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十三章:傳承 (전승) — 늙은 손에서 젊은 손으로


공장 창문에 피어난 성에가 오후의 시린 햇살을 받아 서글픈 은빛으로 바스러지던 날, 제1작업장 정반(定盤) 위에는 오직 한 줄기 푸른 불꽃만이 고독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오진성(吳眞聲)의 은퇴와 강민우의 해고가 공고된 후, 공장의 사내들은 마치 부정한 역병이라도 마주한 듯 두 사람의 작업대 근처를 서둘러 피해 가곤 했다. 자본의 가혹한 한풍(寒風) 속에서 타인의 몰락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지독한 안도와 죄바카라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독약이었기에, 그들의 주위는 공장의 소음 속에서도 기묘하려 하리만큼 적막한 절해고도(絶海孤島)처럼 변해 있었다.


그러나 진성은 그 고립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공구함에서 삼십 년간 애지중지 닦아온 황동빛 화구(火口)를 꺼내 작업대 위에 단정히 올려놓았다. 총열 곳곳에 검은 그을음과 손때가 겹겹이 쌓여 황금빛 영롱함을 잃어버린 그 쇳덩이는, 노병이 평생을 걸쳐 연마해 온 숙련의 정수(精髓)가 담긴 신물(神物)과 같았다.


"민우야, 이리 와서 내 손을 잡거라."


진성은 가죽장갑을 벗어던진 채 화구의 자루를 쥐었다. 민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승의 곁으로 다가섰다. 진성의 오른손은 이미 추위와 세월로 인해 노송의 뿌리처럼 거칠게 뒤틀려 있었으나, 화구를 쥐는 순간만큼은 대지를 움켜쥔 바위처럼 요지부동이었다. 민우 역시 맨손으로 그 무거운 황동 자루 위, 진성의 손등 위로 자신의 젊은 손을 조심스럽게 겹쳐 얹었다.


늙은 장인의 휘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손과, 이제 막살다 덴 상처 위에 붉은 세 살을 틔워낸 청년의 손이 차가운 쇳덩이 위에서 하나로 묶였다. 손바닥과 손등이 맞닿는 순간, 민우는 진성의 두꺼운 굳은살을 통해 전해오는 묵직하고도 뜨거운 고동을 느꼈다. 그것은 삼십 년 동안 철판의 심장을 꿰뚫어 온 푸른 불꽃의 기원(起源)이자, 한 인간이 평생을 지켜온 존엄한 심음(心音)의 대물림이었다.


'팍――!'


진성이 왼손으로 밸브를 조절하자,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서슬 퍼런 청백색(靑白色)의 불꽃이 허공을 찢으며 피어올랐다. 수천 도의 초열(焦熱)이 두 사람의 얼굴을 사정없이 달구었고, 고글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다시 오직 단단한 철판의 표면과 그 표면을 녹여내는 서슬 퍼런 불꽃의 정점뿐이었다.


"지금부터 내 육체가 기억하는 철의 온도를 자네의 손끝에 고스란히 이식할 게야.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내 손마디의 미세한 떨림과 이 황동 관을 타고 흐르는 가스의 숨결을 온 영혼으로 받아내게."


진성이 화구를 천천히 인도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겹쳐진 손끝이 육중한 오십 밀리미터 강판의 경계선에 닿았다. 차가운 철이 붉게 융해되어 눈물처럼 흐르고 고압 산소가 레버를 통해 터져 나오자, 정반 밑으로 찬란한 황금빛 불꽃비[火雨]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전수(傳承)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자가 삼켜버리지 못한 장인의 영혼을 육체에서 육체로, 늙은 껍질에서 젊은 세 살로 고스란히 이행하는 고독하고도 신성한 의식이었다. 철판 내부의 미세한 기포 때문에 불꽃이 반발할 때마다, 진성은 손목의 스냅을 미세하게 비틀어 철을 달래는 노련함을 보여주었고, 민우는 그 손놀림의 궤적과 압력의 변화를 자신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시켰다. 철이 뜨겁게 저항하면 숨을 멈추고 함께 단단해졌고, 철이 부드럽게 길을 열어주면 길게 숨을 내쉬며 화구의 걸음을 부드럽게 재촉했다.


'지치지직, 콰아아아――'


공장 저편에서는 여전히 CNC 자동화 기계가 차가운 구동음을 내며 레이저를 뿜어대고 있었고, 사방을 에워싼 콘크리트 벽면은 자본의 한풍으로 흔들리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공유하는 정반 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순수한 인간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진성의 거친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월의 무게가 민우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흘러들어올 때마다, 청년은 가슴 한구석이 서글프도록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스승은 지금 자신의 잘려 나간 삶의 자리를 슬퍼하는 대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정직한 직선의 도화선[導火]을 청년의 내면에 완벽하게 당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자로 잰 듯이 곧은 은빛 격자무늬가 두 사람의 발치 아래로 길게 늘어섰다. 마침내 철판의 마지막 한 치가 완벽하게 갈라지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진성은 천천히 산소 밸브를 잠갔다. 청백색의 신성한 불꽃이 소멸하자, 작업장에는 다시 차가운 겨울의 침묵이 밀려들었다.


진성은 화구를 내려놓고 자신의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삼십 년간 철을 지배해 온 그의 손끝은 이제 눈에 띄게 힘이 빠져 있었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자신의 불꽃을 온전히 받아낸 청년의 단단해진 손목을 보며 깊고 고요한 평온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내 화구는 자네의 손에서 다시 타오를 게야."


진성은 자신의 낡은 황동 화구를 민우의 품에 묵묵히 안겨주었다.


청년은 스승이 건넨 세월의 무게를 두 손으로 받쳐 쥐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공장의 깨진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매서운 한풍은 여전히 자욱한 쇳가루를 쓸어가며 노동자들의 생을 시리게 파고들었지만, 늙은 장인의 손에서 젊은 신공(新工)의 손으로 이어진 푸른 불꽃의 전승은, 기계의 수치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가장 뜨거운 증거로 그 척박한 정반 위를 고요히 밝히고 있었다. 영혼의 불씨는 그렇게 꺾이지 않고 다음 세대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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