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하 표구실의 붉은 벽돌 벽면을 타는 습기가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와 섞여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서준은 밤을 꼬박 새운 채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놓인 감은사 관음보살도는 겉면의 가짜 주사 안료와 촛농 때가 부분적으로 긁혀 나가, 마치 오래된 허물을 벗는 뱀처럼 기괴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준의 오른쪽 눈시울에 자리 잡은 어둠은 이제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인 잔상이 되어 시야의 한쪽 구석을 어둡게 가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마치 검은 비단 조각 하나가 눈동자 위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아찔한 위화감이 덮쳐왔다.
'이것이 안목의 대가…….'
서준은 차가운 수돗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피부의 감각은 여전히 날카롭고 민감했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두 눈 중 오른쪽 눈동자는 묘하게 빛을 잃고 아득하게 침전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찌걱거리는 낡은 목조 계단을 타고 서둘러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쿵, 쿵, 쿵.'
골동품상 황 노인이었다. 평소의 느긋한 걸음걸이와 달리 노인의 발걸음은 몹시 급하고 어수선했다. 계단 끝에 들어선 황 노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트렌치코트 옷자락에는 새벽이슬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서 군! 아직 안 자고 있었나?"
"어르신.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얼굴빛이 좋지 않으십니다."
서준이 일어서며 묻자, 황 노인은 표구실 문을 황급히 닫아걸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한 사람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 군…… 혹시 어제 내가 가져온 그 불화, 손을 댔나?"
서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작업대 위에 놓인 관음보살도를 조용히 가리켰다. 관음보살의 연화대 하단, 붉은 주사 안료가 긁혀 나가고 300년 전의 정교한 먹선과 수지 봉합재의 흔적이 드러난 자리가 노인의 눈에 들어왔다.
"이, 이런 세상에……!"
황 노인이 손을 떨며 불화 앞으로 다가섰다. 노인의 눈동자가 경악과 두려움으로 뒤흔들렸다.
"자네, 대체 어디까지 긁어낸 겐가? 안쪽을 본 건가?!"
"어르신."
서준의 목소리는 산골의 새벽바람처럼 낮고 투명했다.
"이 그림은 100년 된 사찰 불화가 아닙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그려진 희귀 괘불탱의 일부 위에, 현대식 화학 아교와 주사 안료를 덮어씌워 은닉해 둔 '위장작'입니다. 그리고 이 뒤에 칠해진 배접 접착제는 3년 전 수장고에서 쓰이던 특수 수지입니다."
서준은 황 노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어르신은 이 불화의 정체를 알고 제게 가져오신 겁니까?"
황 노인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마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노인의 거친 한숨 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몰랐네. 정말 몰랐어. 그저 감은사 스님이 오래된 절 불화라며 수리해 달라고 하기에, 자네 솜씨라면 때나 좀 벗겨서 제값 받게 해 줄 수 있을 줄 알았지."
황 노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인사동 상가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네. 태성 갤러리 측 용역들과 감정원 직원들이 감은사로 내려가 그 불화를 강제로 회수하려 했다는 게야. 스님이 이미 서울의 표구상에게 넘겼다고 하자, 그자들이 지금 인사동 골동품 거리를 뒤잡듯 뒤지고 있네!"
서준의 두 눈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태성 갤러리. 강민우가 수석 감정위원으로 있는 곳이자, 문화재 카르텔의 자본 줄기 역할을 하는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였다.
"놈들이 이 불화를 찾고 있는 건, 단순한 수리 때문이 아닙니다."
서준이 불화의 표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 불화는 진품을 가짜로 위장해 해외로 유출하거나, 특정 재벌 컬렉터의 비자금 세탁용으로 쓰이려던 출품 대기작입니다. 그런데 제가 겉면의 가짜 안료를 파내고 진품의 궤적을 건드렸으니, 놈들의 설계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 겁니다."
"서 군…… 당장 이 물건을 버리게! 아니, 태성 갤러리에 넘겨주고 자네는 여기서 떠나게!"
황 노인이 서준의 손을 잡으며 절박하게 애원했다.
"그자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야. 3년 전 자네를 한순간에 매장시켰던 그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괴물들이란 말일세! 자네 목숨이 위험해!"
그러나 서준은 황 노인의 떨리는 손을 살며시 잡아 내렸다.
"떠나지 않습니다, 어르신."
"뭐라고?"
"3년 동안 저는 억울함과 수치심 속에서 매일 밤 죽음 같은 어둠을 견뎠습니다. 세상은 저를 '문화재를 도륙한 불량 보수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놈들이 제게 덮어씌운 그 더러운 가짜의 껍데기를, 제 손으로 파내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서준은 작업대 구석에서 대나무 칼과 미세 돋보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 불화의 깊은 속살에, 놈들이 숨겨놓은 진짜 배후의 낙관(落款)과 증거가 반드시 새겨져 있습니다. 그걸 찾아낼 때까지, 저는 이 자리를 단 1밀리미터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황 노인은 고집스럽게 붓과 칼을 움켜쥐는 서준의 단단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다. 3년 전 벼랑 끝으로 내몰려 시체처럼 죽어 있던 청년의 눈에, 세상을 향한 정직한 장인의 푸른 불꽃이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