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빛 (觸光)》

소설

by산들강바람


第2章 : 붉은 안료의 기억 (朱砂) — [前半部]


지하 표구실의 공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준은 작업대 위에 펼쳐진 감은사 관음보살도를 향해 멍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오른쪽 눈시울 자리에 맺힌 미세한 어둠의 잔상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서준의 혼을 빼놓는 것은 손끝에 남아 있는 잔류 감각이었다.


진품의 비단 결을 덮고 있던 화학 아교와 인위적인 촛농 그을음. 그 천박하고 치밀한 위조의 밑바닥에서 300년 전 화승이 남긴 정직한 먹선의 궤적이 유령처럼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서준은 마른 손으로 자신의 뺨을 툭툭 치며 정신을 차렸다.


시력을 잃어간다는 공포가 목덜미를 차갑게 움켜쥐었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학에 빠져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이 불화가 어쩌다 지하 골방의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3년 전 자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렸던 강민우의 수법이 왜 이 낡은 사찰 불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지를 파헤쳐야 했다.


서준은 작업대 구석에 놓인 낡은 스탠드를 불화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전구의 노란 불빛이 관음보살의 찌든 때 묻은 얼굴 위로 쏟아졌다. 서준은 주머니 속에서 낡은 담뱃갑을 꺼내려다 이내 손을 거두고, 대신 바카라상 서랍 안쪽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은색 금속 케이스를 꺼냈다.


그 케이스 안에는 과거 국립 미술품 보수 수장고에서 일할 당시 스승 이상현이 직접 물려준 정밀 안료 분석용 스페출라와 국산 천연 석채(石彩) 샘플, 그리고 고서의 성분을 측정하기 위한 미세 시약병들이 들어 있었다. 3년 전 모든 압류 속에서 황 노인이 몰래 숨겨다 준 유일한 보수 도구들이었다.


서준은 시약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는 연한 황갈색을 띤 천연 식물성 추출 용액이 담겨 있었다.


그는 미세한 유리 스포이트를 이용해, 불화의 하단 가장자리 — 겉면의 가짜 붉은 안료가 벗겨져 나가고 진짜 고려 초기의 비단 결이 살짝 드러난 그 좁디좁은 틈새에 용액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치이익…….'


미세한 기포가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화학 성분과 천연 성분이 반응하는 냄새가 훅 끼쳐왔다.


서준은 숨을 멈추고 반응을 지켜보았다. 만약 이 불화가 순수한 100년 전 사찰 불화였다면 용액은 미색 그대로 굳어져야 했다. 그러나 붉은 주사 안료와 아교가 덧칠된 겉면의 가짜 부위에서는 순식간에 시퍼런 청남색 화학반응이 일어났다.


반면, 서준이 대나무 칼로 살짝 긁어내어 노출시킨 내부의 진품 비단 결 부위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은 채 고요한 미색을 유지했다.


"역시…… 겹치기 위조야."


서준은 낮게 신음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이것은 단순히 오래된 그림을 보수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가짜 위작을 감정단의 눈에 '진짜 국보' 혹은 '오래된 사찰 불화'로 둔갑시키기 위해, 혹은 그 반대로 진짜 문화재의 신분을 숨겨 해외로 밀반출하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해 둔 '위조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그 복잡하고 기괴한 위조 공법은 3년 전, 서준이 수장고에서 마주했던 <경교명승첩>의 조작 수법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서준아, 너는 보수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문득 3년 전, 햇살이 가득 내리쬐던 수장고 창가에서 스승 이상현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세월이 남긴 상처를 덮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승님.”


“아니다. 보수는 세월의 거짓을 걷어내고, 그 그림이 처음 태어났을 때의 진실한 숨결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껍데기를 덧칠하는 건 장인의 손이 아니라 사기꾼의 손이지.”


스승의 그 호통 같던 목소리가 지금은 귓가에서 차가운 비수가 되어 꽂혔다.


진짜 정직한 장인의 손으로 키워주었다 믿었던 스승 이상현, 그리고 그 밑에서 형처럼 따르며 안료의 비율과 배접의 기술을 함께 나누었던 강민우. 그들이 주도하던 보수실의 이면에서, 사실은 이런 거대한 위조와 밀반출의 카르텔이 은밀하게 피어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 역시 그 거대한 권력의 톱니바퀴에 휘말려 이용당했던 것일까.


생각이 그 지점에 이르자 서준의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며 지독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다. 세상은 이미 그를 '욕심에 눈이 멀어 문화재를 도륙한 횡령범'으로 낙인찍었으니까.


서준은 떨리는 손으로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불화의 뒷면 배접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숙였다. 그림의 앞면이 이토록 완벽하게 이중으로 위장되어 있다면, 뒷면의 배접지 역시 보통 사찰 불화의 그것과는 다를 터였다.


그의 손끝이 낡은 한지 배접지의 결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바로 그때, 오른쪽 눈시울의 아스라한 어둠을 뚫고 두 번째 '안목'의 전율이 손끝을 타고 소리 없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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