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길을 짓는 자〉

소설

by산들강바람

第8章 : 장인의 자존심 (尊嚴) — [後半部]


류진섭 회장의 달콤한 제안이 마당가의 향긋한 대팻밥 공기 위로 음습하게 넘쳐흘렀다. 과거의 누명을 벗겨주고 최연소 임원 자리를 주겠다는 자본의 유혹.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억울함에 한강 다리 위를 서성였던 서한별이었기에, 임태성의 입가에는 당연히 그 덫에 걸려들 것이라는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러나 한별은 가만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멘트 먼지와 타협의 서류를 주무르던 과거의 매끈했던 손은 온데간데없었다. 스승의 옆에서 수천 번 대패질을 하고 먹줄을 튕기며 새겨진 검붉고 두꺼운 장인의 굳은살. 그 정직한 굳은살을 타고 백 년 고목이 품어온 대지의 온기와, 세상의 거짓에 굽히지 않는 대목의 기개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별은 류 회장을 향해 한 걸음 조용히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방금 스승이 갈아낸 서슬 퍼런 무쇠 대패가 쥐어져 있었다.


"류 회장님."


한별의 목소리는 산골의 새벽바람처럼 낮고 투명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최연소 임원 자리와 수십억의 돈다발은, 정직하게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이 나누어 갖는 시체 위에 쌓은 탑일 뿐입니다."


"……뭐라?"


류 회장의 눈썹이 크게 뒤틀렸다.


"저는 이곳에서 백 년 된 소나무의 결을 읽고, 어떠한 왜곡 속에서도 단 하나의 중심을 뚫어내는 먹줄의 길을 배웠습니다."


한별이 툇마루 위에 열려 있던 007 가방을 향해 대패를 든 손을 내밀었다.


"돈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사고, 썩은 목재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 잡는 태산건설의 더러운 임원 자리는 저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제 스승님의 이름 또한 당신들의 더러운 탐욕에 단 1밀리미터도 내어줄 수 없습니다."


"이…… 이 무식한 놈이 감히 회장님 앞에서!"


임태성이 고함을 지르며 나서려 했으나, 류 회장이 손을 들어 임태성을 제지했다. 류 회장의 얼굴은 모욕감과 오만함으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도진광 어르신, 그리고 서한별 군."


류 회장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소. 자본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가 어떻게 매장당하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겠소. 강원도 한옥 단지 공사는 내일부로 강행될 것이며, 당신들이 이 산골짝에서 단 한 토막의 나무도 잡지 못하도록 법과 권력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말려 죽일 것이오."


도진광 대목장이 툇마루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비록 휜 허리와 낡은 모시옷차림이었지만, 늙은 장인이 서 있는 자태는 사자산 정상의 천년 노송처럼 굳건하고 거룩했다.


"가거라, 류진섭."


진광의 묵직한 쇳소리가 온 마당의 정경을 두드렸다.


"네놈이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만을 떨지만, 정직한 대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거짓 건물은 반드시 제 무게에 눌려 무너지는 법이다. 썩은 나무와 탐욕으로 올린 네놈들의 바벨탑이 어떻게 사정없이 꺾여 내려앉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테니."


류 회장은 입술을 깨물며 차갑게 돌아섰다.


"가방 치워라. 이 고집 불통 늙은이와 풋내기 목수 놈이 제 발로 찾아와 무릎 꿇을 때까지, 사자산 일대의 모든 자재 수급과 현장 진입을 완벽히 차단해라."


검은 정장의 경호원들과 임태성이 허겁지겁 현금 가방을 챙겨 세단에 올라탔다. 요란한 흙먼지와 메마른 엔진 소음을 토해내며 고급 차들이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자, 작업장 마당에는 다시금 그윽한 송진 향과 산골의 푸른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별은 스승 도진광을 바라보았다. 스승은 마당 한구석에 누워 있는 한국산 육송 고목의 단면을 가만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르신…… 저들의 방해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무서우냐, 한별아?"


"아닙니다."


한별은 손에 쥔 대패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오히려 가슴속에서 정직한 불꽃이 타오릅니다. 저들이 세우려는 거대한 거짓의 집을, 저희의 정직한 먹줄로 반드시 막아서겠습니다."


진광은 나지막이 미소를 지으며 한별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잘 생각했다. 놈들이 거대 자본으로 가짜 기둥을 올린다면, 우리는 단 하나라도 대지와 사람의 목숨을 지켜낼 진짜 천년의 뼈대를 다듬어야 한다. 먹통을 챙기거라. 이제 저들이 가린 진실의 밤 속으로, 우리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할 때다."


저무는 노을빛이 스승과 제자의 단단한 어깨 위로 황금빛 축복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자본의 거대한 압박과 횡포가 사방을 죄어오고 있었지만, 장인의 존엄(尊嚴)을 가슴에 품은 두 대목수의 정직한 먹줄은 그 어떤 차가운 위협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을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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