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야음을 뚫고 사자산 기슭으로 밀고 들어온 태산건설의 수십 대 대형 중장비는 산자락의 정적을 사정없이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서치라이트의 시린 불빛이 백 년 넘은 노송의 줄기들을 잔인하게 비추었고, 거대한 쇠바가지가 대지의 살점을 파헤칠 때마다 시커먼 흙물과 뿌리 끊어지는 비명이 산골짜기를 울렸다.
서한별은 스승 도진광의 뒤를 따라 묵묵히 산길을 내려갔다. 한별의 가슴팍에는 스승이 물려준 오래된 감나무 먹통과 무쇠 정이 묵직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손바닥에 새겨진 단단한 장인의 굳은살을 타고, 파헤쳐지는 대지의 거친 비명이 미세한 파동이 되어 전해져 왔다.
공사 현장 어귀에는 태산건설의 용역 인부들과 현장 감독들이 철제 펜스를 치며 진입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 한복판, 노란 안전모를 비스듬히 쓴 임태성이 명품 구두에 흙을 묻힌 채 인부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야! 더 파헤쳐! 내일 아침 도지사하고 언론사 기자들 내려올 때까지 기본 터파기 모양은 나와야 해! 잔소리하는 산골 노인네들 나타나면 싹 다 밀어버려!"
"임태성 이사!"
한별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기계 소음을 뚫고 묵직하게 번져 나갔다.
임태성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야간 서치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두 사내. 백발이 무성한 늙은 대목장 도진광과, 불과 수개월 전 진흙탕 바닥에 처박혔던 청년 서한별이 정직한 목수의 차림으로 서 있었다.
"어이쿠, 이거 누구신가? 산골짝에서 대팻밥이나 씹던 횡령범 소장님 아니신가?"
임태성은 비아냥거리며 걸어 나왔지만, 한별의 거침없는 눈빛과 단단하게 가라앉은 기개에 순간 주춤했다.
"여기 너희 같은 산골 목수들이 얼씬거릴 곳이 아니다. 여긴 수천억짜리 국가적 프로젝트 현장이야."
"국가적 프로젝트?"
한별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임태성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사자산 지하 수맥의 흐름조차 읽지 못하고, 땅속 암반을 무작정 폭파해 터를 잡는 게 너희가 말하는 프로젝트냐? 대지의 결을 무시하고 세운 건물은 올라가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뭐라고?"
"네놈 눈엔 저 시커먼 흙만 보이지?"
스승 도진광이 묵직한 쇳소리로 말을 받았다. 진광은 걸음을 옮겨 파헤쳐진 흙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이 사자산은 표피 아래 천 년 동안 흘러온 바위 수맥이 얽혀 있는 땅이다. 아무런 보강 공사도 없이 이 암반을 쪼개놓으면, 다가오는 여름 장마에 수맥이 터져 나오면서 너희가 세울 한옥 단지는 지반째 쓸려 내려갈 게다."
"하! 이 노인네가 진짜 망령이 났나!"
임태성은 기가 차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우린 국내 최고 구조공학 팀이 레이저 지질 조사를 끝내고 설계한 거야! 어설픈 산골 경험으로 어디서 감히 본사 설계안에 시비를 걸어? 이봐, 용역들! 이 인간들 당장 현장 밖으로 던져버려!"
용역 인부 서너 명이 위협적으로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러나 한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가슴 품에서 감나무 먹통을 꺼냈다. 그리고 먹통에서 팽팽하게 당겨 나온 먹실을 파헤쳐진 암반 표면 위로 길게 늘어뜨렸다.
'스아아―'
한별이 눈을 감고 아랫배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스승에게 이어받은 '먹줄의 통찰(墨線之眼)'이 가뭇없이 그의 온 신경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한별의 시야 속에서, 파헤쳐진 암반 내부가 투명하게 투시되어 들어왔다. 태산건설이 폭파하려 하는 대형 암반 뒤편으로, 억눌린 천 년의 지하 수맥이 피처럼 붉게 부풀어 오르며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위태롭게 요동치고 있었다.
한별은 엄지손가락으로 먹실의 한복판을 단단하게 집어 올렸다.
'딱――!'
밤하늘을 사정없이 갈라치는 날카롭고 단정한 마찰음이 중장비 소음을 뚫고 찰지게 울려 퍼졌다.
허공에서 튕겨 나간 먹줄이 파헤쳐진 암반 표면을 강렬하게 때렸다. 먹물 방울들이 차가운 야간 서치라이트 불빛 속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흩날리고, 암반 표면 위에는 한별이 그어놓은 검고 굵은 먹선 하나가 선명하게 그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돌 위에 그어진 검은 실선이 아니었다. 지하 수맥이 가장 위태롭게 부풀어 오른 폭발 직전의 균열선을 정확히 지목하는, 대지가 목수의 손을 빌려 내린 경고의 선이었다.
"임태성! 네놈이 정녕 거짓이 아니라면, 내가 그어놓은 이 먹선 바로 옆 1미터 지점을 포클레인으로 찔러보아라!"
한별의 소리가 산자락을 울렸다.
"너희의 잘난 컴퓨터 도면이 맞는지, 아니면 이 정직한 먹줄의 통찰이 맞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라!"
"이…… 이 새끼가 진짜 어디서 블러핑을 해?"
임태성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한별의 단단한 눈빛과 그어놓은 먹선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린 임태성은 신경질적으로 포클레인 기사에게 손짓했다.
"야! 찍어! 저 새끼가 그어놓은 바위 옆 찍어봐! 저놈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려!"
포클레인의 거대한 육중한 쇠바가지가 한별이 그어놓은 먹선 옆 1미터 지점 암반을 향해 사정없이 찍혀 내려갔다.
'쿵―――!!'
지반이 흔들리는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암반 표면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콰이 아아아 아―!'
모두의 입을 막아버리는 폭음과 함께, 쪼개진 암반 균열 사이로 시커먼 지하 수맥이 미친 듯한 압력으로 분출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압의 흙물 기둥이 공중으로 수 미터나 치솟으며 포클레인의 쇠바가지를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어…… 어어?! 물이다! 수맥이 터졌다!"
"피해! 지반이 무너진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뿜어져 나온 시커먼 흙물이 터파기 현장을 순식간에 한강물처럼 채워나갔고, 중장비들이 진흙탕 속으로 비틀거리며 잠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임태성은 명품 구두가 흙물에 잠기는 줄도 모른 채, 넋이 나간 얼굴로 뿜어져 나오는 수맥과 그 옆에 도도하게 서 있는 검은 먹선을 바라보았다. 한별이 그어놓은 먹선은 그 거친 흙물 속에서도 단 한 치의 훼손도 없이, 태산건설의 탐욕과 부실을 비웃듯 검고 정직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별은 흙물이 들이치는 현장 한복판에서 감나무 먹통을 가만히 품에 안았다.
" 보았느냐, 임태성."
한별의 목소리는 분출하는 수맥 소리를 뚫고 차갑게 울렸다.
"대지와 나무는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너희가 세우려는 수천억짜리 한옥 단지는 시작부터 이 썩은 흙물 속에 매장될 것이다."
도진광 대목장이 한별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스승과 제자는 흙물 바다로 변해버린 검은 자본의 현장을 뒤로한 채, 단단하고 정직한 걸음으로 산길을 올려다보며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의 건물 뒤에 숨겨진 위험한 균열을 잘라내는 진짜 대목수, 서한별의 정직한 먹줄이 검은 자본의 그림자를 향해 던진 첫 번째 거룩한 승리의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