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원도 영월의 밤은 소리 없이 찾아오지 않았다.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이 작업장의 함석지붕을 울렸고, 낮 동안 햇살을 품어 안았던 육송 고목들은 시린 냉기 속에서 미세한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바짝 좁혀나갔다.
서한별은 작업장 한구석, 조그만 주황색 알몸 전구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빛 아래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낮에 도진광 대목장이 던져주고 간 커다란 소나무 기둥이 누워 있었다. 손바닥 전체가 쓸려 붉은 속살이 드러났고, 찢어진 피부 틈새로 시린 바람과 송진(松脂)이 스며들어 손가락을 굽힐 때마다 뼛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스윽, 슥…….'
한별은 이를 악물고 무쇠 대패를 다시 밀었다. 그러나 스승이 잡아줄 때처럼 매끄러운 비단실 대팻밥은 피어오르지 않았다. 대패날은 어김없이 소나무의 강한 결에 걸려 턱턱 멈춰 섰고, 목재 표면은 매끄러워지기는커녕 뜯겨 나간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대기업 건설사 소장 시절, 그는 수십억 원짜리 독일제 타워크레인을 조종하고, 최첨단 레이저 수평계로 단 0.1mm의 오차를 계산하던 스마트한 건축 공학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차가운 철제 대패 한 자루와, 백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낸 야생의 소나무 한 토막뿐이었다.
공학 수식도, 컴퓨터 도면도 이 거친 나무의 고집스러운 결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아…… 하아……."
한별의 입에서 하얀 김이 거칠게 피어올랐다. 손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대패 자루를 붉게 적셨다.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지식과 자부심이, 이 소나무 기둥 하나를 제대로 깎아내지 못해 사정없이 도륙당하는 느낌이었다.
정녕 자신은 자본의 돈줄이나 대어주던 껍데기 건축가에 불과했던 것일까. 억울함과 수치심, 그리고 육체적 통증이 밀물처럼 밀려와 한별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바로 그때였다.
"나무를 원망하지 마라."
어둠 속에서 묵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도진광 대목장이 낡은 사내용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무릎 관절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진광의 손에는 짚으로 엮은 작은 공구집과 기름칠을 한 헝겊이 들려 있었다.
진광은 한별의 피투성이가 된 손을 무심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툇마루 구석에 털썩 앉았다.
"네놈은 지금 나무를 다듬는 게 아니라, 나무와 싸우고 있구나."
"……어르신, 대패날이 결을 타고 나가질 않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소나무가 제 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한별이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진광은 코웃음을 치며 공구집에서 조그만 숫돌 하나와 기름병을 꺼냈다.
"대패질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놈이 쥐고 있는 그 대패, 날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다. 무딘 철판으로 나무의 살을 짓눌러 깎으려 드니, 나무가 제 몸을 뜯어내며 비명을 지르는 게지."
진광은 한별의 손에서 대패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패집에서 쇠로 된 대패날을 툭툭 쳐서 분리해 냈다.
"목수가 제 연장의 날조차 바로 세우지 못하면서 어떻게 나무의 결을 읽겠느냐. 보아라."
진광은 숫돌 위에 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후, 무쇠 대패날을 얹었다. 그리고 연부작대(研斧作針)의 심정으로, 정밀한 기계처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대패날을 밀고 당기기 시작했다.
'슥-삭, 슥-삭, 슥-삭…….'
고요한 산골의 밤공기 속으로 숫돌과 쇠가 마찰하는 정직하고 단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광의 두 손은 노송의 껍질처럼 거칠고 비틀려 있었으나, 숫돌 위를 움직이는 대패날의 각도는 단 1도도 흔들리지 않았다. 삼십 년, 아니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연장을 다듬어온 장인의 몸에 완벽하게 각인된 정직한 수평이었다.
한별은 침을 마른 채 삼키며 진광의 손끝을 응시했다. 차가운 쇠와 단단한 숫돌이 마찰하며 만들어내는 그 둔탁한 소리 속에서, 한별은 자신이 도심의 현장에서 놓치고 살았던 단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최첨단 레이저 수평계와 컴퓨터 프로그램만을 믿었지, 정작 건물을 지탱하는 자재와 연장,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제 자신의 손끝을 단 한 번도 정직하게 다듬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목수에게 연장은 제 몸의 연장(延長)이다."
진광이 대패날을 들어 달빛에 비추어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날 끝에서 서슬 퍼런 은빛 선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연장의 날이 정직하게 서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백 년 고목이라도 땔감으로 만들어버리는 법이지. 시멘트와 철근을 다루던 놈이라 손끝이 무딜 줄은 알았다만…… 네 안의 나태함까지 무뎌져서는 안 된다."
진광은 잘 갈린 대패날을 다시 대패집에 넣고 망치로 툭툭 두드려 미세하게 날의 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한별을 향해 대패를 다시 내밀었다.
"다시 쥐어라. 이번엔 힘을 빼고, 네 어깨의 무게만을 실어 미는 거다. 나무의 결이 보일 때까지, 네 손바닥의 피가 멈출 때까지 끊이지 않고 밀어라."
한별은 떨리는 손으로 스승이 다듬어준 대패를 받아 들었다.
손바닥의 상처는 여전히 뼛속까지 시리게 아팠지만, 대패 자루를 쥐는 그의 손끝에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묵직한 전율이 흘러들고 있었다. 한별은 아랫배로 길게 숨을 밀어 넣으며,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소나무 고목을 향해 천천히 몸을 숙였다.
스승이 세워준 예리한 은빛 날이, 마침내 차가운 소나무의 표면에 정직하게 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