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올해의 마지막 작업일, 교대 신호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공장의 함석벽을 때렸다. 컴퓨터 배전반을 붙인 CNC 기계들이 윙윙거리며 잔여 공정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동안, 제1작업장 구석의 낡은 정반(定盤) 위에는 지독한 정적만이 고여 있었다. 사내들은 더 이상 두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비겁한 침묵이었고, 지켜주지 못한 선배와 후배를 향한 서글픈 퇴장 예의였다.
오진성(吳眞聲)은 자신의 허리춤까지 오는 정반 위에 손을 얹었다. 삼십 년간 뜨거운 쇳물과 무거운 철판을 받아내느라 온통 검은 상처와 파인 자국투성이인 무쇠 정반. 그는 가만히 그 정반의 표면을 거친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철의 냉기는 그의 척추를 타고 내려가 심장 언저리를 시리게 찔렀다.
"반장님, 공구함 정리가 끝났습니다."
강민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고했다. 청년의 어깨에 메어진 가죽 가방 안에서 황동빛 화구(火口)들이 부딪치며 둔탁한 금속성을 냈다. 그 화구들은 이제 내일부터 이 공장의 쇳가루를 마시지 못할 터였다.
진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아세틸렌 라이터를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삼십 년 전, 그가 이 함양 공설 작업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형님이라 부르던 선임 장인에게 물려받았던 기물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민우야. 가기 전에, 내 손으로 화구의 숨을 완전히 거두는 것을 보아라."
진성은 민우의 가방에서 자신이 평생을 쥐어온 가장 오래된 황동 화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가스 호스에 마지막으로 연결했다. 호스를 타고 흐르는 아세틸렌의 가냘픈 진동이 진성의 손바닥 굳은살을 자극했다. 그것은 마치 삼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늙은 전우의 마지막 맥박과도 같았다.
'팍――!'
라이터의 불꽃이 튀고, 이내 서슬 퍼런 청백색(靑白色)의 예리한 칼날이 공장의 어둠 속에서 마지막 서슬을 퍼렇게 세웠다. 수천 도의 초열(焦熱)이 진성과 민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사정없이 달구었다. 고글을 쓰지 않은 진성의 맨눈에, 저무는 겨울의 푸른 불꽃이 슬프도록 영롱하게 투영되었다.
그것은 이 거대한 기계의 제단 위에서 장인이 올리는 마지막 고독한 제례(祭禮)였다. 진성은 철판을 자르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향해 서슬 퍼런 불꽃의 정점을 응시하며, 가스의 밸브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청백색의 불꽃이 자줏빛으로, 다시 붉은 황금빛으로 색을 바꾸며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불꽃이 꺼지면, 내 삼십 년의 노동도 이 쇳가루 구덩이 속에서 완전히 갈무리되는 게야."
진성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으나, 그 음색의 깊이는 공장의 그 어떤 굉음보다도 묵직하게 민우의 가슴을 때렸다.
"물질은 정직하여 우리가 남긴 직선을 기억할 것이고, 기계는 우리의 숙련을 대체할지언정 우리가 철판 앞에 바쳤던 인간의 존엄마저 지워내지는 못하네. 불꽃을 끌 때 가장 중요한 건, 아쉬움에 손끝을 떨지 않는 거야."
진성은 천천히, 참으로 부드럽게 산소 밸브를 차단했다.
'스으으윽――'
철판을 관통하던 날카로운 고압 산소의 파열음이 단번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어서 아세틸렌 밸브를 단호하게 잠갔다.
'탁.'
순식간에 눈이 멀 것 같던 청백색의 신성한 불꽃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소멸했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매캐한 유황 연기 한 자락만이 가늘게 피어오르다, 이내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겨울의 한풍 속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 종화(終火). 장인이 스스로의 생을 바쳐 지켜온 불꽃의 완전한 종막이었다.
공장 안에는 다시 자동화 기계들의 인공적인 윙윙거림과 차가운 철의 침묵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불이 꺼진 황동 토치는 급격하게 차가운 냉철(冷鐵)로 돌아갔고, 진성은 그 화구를 호스에서 분리하여 단정하게 면장갑으로 닦아냈다.
"가세. 이제 우리 물건은 다 정리되었네."
진성은 앞치마를 벗어 정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평생 동안 기름때와 쇳가루가 겹겹이 쌓여 황갈색으로 굳어버린, 그의 분신과도 같은 수의(壽衣)였다. 그는 민우의 어깨를 짚으며 앞장서 걸어 나갔다.
공장의 거대한 함석문을 나서는 두 노동자의 등 뒤로, 깨진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겨울의 마지막 태양이 피처럼 붉은 노을빛을 가늘고 길게 뿌려대고 있었다. 불꽃은 꺼졌으나 그들이 정반 위에 새겨놓은 정직한 직선들은 그 저무는 모색(暮色) 속에서 은빛 격자무늬를 띠며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삼십 년 세월의 화구를 내려놓고 인간의 존엄을 완성한 늙은 장인의 걸음걸이는, 저무는 겨울 태양의 궤적만큼이나 곧고 단정했다. 영혼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자들의 위대한 퇴장이, 그렇게 시린 동토의 대지 위로 묵직하게 새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