정없이 먹어 치우고 있었다. 세상의 형체가 한쪽 눈에서 어둡고 찌그러진 왜곡된 잔상으로만 겨우 피어올랐다.


"하아…… 하아…… 하아……."


서준은 작업대를 집어 짚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닦아내었다.


시력을 잃어간다는 공포는 지독했다. 그러나 그 손끝에 새겨진 강민우의 낙관 감각은 서준의 가슴속 깊은 곳에 꺼지지 않는 정직한 불꽃을 지펴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쾅! 쾅! 쾅!'


지하 표구실의 철제문을 사정없이 걷어차는 육중한 소리가 온 골방을 울렸다.


"안에 누구 있어?! 문 열어!"


거칠고 사나운 사복 용역들의 고함이 낡은 목조 계단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태성 갤러리의 감시망이 마침내 이곳 혜화동 지하 표구실까지 조여든 것이었다.


서준은 어두워진 오른쪽 시야를 한 손으로 지그시 누른 채, 손끝에 감겨드는 스승의 낡은 보수 공구 가방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거짓으로 세워진 거대한 자본의 카르텔과, 시력을 바쳐 진실을 읽어내는 정직한 보수사 서준의 피할 수 없는 잔혹한 전쟁이 이제 막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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