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퇴근을 알리는 마지막 사이렌 소리가 공장의 양철 지붕을 둔탁하게 때린 후, 서글픈 잔향을 남기며 저물어가는 공장지대 위로 흩어졌다. 인부들은 서둘러 안전모를 벗어던지며 캐비닛의 소란 속으로 사라졌으나, 제1작업장 정반(定盤) 앞은 기계의 잔열조차 급격히 식어 내리며 서늘한 침묵만이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진성(吳眞聲)은 묵묵히 캐비닛 문을 열었다. 삼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녹슨 철제 캐비닛 안에는 때 묻은 사복 한 벌과 고향 언덕의 소나무 사진 한 장, 그리고 찌그러진 보온병만이 고독하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시커먼 쇳가루와 광유(鑛油) 냄새가 겹겹이 밴 작업복을 벗어 정반 위에 단정히 접어 올렸다. 평생을 피부처럼 감싸 안았던 그 거친 옷을 벗어던지자, 마치 유폐되었던 갑옷을 벗어놓은 늙은 장수의 몸처럼 어깨가 허전하도록 가벼우면서도 시리도록 무거웠다.
강민우는 스승의 옆에서 자신의 찌그러진 가죽 가방 끈을 꼭 쥐고 서 있었다. 청년의 어깨에 메어진 가방 속에서는 진성이 물려준 황동빛 화구(火口)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글픈 둔탁음을 내며 부딪쳤다.
"반장님, 선배님들이 주차장 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지막인데 약주라도 한잔……."
민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건넸으나, 진성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됐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겸손하지 못한 회한을 나눌 필요는 없지. 저들은 저들의 일터를 지켜야 하고, 나는 내게 허락된 길을 걸어갈 뿐이라네."
진성은 묵묵히 사복 코트의 단추를 채운 후, 천천히 작업장 한복판을 향해 돌아섰다. 수천 대의 기계들이 웅크리고 있는 광활한 공장 내부. 삼십 년 전, 서른의 혈기 왕성하던 젊은 인부로 들어와 사십 밀리미터 연강판의 붉은 녹을 쓸어내리던 첫날부터, 수천 도의 초열 불꽃을 뿜어내며 바닥으로 황금빛 불꽃비[火雨]를 쏟아내던 수많은 날들이 식어가는 공기의 결을 타고 환영처럼 지나갔다.
그의 오른손 마디마디에 박힌 황갈색의 두꺼운 굳은살, 살을 데어낸 수많은 화상 흉터들, 그리고 손가락을 휘게 만든 그 완강한 철(鐵)의 기억들. 공장은 그의 청춘과 육체를 삼켜버렸지만, 동시에 그 거친 쇳가루 속에서 세상의 어떠한 요령에도 속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직함과 신독(愼獨)의 절제를 가르쳐준 거룩한 제단(祭壇)이었다.
진성은 정반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향해, 그리고 자신이 평생을 마주했던 그 거무스름한 무쇠 정반을 향해 깊고 묵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 없는 작별 인사였다. 삼십 년 노동의 피와 땀을 가만히 보듬어준 일터에 대한, 장인의 가장 숭고한 예의(禮儀)였다.
공장 정문을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서리 내린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서걱거렸다. 경비실 옆 나뭇가지에는 겨울의 스산한 칼바람이 불어와 미세한 쇳가루 먼지를 사방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정문 밖을 나서서 뒤를 돌아보자, 공장의 높은 굴뚝 위로 서녘의 타오르는 노을빛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수천 도의 용광로 불꽃보다 더 정직하고 깊은, 지친 노동자의 거친 눈을 부드럽게 씻어주는 저녁의 선연한 빛이었다.
"민우야."
진성이 멈추어 서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깊게 파인 눈골 사이로 저무는 노을빛이 들어가 황금빛 선을 그리고 있었다.
"네 손목의 상처는 아물 것이고, 그 위에 돋아난 세 살은 어떠한 차가운 철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너만의 굳은살이 될 게다. 이 공장을 나선다고 해서 네 손끝에 각인된 정직한 직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정반 위에서, 너만의 바른 선을 그어가거라."
민우는 스승의 깊은 시선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청년은 가방을 고쳐 메고, 스승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절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별의 인사가 아닌, 한 장인의 영혼과 숙련을 물려받은 젊은 신공(新工)의 거룩한 맹세였다.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서로의 손을 묵직하게 잡았다. 늙은 장인의 휘어진 손과 젊은 노동자의 단단해진 손이 나눈 마지막 온기는, 가을밤의 밤바람보다 따스하고 단단했다.
진성은 정든 쇳가루와 굉음의 도시 함양(鹹陽)을 뒤로하고, 먼 고향의 겨울 계곡과 푸른 소나무 숲이 기다리는 정적의 땅을 향해 느리고 바른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로, 평생을 지켜온 삼십 년의 바른 직선들이 저무는 노을빛 속에서 고요하고 푸른 잔향(殘響)을 남기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쇳물(鐵水)의 긴 전반부가 그렇게 완벽하게 막을 내리고, 영혼의 고요와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소나무(松樹)의 후반부가 겨울의 깊은 침묵 속에서 비로소 그 첫 문장을 열어젖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