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자산 기슭을 적시던 야간의 흙물 소동은 태산건설 측의 허겁지겁한 흙막이 공사와 언론 통제로 일단 봉합된 듯 보였다. 그러나 대지가 내지른 정직한 비명과 서한별이 그어놓은 검은 먹선의 경고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궤적으로 현장 바닥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며칠 뒤, 사자산 입구에 조성된 태산건설의 대형 자재 야적장.
수만 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 위로 높이 수 미터에 달하는 대형 수입 목재 더미들이 촘촘하게 쌓여 있었다. 북미와 수마트라 등지에서 들여온 저가 원목들이었다. 겉면에는 화려한 방부 코팅제가 매끈하게 칠해져 있었고, 붉은색 단청용 프라이머가 깔끔하게 도포되어 언뜻 보면 윤기 흐르는 최고급 대형 부재처럼 보였다.
"어이, 서 목수. 저기 들어오는 수송 트럭들 보게."
야적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언덕배기, 오래된 굴참나무 그늘 아래 서 있던 도진광 대목장이 휜 담배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스승의 곁에 선 서한별의 손에는 감나무 먹통과 작고 날카로운 전통 먹칼이 쥐어져 있었다.
수십 대의 대형 휠로더와 25톤 트럭들이 지성을 잃은 기계 소음을 토해내며 야적장 안으로 쉼 없이 진입하고 있었다. 트럭 짐칸마다 실려 있는 것은 한옥 단지의 뼈대를 이룰 대들보와 메인 기둥용 목재들이었다.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진광이 혀를 쯧 차며 코를 감싸 쥐었다.
"나무 본연의 향긋한 송진 향은 온데간데없고, 시큼하고 비린 방부제 독기만 공중에 자욱해. 저건 나무가 아니라 살충제를 머금은 썩은 몽둥이다."
한별은 눈을 감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스승에게 물려받은 '먹줄의 통찰(墨線之眼)'을 작동시키자, 투명하게 개운해진 그의 시야 너머로 야적장에 쌓인 수천 그루의 수입 목재 내부가 스캐너로 들여다보듯 환히 투시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한별의 입에서 낮게 얼어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겉은 매끄러운 코팅제로 윤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방부막 아래 감춰진 수입 목재의 속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고온 다습한 열대 우림에서 급속 재배되어 나무의 밀도를 나타내는 나이테 간격이 조잡할 정도로 무성하게 벌어져 있었고, 목재 중심부인 심재(心材) 곳곳에는 이미 흰구름버섯균과 흰개미 충해(蟲害)가 사정없이 번져 속이 부스러기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입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을 숨기기 위해 강한 에폭시 본드와 화학 방부제를 밀어 넣어 겉면만 단단하게 포장해 놓은, 말 그대로 '썩은 목재(腐木)'의 무덤이었다.
"북미산 저가 삼나무에 에폭시 주입 수리…… 거기에 발암 물질이 섞인 CCA 방부제를 떡칠해 놓았습니다."
한별의 두 눈이 차갑게 이글거렸다.
"저런 부실 자재로 대형 한옥의 기둥을 세우면, 불과 2~3년 뒤 지붕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장부 물림 자리가 내부에서부터 부러져 나갑니다. 건물이 통째로 주저앉는 초대형 참사가 일어날 겁니다."
"자본의 눈에는 사람의 목숨보다 수천억의 이윤이 먼저 보이는 법이지."
진광의 쇳소리가 칼바람처럼 알싸하게 가라앉았다.
"놈들은 저 썩은 목재에 전통 단청을 칠하고 화려한 조명을 비추어 세상을 속이려 할 게다. 한별아, 네가 깨달은 먹줄의 눈으로 저 가짜 기둥들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예, 어르신. 더 이상 저들의 거짓이 사람을 죽이게 두지 않겠습니다."
한별은 작업복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감나무 먹통을 품에 밀착시켰다.
그때, 자재 야적장 정문 쪽에서 시끄러운 고함과 함께 태산건설의 현장 감리단과 감독관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한복판에는 고급 정장 위에 노란 안전모를 얹어 쓴 임태성이 귀빈용 장갑을 낀 채 단청칠이 끝난 수입 목재를 어루만지며 기자들과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번 한옥 문화단지에 사용되는 모든 부재는 엄격한 목재 등급 심사를 통과한 최고급 특 A급 대형 부재입니다! 100년을 버틸 정통 한옥의 거룩한 뼈대가 될 것입니다!"
임태성의 비아냥거리는 허위 선언이 야적장 공기를 더럽히고 있었다.
한별은 스승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뒤, 썩은 목재의 진실을 증명할 정직한 먹통을 손에 쥐고 자본의 거짓이 판치는 야적장 현장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