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향 마을의 아침은 공장의 사이렌 대신 계곡물이 얼음 밑으로 조용히 구르는 소리와 함께 찾아왔다. 오진성(吳眞聲)은 길들여진 몸의 시계에 따라 어김없이 일찍 눈을 떴으나, 눈을 떴을 때 그의 머리 위로 육중하게 내리누르던 천장의 유압 파이프나 검은 쇳가루 자욱한 양철 지붕은 없었다. 박공지붕의 단정한 목재 창살 너머로 겨울 아침의 투명한 햇살이 바른 직선을 그리며 창호지 위로 쓸쓸하고도 맑게 스며들고 있었다.
진성은 정반 대신 마당의 나뭇가지 아래로 걸어 나갔다.
손바닥에 마비처럼 남아 있던 토치의 전율과 손목의 경련은 산골의 정적 속에서 차츰 무뎌져 갔다. 그러나 삼십 년간 제 몸의 일부처럼 밀착되어 있던 황동 화구(火口)의 무게감과, 그 자루를 쥐었을 때 느껴지던 가스 관의 미세한 맥박은 여전히 손가락 마디마디에 깊은 여운(餘韻)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기억이 아니라, 그의 육체 자체가 고스란히 정직한 노동으로 구축된 하나의 완성된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진성은 마루 밑에 챙겨둔 가방에서 민우에게 물려주고 남은, 젊은 시절 처음 손에 쥐었던 작고 그을린 원형 가스 레귤레이터 조각을 꺼냈다. 이제는 기름때와 녹으로 뒤덮여 기능을 상실한 한 조각의 황동 부속. 진성은 가만히 툇마루에 앉아, 고향 집 뒷산에서 주워 온 푸른 솔가지로 그 녹슨 부속의 표면을 부드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솔잎이 황동 표면을 긁고 지나갈 때마다, 향긋한 푸른 송지(松脂)의 향기가 매캐한 옛 기름 냄새와 묘하게 섞여 들며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거칠고 사나운 쇳물의 세월과 부드럽고 굳건한 소나무의 세월이 그 작은 툇마루 위에서 부드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때, 마을 어귀 오솔길 너머로 조심스러운 발소리 하나가 다가왔다.
진성이 고개를 들자, 눈 덮인 언덕길을 걸어 올라오는 익숙한 사내의 실루엣이 보였다. 정장 차림도, 얼룩진 작업복 차림도 아닌, 단정한 차림으로 낡은 가죽 가방을 둘러멘 강민우였다.
"반장님."
청년의 목소리는 산골의 정적을 깨트리지 않을 만큼 낮고 바르았다. 민우의 얼굴은 지난달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한층 더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진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청년을 맞았다. 민우는 툇마루 아래에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놓고, 진성에게 깊숙이 절을 올렸다.
"어찌 이 멀리까지 왔느냐."
"반장님께서 그어두신 그 바른 직선이, 이곳 고향의 소나무와 어떻게 닮아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민우는 가방에서 스승이 물려주었던 그 낡은 황동 화구를 꺼내 보였다. 청년이 매일같이 닦아낸 덕분에 화구의 총열은 차가운 겨울 햇살 아래서 은은하고 깊은 황금빛 자태를 내뿜고 있었다.
"공장을 나온 뒤, 저 역시 잠시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반장님께서 제 손목에 새겨주신 불꽃의 온도와 그 묵직한 호흡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도시 외곽의 조그만 민간 창고 제작 현장에서 다시 화구를 잡고 있습니다. 비록 거대한 선박을 만드는 공장은 아니지만, 저는 매일 아침 정반 위에 반장님의 분필 선을 그으며 일합니다. 단 일 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반장님의 그 직선을 말입니다."
진성은 가만히 청년의 손을 바라보았다. 민우의 손목 위 화상 흉터는 이제 보라색에서 거무스름하고 두꺼운 세 살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스승의 손을 닮아가는 장인의 굳은살이었다.
진성은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민우야. 일터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네 영혼이 그어내는 선의 정직함이 중요한 법이지. 기계의 시대가 오고 세상이 아무리 유행을 따라 요동칠지라도, 인간이 제 손끝으로 다듬어낸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먼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너머로 푸른 솔바람이 불어와 두 사내의 작업복 옷깃을 부드럽게 흩뜨렸다.
쇳물에서 시작된 거칠고 사나운 불꽃의 서사는, 마침내 그 불꽃을 견뎌낸 인간의 깊은 영혼 속에서 푸른 소나무의 향기로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기계가 삼켜버리지 못한 장인의 존엄, 늙은 손에서 젊은 손으로 이어진 정직한 직선, 그리고 그 직선이 도달한 삶의 평온한 고요.
바람이 불 때마다 툇마루 위에 놓인 황동 화구와 소나무 기둥 사이로, 푸르고 뜨거운 생의 여운(餘韻)이 겨울 하늘 높이 끝없이, 끝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