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한별은 크레인 쇠줄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상량 대들보 앞으로 일등으로 걸어 나갔다.
행사장은 숨이 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류진섭 회장의 관자놀이에는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임태성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당장이라도 한별을 덮칠 듯 몸을 경련했다. 그러나 수십 대의 카메라 렌즈와 지자체 감리단, 국토부 관계자들의 매서운 시선이 이 현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별은 스승 도진광의 감나무 먹통에서 검은 먹실을 끌어당겼다.
먹실이 대들보의 거친 표면을 스치며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별은 눈을 감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스승에게 이어받은 '먹줄의 통찰(墨線之眼)'이 한별의 온 신경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눈을 뜨자, 붉은 단청이 입혀진 수십 미터 대들보의 내부가 투명한 수채화처럼 투시되어 들어왔다.
겉은 웅장하고 매끈해 보였으나, 대들보 내부 중심부(心材)는 이미 북미산 저가 수입재의 충해와 균열을 가리기 위해 채워 넣은 에폭시 수지가 부스러져 가고 있었다. 크레인이 들고 있는 자체 하중만으로도 미세한 비틀림을 일으키며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가짜 부재였다.
한별은 먹실을 대들보 한복판, 내부 균열이 가장 사정없이 뒤얽힌 그 경계선 위에 나란히 대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먹실의 한복판을 집어 올렸다.
'스아아――'
산골의 봄바람이 정직한 먹실을 스치며 장인의 팽팽한 숨결을 내뿜었다.
'딱―――!'
행사장 전체를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날카롭고 단정한 마찰음이 온 허공을 울렸다.
허공에서 튕겨 나간 먹줄이 가짜 대들보 표면을 찰지게 때렸다. 흩날린 검은 먹물 방울들이 햇빛 아래 은하수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흩어지고, 대들보 표면 위에는 한별이 그어놓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검고 굵은 먹선 하나가 선명하게 그어졌다.
"이 먹선이 그어진 대들보 한복판을 정으로 내리쳐라!"
한별이 스승의 무쇠 정과 참나무 망치를 들고 류진섭 회장과 감리단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
"만약 이 먹선 아래 에폭시 수지와 썩은 충해가 없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내 목을 내놓겠다! 하지만 이 속병이 사실이라면, 너희 태산건설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거대한 무덤을 세우려 한 죄를 대가로 완벽하게 매장당할 것이다!"
감리위원장이 침을 마른 채 삼키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감리위원장은 한별이 그어놓은 검은 먹선 자리를 향해 대형 보링 타공기를 들이대고 깊숙이 구멍을 뚫었다.
'드르르르르르-!'
타공기 날이 대들보 내부 15센티미터 지점을 파고들어 간 그 찰나,
'콰아아아-!'
대들보 내부에서 억눌려 있던 에폭시 수지 파편과 누렇게 썩은 목재 가루, 그리고 곰팡이 덩어리들이 시큼하고 독한 화학 약품 냄새를 풍기며 폭발하듯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하중을 견디지 못한 대들보 한복판이 한별이 그어놓은 검은 먹선을 따라 '콰직!' 하는 비명과 함께 길게 균열을 일으키며 사정없이 비틀려 나갔다.
"……아!" "대들보가 쪼개진다!" "진짜 썩은 수입 목재에 본드만 칠해놓은 거였어?!"
행사장은 그야말로 미친 듯한 혼란과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쪼개진 대들보와 쏟아지는 썩은 가루, 그리고 한별의 검은 먹선을 향해 융단폭격처럼 터져 나왔다. 지자체 관계자들과 감리단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태산건설 측에 고함을 질렀다.
"류진섭 회장! 임태성 이사!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람 목숨을 갖고 사기를 친 거요?! 당장 공사 중단하고 경찰 조사받으시오!"
임태성은 다리가 풀려 붉은 카펫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류진섭 회장은 입술을 깨물며 파르르 떨다 결국 국토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의 포위망 속으로 허겁지겁 둘러싸여 끌려갔다.
자본의 오만함과 거짓으로 올리려 했던 거대한 바벨탑이, 정직한 대목의 먹줄 한 번에 완벽하게 도륙당하는 순간이었다.
한 달 후. 사자산 밑자락.
태산건설의 비리 한옥 단지 사업은 완벽하게 백지화되었고, 관련자들은 전원 법의 심판을 받았다. 한별에 대한 위조 횡령 혐의 역시 완벽하게 벗겨져 그의 명예는 온전히 회복되었다.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는 도진광 대목장의 작업장 마당.
서한별은 정반 위에 누워 있는 백 년 된 한국산 육송 고목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감나무 먹통이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손바닥 전체를 덮은 검붉은 굳은살은 대지의 소나무처럼 은은하고 정직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숭늉을 마시던 도진광 대목장이 휜 허리를 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한별아."
"예, 어르신."
"거짓의 집은 무너졌으나, 대지와 사람은 여전히 정직하게 숨을 쉴 집을 원하고 있다. 이제 네가 그릴 집은 무엇이냐?"
한별은 가만히 손에 쥔 먹실을 바라보았다.
"자본의 탐욕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대지의 무게와 나무의 숨결을 정직하게 받아내어 수천 년 동안 사람을 따스하게 품어줄 집…… 바로 '신의 길을 짓는 자'의 집입니다."
한별은 먹실을 끌어당겼다.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자, 백 년 고목의 온기와 사자산의 맑은 바람, 그리고 대지가 내어주는 정직한 목맥(木脈)이 그 미세한 먹실을 타고 한별의 온몸으로 아늑하게 스며들었다.
한별은 엄지손가락으로 먹실의 한복판을 집어 올렸다.
'딱――!'
맑고 단정한 장인의 마찰음이 푸른 하늘 높이 사정없이 퍼져나갔다.
허공에서 튕겨 나간 먹줄이 소나무 고목 표면을 때리고, 대지와 인간이 함께 그어낸 가장 거룩하고 바른 첫 번째 먹선이 햇살 아래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짓의 세상을 베어내고 참된 장인의 길을 완성한 젊은 대목수, 서한별의 위대한 서막이 사자산의 맑은 정적 속에서 그렇게 푸르고 드높게 펼쳐지고 있었다.
[ End of '신의 길을 짓는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