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길을 짓는 자〉

소설

by산들강바람


第5章 : 대목의 호흡 (木脈) — [前半部]


강원도 영월 사자산의 골짜기에 서서히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봄의 부드러운 입김이 잔설을 녹여 개울물로 흘려보냈고, 겨울 내내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대지는 축축하고 비옥한 흙내음을 토해냈다.


서한별은 이제 더 이상 산골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의 작업복 어깨에는 새하얀 대팻밥과 향긋한 송진 가루가 제 몸의 일부처럼 깔끔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손바닥 전체를 덮은 단단하고 검붉은 굳은살은 백 년 고목의 표면처럼 윤기를 띠고 있었다.


한별은 작업장 한복판, 수십 그루의 소나무 기둥들이 늘어선 정반(定盤) 위에 서 있었다.


그가 손에 쥔 감나무 먹통에서는 그윽한 먹향이 번져 나왔다. 먹줄의 통찰(墨線之眼)에 눈을 뜬 이후, 한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단순히 겉껍질의 형태에 머물지 않았다. 나무에 먹줄을 대고 튕기는 찰나, 목재 내부의 나이테 결, 숨겨진 옹이, 그리고 미세한 속병의 궤적이 선명한 먹선(墨線)의 형상으로 그의 뇌리에 정밀하게 그려졌다.


"한별아."


작업장 안쪽에서 도진광 대목장이 걸어 나왔다. 스승의 손에는 수십 년 동안 손때가 묻어 윤이 나는 오래된 자작나무 시줄(먹줄을 당길 때 쓰는 기준 도구)과 전통 곡척(曲尺)이 들려 있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오늘부터는 단순한 먹줄 튕기기가 아니다. 집의 뼈대를 이루는 기둥과 대들보, 짜맞춤의 핵심인 사귀물림(결구)을 파내는 날이다."


진광의 나지막한 쇳소리에는 전에 없던 엄숙함이 서려 있었다.


"기둥 하나, 들보 하나가 서로의 살을 파먹고 물리는 그 순간에 단 1mm의 오차라도 생기면, 건물의 하중은 한쪽으로 쏠려 수십 년 뒤 집 전체를 비틀어버린다. 기계로 딱 맞게 잘라내는 쇳덩이와 달리, 나무는 제 몸을 비틀며 평생 숨을 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진광은 한별이 얼마 전 먹줄의 통찰로 속병을 밝혀내고 남은, 아주 단단하고 울창한 육송 샛기둥 감 소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이 기둥에 장부(장부맞춤을 위한 턱)를 파내기 위한 먹을 쳐라. 네가 깨달은 그 눈으로, 이 나무가 평생 집의 하중을 버텨낼 가장 정직한 숨구멍을 찾아내어 먹선을 그어라."


"예, 어르신."


한별은 무릎을 꿇었다. 먹통에서 팽팽하게 당겨 나온 먹실이 소나무 기둥의 거친 표면 위로 올려졌다.


한별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야가 투명하게 개운해지며, 소나무 기둥 내부의 단단한 심재 나이테들이 붉고 노란빛의 띠를 이루며 환히 투시되어 왔다. 백 년 동안 산자락의 폭풍우를 견뎌낸 나무의 거친 맥박, 즉 목맥(木脈)이 한별의 손끝을 타고 아늑한 파동으로 전해져 왔다.


'이 나무는 남쪽으로 비탈진 산자락에서 자란 놈이다. 하중을 받는 왼쪽 결이 훨씬 단단하고 밀도가 높다. 그렇다면 장부의 턱을 0.5mm 정도 깊게 파내어 대지의 무게를 수직으로 받아내게 해야 한다.'


한별은 엄지손가락으로 먹실의 한복판을 단단하게 집어 올렸다.


'딱――!'


맑고 차진 마찰음이 온 작업장의 정적을 깨트렸다.


흩날린 먹물 방울들이 허공에서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소나무 기둥 표면 위에는 기둥이 지탱해야 할 가장 바르고 정직한 장부의 결구선이 검고 선명하게 새겨졌다. 나무의 내부 결을 완벽하게 읽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그을 수 없는, 완벽한 대목의 지도였다.


진광은 한별이 그어놓은 먹선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스승의 거친 손가락 끝에 검은 먹물이 묻어났지만, 진광의 깊은 눈매 속에는 짙은 대견함과 경탄이 번져가고 있었다.


"나무의 숨결을 완벽하게 잡았구나. 네 손끝에 더 이상 도시의 망설임이 없다."


"어르신께서 정직한 연장의 날을 세우는 법을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진광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을 받았다.


"아니다. 가르침은 인연의 도화선일 뿐, 그 정직함을 제 영혼 속에 받아들인 것은 네놈 자신의 바른 마음이다. 이제 네 손은 단순히 연장을 다루는 손이 아니다. 나무와 대지의 맥을 이어주는 진짜 대목수(大木匠)의 손이다."


바로 그 경탄의 순간, 작업장 어귀 오솔길 너머로 고급 세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산골의 평온한 정적을 사정없이 찢으며 다가왔다.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작업장 마당가에 요란하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빗속에서 한별의 가슴팍을 밀쳐내며 그를 매장시켰던 태산건설의 현장 총괄이사, 임태성이 명품 구두로 흙탕물을 밟으며 내렸다.


그의 뒤에는 험악한 인상의 사복 용역 인부 둘이 따라붙어 있었다.


"하하, 이거 참! 이런 깡촌 구석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목장 영감이 숨어 살고 계셨을 줄이야."


임태성은 한별을 발견하자마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비웃음을 띠며 한별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이, 서한별 소장? 아니지, 이제는 횡령범 불량 소장에, 산골 톱밥 깎는 인부 새끼라고 불러야 하나? 꼴이 아주 볼만하네!"


한별은 손에 쥐고 있던 감나무 먹통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굳은살 아래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분노의 불꽃이 다시금 뜨겁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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