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二十章:松濤 (송도) — 거친 세월을 견딘 푸른 소나무


봄의 입김이 골짜기 깊은 곳까지 온전히 스며들자, 뒷산의 묵은 눈이 녹아내려 작은 개울을 이루고 대지는 비옥하고 부드러운 냄새를 뿜어냈다. 산골 마을의 아침을 깨우는 바람은 이제 시린 한기를 털어내고, 얼어붙었던 모든 생명에게 푸른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오진성(吳眞聲)은 마당 한구석, 어린 시절부터 가만히 바라보았던 낙송(落松) 아래 정직하게 서 있었다.


그의 두 손은 평생을 마주했던 삼십 년 노동의 흔적으로 여전히 두껍고 거칠었으나, 이제 그 손끝에는 철을 자르던 서슬 퍼런 긴장 대신 대지의 온기를 받아들이는 고요함이 깊게 깔려 있었다. 그가 툇마루에서 깎아내던 소나무 조각은 마침내 단정한 모양을 갖추어, 정반 위에 굳건히 서 있던 한 인간의 거칠고 단단한 뒷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둔탁하지만 일정한 걸음걸이가 다가왔다. 강민우였다.


청년의 손에는 새로 만든 작업복 가방과 함께, 자신이 지난 한 달간 민간 현장에서 다듬어낸 작은 철제 구조물 조각 하나가 들려 있었다. 민우는 마당으로 들어서며 스승을 향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장님, 이것 보십시오. 제가 지난주 현장에서 직접 불꽃을 대어 잘라낸 단면입니다."


민우가 내민 철판의 단면은 은빛의 정교한 결을 띠고 있었다. 단 일 밀리미터의 뒤틀림도, 과열되어 씹힌 자국도 없는 깔끔하고 정직한 직선이었다. 스승의 손끝에서 청년의 손끝으로 이어진 삼십 년의 호흡[心音]이, 비록 공장은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꺾이지 않고 정직하게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증표였다.


진성은 굳은살 박인 손가락으로 그 철판의 단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바르는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이제 자네의 불꽃은 세상의 어떠한 차가운 철판 앞에서도 자기 길을 잃지 않을 게야."


진성의 나지막한 칭찬에 민우의 눈가가 아련하게 붉어졌다. 청년은 스승의 옆에 서서 먼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봄바람이 수천 그루의 소나무 숲을 흔들자, 마치 거대한 바다가 울부짖는 듯한 웅장하고 깊은 소리, 즉 송도(松濤)의 울림이 온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삼십 년간 그들이 공장에서 들었던 프레스 기계의 무자비한 굉음이나 차가운 유압 소음과는 완전히 다른, 대지가 스스로 올려 보내는 생명의 거룩한 고동이자 장엄한 찬가였다.


진성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그 푸른 소나무의 파도 소리를 가슴 깊은 곳으로 받아들였다.


쇳물이 피어오르던 차가운 정반 위에서 시작된 서툰 불협(不協)과 방황, 초열의 불꽃을 당기던 도화(導火)의 가르침, 살을 데어내며 새긴 연대의 낙인(烙印), 그리고 자본의 냉대한 한풍(寒風)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장인의 정선(正線). 수많은 고난과 상처를 온몸으로 통과해 낸 두 노동자의 생은, 마침내 저 거친 바람 속에서도 곧게 뿌리를 박은 푸른 소나무처럼 바르고 존엄하게 서 있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하고, 인간의 땀방울보다 기계의 효율을 찬양하며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기계의 디지털 수치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숙련, 물질을 마주하며 바쳤던 정직한 땀방울, 그리고 늙은 장인에서 젊은 신공으로 연결된 뜨거운 영혼의 전승(傳承)은 이 대지 위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진성은 마당 한구석의 소나무 기둥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민우야. 세상이라는 정반 위에서 네 불꽃을 당길 때마다 기억하거라. 단단한 철을 자르는 것은 황동 토치가 아니라, 네 안의 바른 마음이라는 것을."


"예, 반장님. 평생 가슴에 새기고 걸어가겠습니다."


바람이 다시금 크게 불어와 두 사내의 옷깃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푸른 솔바람 소리가 웅장한 파도처럼 골짜기를 채우고, 저무는 봄 햇살이 두 노동자의 단단한 어깨와 잘려 나간 철판의 은빛 단면 위로 찬란한 황금빛 축복을 내리쬐고 있었다.


쇳물(鐵水)의 뜨거운 사나움으로 시작하여 소나무(松樹)의 깊은 고요로 갈무리된 한 장인의 위대한 서사가, 그렇게 푸른 송도(松濤)의 여운 속에서 아름답고 완벽하게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굵고 정직한 인간의 직선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끝없이, 푸르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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