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스스…….'
배접지의 까칠한 결을 따라 손가락 마디를 옮기자, 손끝의 굳은살을 타고 짓눌린 안료의 촉감이 신경을 따라 뇌리로 역류해 올라왔다.
두 번째로 찾아온 '안목'의 전율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사나웠다. 시야가 맑아지는 대신 지독한 두통과 함께 눈앞의 사물들이 수평을 잃고 아지랑이처럼 찰랑거렸다. 서준은 이빨을 악물며 작업대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거세게 움켜쥐었다.
비단 바탕 뒤를 받치고 있는 3겹의 배접지.
그 세 번째 한지 결구 부위에서, 붓끝으로 찍어 누른 묵서(墨書)의 밀도가 시각이 아닌 손끝의 촉각으로 선명하게 재현되어 왔다.
그것은 한자로 적힌 자그마한 명문(銘文)이었다.
'乾命…… 嘉慶…… (건명…… 가경……)'
조선 순조 재위 시절, 사찰의 중수 기록을 남기던 명문이 한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하지만 서준의 손끝은 그 명문 바로 아래 0.5밀리미터 두께로 덧대어진 현대식 기계제 배접 한지의 가짜 밀도를 매섭게 집어냈다.
겉면은 정교하게 산화시킨 조선 시대 고지(古紙)였지만, 속지에는 섬유의 길이가 균일한 합성수지 봉합재가 밀어 넣어져 있었다. 이 접착제를 만들어 쓰는 이는 국내에 단 한 명뿐이었다.
'민우 형이 자체 개발했던 특수 배접 풀…….'
3년 전, 강민우는 고서화의 습기를 방지하고 장기 보존을 돕는다며 수장고에서 특허를 신청했던 그 화학 배접 풀의 성분이었다.
서준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관음보살도는 단순히 시골 사찰에서 흘러나온 잡화가 아니었다. 태성 갤러리와 강민우의 손을 거쳐 위작 작업이 완료된 후, 고미술 시장을 거쳐 정식 문화재로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잠시 감은사라는 지방 사찰에 '은닉'시켜 둔 카르텔의 출품 대기작이었던 것이다.
'황 어르신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걸까?'
서준의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골동품상의 황 노인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이 일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카르텔의 거미줄이 이미 이곳 지하 표구실의 문 앞까지 깊숙이 드리워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컥……!'
머릿속을 찌르는 극심한 안통(眼痛)과 함께 서준의 시야 전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손끝을 스치던 안목의 감각이 사그라드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눈 시야 구석에 맺혀 있던 어둠의 먹구름이 아까보다 확실히 넓어져 있었다. 글씨를 읽으려 눈을 가늘게 뜨자, 오른쪽 눈의 초점이 흐릿해지며 사물의 테두리가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진실을 끌어올린 대가로 바쳐진 시력.
서준은 손바닥으로 오른쪽 눈을 감쌌다. 지독한 고독과 공포가 온몸의 피를 식히는 듯했다. 만약 이 안목을 계속 쓰다가는 카르텔의 실체에 다가가기도 전에 완전히 두 눈이 멀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서준은 감았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흐려진 오른쪽 눈 너머로, 덧칠해진 붉은 주사 안료 아래 숨어 있는 정직한 고려 불화의 먹선이 시리도록 단정하게 서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는 자들은 부와 명예를 누리고, 정직하게 붓을 쥐었던 사내는 어둠 속에 갇혀 눈마저 잃어가는 이 가혹한 모순.
서준은 찌그러진 대나무 칼을 다시 집어 들었다.
"끝까지 가보자…… 민우 형. 당신들이 만든 그 가짜의 탑이 얼마나 견고한지."
서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지하 표구실의 음습한 공기를 뚫고 단단하게 메아리쳤다. 진실을 향한 첫 번째 균열이, 혜화동 어두운 골목 안쪽에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