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태성의 비아냥거리는 음성이 향긋한 대팻밥 향기로 가득하던 작업장의 공기를 순식간에 차갑고 오염된 쇳가루 냄새로 물들였다.
한별은 손에 쥐고 있던 먹통을 고쳐 쥐며 천천히 일어섰다. 억울하게 매장당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날의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거센 파도처럼 치밀어 올랐으나, 그의 두 눈은 스승의 옆에서 그어왔던 검은 먹선처럼 아득하리치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까진 무슨 비리 서류를 들고 찾아왔나, 임 이사."
한별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산골의 정적을 갈랐다. 임태성은 한별의 정돈된 눈빛과 당당해진 체구에 순간 주춤했으나, 이내 허허 웃으며 품 안에서 두꺼운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비리 서류라니, 서 소장. 아, 아니지. 이젠 서 목수라고 불러줘야 하나? 내가 오늘 여길 찾아온 건 너 따위 벌레한테 따질 게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 계신 도진광 대목장 영감님을 모시러 온 거다."
임태성은 한별을 스쳐 지나가 툇마루에 묵묵히 서 있는 도진광 영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억지스러운 정중함을 보이며 두꺼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어르신. 저희 태산건설이 이번에 강원도와 손을 잡고 수천억 원 규모의 대형 한옥 문화단지 공사를 진행합니다. 정부에서도 사운을 걸고 지원하는 대사업입니다. 거기에 어르신을 총괄 대목장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계약금만 십억, 완성 후 인센티브는 따로 챙겨드리죠."
진광은 임태성이 내민 서류 봉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담배대를 툭툭 털며 나지막이 물었다.
"수천억짜리 한옥 단지라…… 그 거대한 집을 짓는 데 무슨 나무를 쓰느냐?"
임태성은 기다렸다는 듯 입리를 비틀며 답했다.
"요즘 세상에 백 년 된 국산 육송을 언제 다 구합니까? 북미산 저가 수입 목재에 화학 방부 처리를 깔끔하게 해서 들여올 겁니다. 겉에 전통 단청만 화려하게 칠해놓으면 전문가도 모릅니다. 어르신은 그저 이름만 올려주시고, 상량식 때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그 순간, 한별의 눈앞에 임태성이 내민 서류 봉투 뒤로 숨겨진 거대한 비리의 그림자가 '먹줄의 통찰'처럼 투시되어 들어왔다.
화려한 한옥 단지의 도면 뒤에 숨겨진 썩은 수입 목재들, 방부제 냄새 진동하는 가짜 기둥들, 그리고 순식간에 이윤을 챙기고 무너져 내릴 시한폭탄 같은 부실 건물들의 환영.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중국산 가짜 철근으로 사람의 목숨을 담보 잡았던 태산건설의 탐욕이, 이제는 대지의 나무와 전통의 이름마저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
"거짓으로 세운 집은 천 년을 가지 못하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법이다."
한별이 임태성의 앞을 막아서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화학 약품으로 떡칠한 저가 수입재로 겉만 화려한 껍데기 한옥을 짓겠다고? 어르신의 이름과 전통을 너희의 더러운 탐욕에 이용할 생각 마라. 그건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쓰레기 무덤을 만드는 짓이다."
"이 횡령범 새끼가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임태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졌다. 임태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 서 있던 거구의 용역 인부 둘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두 손에 박힌 단단한 장인의 굳은살과, 대지의 무게를 견뎌낸 목수의 기개가 용역들의 기세를 완벽하게 눌러버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도진광 영감의 무거운 쇳소리가 온 마당을 울렸다.
"꺼져라."
진광은 임태성이 내민 서류 봉투를 발밑으로 툭 차버렸다.
"나무의 결도 모르고, 대지의 정직함도 모르는 장사꾼 놈들이 감히 대목의 이름을 팔려 드느냐. 수천억이 아니라 수조 원을 가져와도 썩은 나무 위엔 단 하나의 먹줄도 튕기지 않는다."
"어르신! 후회하실 겁니다! 세상을 모르는 저 횡령범 새끼 말만 듣다간 이 찌그러진 산골짝에서 고사당할 줄 아십시오!"
임태성은 발밑에 떨어진 서류 봉투를 챙겨 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한별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이빨을 갈았다.
"서한별, 네놈이 감히 내 사업에 또 초를 쳐? 좋다. 어디 저 늙은이 밑에서 대팻밥이나 씹어가며 얼마나 버티나 보자. 한옥 단지 현장에서 다시 마주치면 그땐 진짜 매장시켜 주마!"
임태성은 신경질적으로 돌아서며 검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요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승용차가 산골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고, 다시금 조용한 산골의 정적과 향긋한 송진 향이 작업장 마당을 채웠다.
한별은 스승 도진광을 바라보았다. 진광의 깊은 눈매는 산자락을 지키는 노송처럼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한별아."
"예, 어르신."
"저놈들이 가짜 목재와 탐욕으로 거대한 거짓의 집을 세우려 하는구나. 세풍(世風)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 참된 대목수는 자신이 그은 바른 먹선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는 법이다."
진광은 한별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준비하거라. 저놈들이 가짜로 올릴 한옥 단지 현장에서, 네가 깨달은 그 정직한 먹줄의 통찰로 놈들의 거짓을 완전히 베어내야 할 날이 올 테니."
"예, 어르신. 결코 굽히지 않겠습니다!"
저무는 봄 노을빛이 작업장 정반 위에 놓인 완벽한 기둥 자재 위로 황금빛 축복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자본의 거대한 음모와 부실공사의 그림자가 다시금 다가오고 있었지만, 더 이상 청년 서한별은 벼랑 끝에서 울먹이던 약자가 아니었다. 스승의 가르침과 '먹줄의 통찰'로 무장한 진짜 대목수의 거룩한 호흡이, 거대한 거짓의 폭풍을 향해 단단하고 정직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