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길을 짓는 자〉

소설

by산들강바람


第1章 : 벼랑 끝의 손 (懸崖) — [後半部]


강원도 영월 사자산 밑자락에 들어서자, 도심을 지배하던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차가운 열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알싸한 흙내음과 얼어붙은 이끼 향이 허파꽈리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어 내렸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족히 한 시간은 걸어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골. 서한별은 초라한 가방 하나만을 어깨에 멘 채, 눈이 듬성듬성 쌓인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흙과 눈 밟히는 소리는, 아스팔트 위를 가차 없이 내달리던 거대 건설 현장의 미친 듯한 굉음과 달리 서글플 정도로 정직하고 온화했다.


산자락 구비마다 들어선 낙송(落松) 숲에서는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와 앙상한 나뭇가지를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대지가 내쉬는 깊은 한숨 같기도 했고, 정직함을 빼앗긴 채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청년을 향해 나지막이 건네는 위로 같기도 했다.


마침내 오솔길이 끝나는 산자락 터에 도달했을 때, 한별의 눈앞에 낮게 웅크린 기와지붕 몇 채와 넓은 목재 작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은 도진광 대목장의 현장이었다.


작업장 정반 위에는 아직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거대한 육송(陸松) 고목 수십 그루가 육중하게 누워 있었고, 사방에는 시큼하면서도 향긋한 송지(松脂) 향과 함께 새하얀 대팻밥들이 눈꽃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도심의 현장이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비린 유압유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면, 이곳은 정과 망치가 나무를 때리는 둔탁한 울림과 묵직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작업장 한복판, 키가 작고 어깨가 바위처럼 벌어진 노인 한 명이 거대한 대들보 감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 수십 년간 나무를 다듬느라 노송의 뿌리처럼 거칠게 뒤틀린 두 손. 대한민국 마지막 전통 대목장, 도진광이었다.


진광은 나무 기둥 위에서 단단한 참나무 망치로 자루를 때리며 끌질을 하고 있었다. 탕, 탕, 탕. 둔탁하지만 일정한 리듬을 타고 퍼지는 그 소리는 마치 대지의 심장 소리처럼 산골짜기를 울렸다. 한별은 차마 그 거룩한 신성(神聖)을 깨뜨리지 못하고, 작업장 어귀에 선 채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끌질을 끝낸 진광이 휜 허리를 천천히 펴더니, 땀과 톱밥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한별을 바라보았다. 깊게 파인 눈골 사이로 빛나는 진광의 두 눈은, 웬만한 청년보다 예리하고 단단하게 살아 있었다.


"왔느냐."


쇳소리가 섞인 무뚝뚝한 한마디였다. 진광은 나무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툇마루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무릎에서는 관절이 스치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르신, 찾아뵈었습니다."


한별은 가방을 내려놓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고 범죄자로 매장당한 자신을 받아준 유일한 장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진광은 툇마루에 털썩 앉아 낡은 보온병에서 따뜻한 숭늉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는 한별을 아래위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혀를 굿 차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얼굴 꼬락서니가 꼴이 아니구나. 시멘트 먼지와 거짓 냄새가 뼛속까지 씌어 있어."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네놈이 부주의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지."


진광이 숭늉 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묵직하게 말을 받았다.


"콘크리트에 화학 약품을 들이붓고, 자재를 빼돌려 수천억짜리 껍데기 건물을 세우는 놈들 속에서 네가 정직하려 했으니 부러지는 것이 당연하다. 쇳덩이와 돈으로 세운 건물은 천 년을 가지 못해. 오직 대지의 무게를 정직하게 받아낸 나무만이 시간을 견디는 법이다."


진광은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는 커다란 나뭇토막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가서 대패 하나 집어 들어라."


"예……?"


한별이 얼떨결에 되묻자, 진광의 눈매가 매섭게 빛났다.


"네놈이 내 밑에서 먹통을 쥐고 싶다면, 먼저 네 손에 박힌 허영과 매끈한 도시의 때부터 벗겨내야 한다. 저 소나무 기둥, 겉껍질을 벗겨내고 완벽한 평면이 될 때까지 대패질을 해라.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끝내지 못하면 미련 없이 산을 내려가거라."


한별은 침을 마른 채 삼키고 작업장 구석으로 걸어갔다. 낡은 공구함 안에는 무게감이 묵직한 전통 대패 수십 자루가 정리되어 있었다. 한별은 그중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무쇠 대패 하나를 쥐었다.


나무 기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패를 목재 표면에 가져다 대었다. 대기업 건설사 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수많은 기계와 최첨단 공법을 지시해 왔지만,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나무를 다듬는 것은 대학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차갑지 않다…….'


한별은 손바닥에 닿는 소나무의 감촉에 흠칫했다. 철근이나 시멘트가 주던 시리고 거친 저항과 달리, 이 거대한 소나무 고목에는 척박한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은밀하고 따스한 생명의 온기가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한별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대패를 앞으로 힘껏 밀었다.


'슥――!'


그러나 대패는 나무 표면에 턱 걸리며 엇나가 버렸다. 소나무의 결을 읽지 못하고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인 탓이었다. 대패날이 나무 결을 씹어 파먹으며 투박한 상처를 남겼다.


"멍청한 놈!"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진광의 호통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나무를 제압하려 하지 마라! 대패질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네 몸의 무게를 싣고, 나무가 결을 열어주는 방향을 따라 네 숨을 맡겨야 해. 나무가 살았던 세월의 방향을 읽지 못하면 대패는 결코 나가지 않는다!"


진광이 한별의 손을 덮쳐 쥐었다.


노인의 손은 거칠기가 오돌토돌한 나무껍질 같았으나, 그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힘은 대지를 움켜쥔 바위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진성은 한별의 손을 인도하며 대패의 각도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숨을 길게 내쉬어라. 어깨의 힘을 빼고, 내 몸이 나무의 결이 된다고 생각해라."


'스아아아아――'


진광의 손길을 따라 대패가 밀려 나가자, 이번에는 기적처럼 완벽한 비단실 같은 흰 대팻밥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피어올랐다. 향긋한 송진 향이 공중으로 터져 나왔고, 대패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기 피부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소나무의 속살이 은은한 윤기를 띠며 드러났다.


한별은 숨을 멈추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올라오는 이 단정하고 정직한 전율.


자본의 거짓과 모함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었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건축의 진실'이 푸른 불꽃처럼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알겠느냐."


진광이 한별의 손을 놓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네가 정직하게 숨을 불어넣으면 정직하게 길을 열어주고, 네가 탐욕으로 밀어붙이면 어김없이 이빨을 드러내어 너를 거부한다. 네가 빼앗긴 것은 직함과 돈일뿐이다. 네 안의 정직함마저 잃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다시 바른 선을 그어가거라."


저무는 겨울 산골의 노을빛이 작업장 지붕 너머로 피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수천 도의 용광로보다 더 깊고 온화한 저녁 태양의 빛이, 대패를 쥐고 무릎을 꿇은 청년의 단단해진 어깨를 황금빛으로 감싸 안았다.


한별은 대패를 다시 거머쥐었다. 손바닥이 벗겨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통증조차 잊은 채 소나무의 결을 따라 대패를 밀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가득 찬 도심의 쇳가루를 털어내고, 마침내 대지와 나무가 가르쳐주는 가장 정직한 '먹줄의 길'을 향해, 젊은 대목수의 첫 대패질이 가라앉은 산골의 정적 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단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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