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자산 야적장에서 일어난 썩은 목재 폭로 사건은 언론을 타고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태산건설의 주가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강원도청과 국토교통부의 특별 감리팀이 현장 조사를 위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수천억 원이 얽힌 이권의 사슬은 언론을 돈으로 막아 세우며 '일부 수입재의 단순 보관 부주의'라는 해명 기사를 내보냈고, 현장을 주도한 임태성은 오히려 사태를 반전시키기 위해 비열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강원도 영월 사자산 밑자락의 외딴 작업장.
아침 햇살이 마당의 나뭇가지 사이로 투명하게 스며들고 있었지만, 도진광 대목장의 현장 주변에는 음습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정반 위에는 아직 손대지 않은 거대한 한국산 육송 고목들이 정직하고 무겁게 누워 있었고, 서한별은 무쇠 대패의 날을 정성스럽게 갈며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슥-삭, 슥-삭…….'
숫돌 위를 오가는 대패날의 소리가 고요한 산골 공기를 깨트릴 때, 작업장 입구로 고급 대형 세단 수십 대가 줄을 지어 들어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일제히 내려 작업장 마당을 둘러쌌고, 맨 앞 차량의 문이 열리며 흰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노신사 한 명이 내렸다.
태산그룹의 회장, 류진섭이었다. 그 뒤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임태성 이사가 굽신거리며 따라 내렸다.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도진광 대목장의 거처인가."
류 회장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수십 년간 거대 재벌을 이끌어온 자의 서슬 퍼런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류 회장은 마당의 톱밥 먼지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툇마루에 앉아 묵묵히 숫돌질을 하던 도진광 대목장 앞으로 다가섰다.
"어르신. 미물 같은 밑의 놈들이 일을 서툴게 처리하여 어르신의 노여움을 산 모양입니다. 내 직접 사과하러 왔습니다."
류 회장은 손짓을 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육중한 007 가방 세 개를 가져와 툇마루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5만 원권 현금 다발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족히 수십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이건 어르신께 드리는 작은 성의입니다. 한옥 단지의 총괄 자문 위원장 자리를 맡아주십시오. 자재 검수 도장에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실무는 저희가 알아서 할 터이니, 어르신께서는 그저 한국 전통 한옥의 거장으로서 이름만 올려주시면 됩니다."
류 회장의 비아냥거림 없는, 그러나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사려하는 차가운 제안이었다.
한별은 숫돌질을 멈추고 대패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새겨진 두꺼운 장인의 굳은살이 경련했다. 임태성의 치졸한 용역 도발보다, 이처럼 돈으로 사람의 평생 가치를 사려는 거대 자본의 오만함이 더욱 가슴을 도륙했다.
그러나 도진광 대목장은 숫돌 위에서 대패날을 떼어내지 않았다.
'슥-삭, 슥-삭…….'
정직하게 쇠와 돌이 마찰하는 소리만이 류 회장의 수십억 현금 다발 위로 무심하게 퍼져나갔다. 진광은 대패날의 서슬 퍼런 은빛 단면을 달빛 같은 햇살에 비추어 보더니, 마침내 휜 허리를 천천히 폈다.
"돈 냄새가 숲의 송진 향을 가리는구나."
진광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류 회장이라 했느냐. 네놈이 내놓은 저 종이 쪼가리 수십억은 백 년 된 소나무 한 그루의 결보다 가치가 없다. 썩은 자재와 방부제 칠을 한 나무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은, 평생 대지의 나무를 마주해 온 내 삶을 모독하는 짓이다."
류 회장의 눈매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어르신. 세상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천억이 투입되는 국바카라 사업입니다.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으시면 어르신의 가문과 이 어수룩한 제자 놈의 미래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류 회장의 시선이 옆에 서 있던 한별을 향했다.
"서한별 군이라 했던가. 자네의 건축 공학적 지식과 그 신비로운 식견은 잘 보았네. 횡령 혐의는 깔끔하게 취하해 주고, 태산건설 최연소 임원 자리를 주지. 늙은 목수의 고집에 더 이상 네 청춘을 썩히지 말게."
거대한 회유의 손길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과거의 명예와 부를 한 번에 되찾을 수 있는 자본의 달콤한 덫이었다. 류 회장과 임태성은 한별의 눈빛을 주시하며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