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원도 영월 사자산의 겨울은 깊어갈수록 산골짜기의 모든 생명을 차갑게 얼려버릴 듯 혹독해졌다.
계곡물은 이미 육중한 얼음 밑으로 소리를 숨겼고, 작업장 정반 위에 놓인 육송 고목들의 껍질 위에는 매일 아침 서리꽃이 하얗게 칼날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나 서한별의 작업복은 이미 흘려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그의 손바닥에 터졌던 핏자국은 어느새 검붉고 두꺼운 장인의 굳은살로 단단하게 터를 잡아가고 있었다.
한별은 스승이 넘겨준 작은 먹칼과 감나무 먹통을 쥐고, 마당 한구석에 누워 있는 백 년 된 육송 대들보 감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힘으로 대패를 밀거나, 두려움으로 먹줄을 당기지 않았다. 스승 도진광의 곁에서 수천 번 대패질을 반복하고 먹줄을 튕기며, 한별은 차가운 건축 공학의 숫자 대신 대지가 키워낸 나무의 온기와 정직한 결을 몸으로 터득해가고 있었다.
"어르신, 이 대들보 감 소나무에 먹줄을 튕기겠습니다."
툇마루에서 낡은 담배대를 물고 계시던 도진광 대목장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나지막이 응수했다.
"튕겨 보아라. 그 나무는 산 북쪽 음지에서 백 년을 견딘 놈이다. 결이 빼곡하고 고집이 셀 터이니, 네 안의 먹선이 흐트러지면 나무가 먼저 알아채고 실을 튕겨낼 게다."
"예."
한별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기둥 단면에 먹칼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먹실을 끌어당겨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손끝을 통해 전달되는 먹실의 팽팽한 장력. 한별은 무릎을 꿇고 앉아 먹줄의 한복판을 집어 올렸다.
스아아―. 산골의 차가운 바람이 먹실을 스치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한별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마음속 깊은 곳의 번뇌를 털어내고 오직 소나무와 먹실의 단 하나의 중심축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바로 그 찰나였다.
'딱――!'
먹줄이 소나무 표면을 때리고 튕겨 나간 순간, 한별의 뇌리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전율이 전신을 관통했다.
망막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은빛 파문이 사방으로 번져나가더니, 그의 시야 전체가 마치 투시경으로 들여다보듯 판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
한별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키며 손에 쥐고 있던 먹통을 떨어뜨릴 뻔했다.
눈앞에 누워 있는 거대한 육송 고목. 조금 전까지는 그저 거친 껍질과 요철로 둘러싸인 투박한 나뭇토막에 불과했던 소나무의 내부가, 한별의 눈앞에 투명한 수채화처럼 투시되어 환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무껍질 아래 숨겨진 촘촘한 붉은 나이테의 결들, 백 년 동안 땅속 깊은 곳에서 수분을 끌어올렸던 은밀한 수맥(水脈)의 궤적, 그리고…… 나무 기둥 한복판 깊은 곳에 검게 둥지를 틀고 있는 균열과 속병이 눈앞에 선명한 검은 선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뭐지?'
한별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어 비벼보았다. 하지만 환각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단단하고 멀쩡해 보이는 백 년 고목이었지만, 그 내부 깊은 곳에는 백 년 전 태풍으로 인해 나뭇가지가 찢겨 나갔을 때 스며든 빗물로 인해 속이 새 검게 썩어 들어간 '심재 부후(心材腐朽)'의 상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만약 이 속병을 알지 못하고 이 소나무를 무거운 지붕을 지탱할 대들보로 사용한다면, 수년 뒤 건물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기둥 한복판이 사정없이 꺾여 내려앉을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한별이 조금 전 튕겨 놓았던 검은 먹선이 그 소나무의 속병이 시작되는 균열의 경계선을 정밀한 레이저처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먹줄을 튕기는 순간, 자신의 손끝과 정직한 마음이 나무의 숨겨진 상처와 교감하며 그 내부의 균열을 눈앞에 시각화해 낸 것이었다.
"어르신! 이 소나무……!"
한별이 경악에 차 소리치며 일어서려 하자, 툇마루에 앉아 있던 도진광 대목장이 담배대를 툭툭 털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진광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한별의 떨리는 눈빛과 정반 위에 그어진 먹선을 가만히 바라보는 진광의 깊은 눈매 속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언가를 마침내 확인했다는 듯한 깊은 감회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눈을 떴구나."
진광의 나지막한 쇳소리가 차가운 겨울 산골의 정적을 묵직하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