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十二章:斷面 (단면) — 잘려 나간 삶의 자리


인사과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진성이 다시 작업장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공장의 굉음은 여전했으나 그를 향한 사내들의 시선은 일제히 죽은 듯이 가라앉았다. 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완강하게 굳어 있었고, 거친 장화 굽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한 보폭으로 자욱한 쇳가루를 밟아 나갔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정반(定盤) 앞에 멈추어 서서 조심스럽게 가죽장갑을 낄 때, 그의 조수 강민우는 스승의 휘어진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삼십 년 동안 수천 도의 불꽃 앞에서도 단 일 밀리미터의 흔들림 없던 그 손이었다.


진성은 정반 위에 놓인 채 채 잘리지 못했던 두꺼운 강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마주해 온 삶의 원고지이자, 이제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을 마지막 영토(領土)였다.


"반장님……."


민우가 다가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불렀다.


진성은 고개를 들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깊게 패인 눈골 사이로 겨울의 시린 음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올해 말까지라더구나."


진성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깊은 성대 밑바닥에서 긁혀 나왔다.


"회사에서는 내게 저 신형 CNC 기계의 조작법을 배워 청년 인부들을 감시하는 조장 자리를 제안했네. 내 삼십 년 숙련의 대가로, 저 거대한 기계 장치의 충직한 개가 되라는 게지. 그리고…… 자네를 포함한 신공(新공)들의 해고 명단에 내 손으로 도장을 찍으라 하더군."


민우의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자본의 한풍(寒風)은 단순히 인간을 쫓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생을 지켜온 장인의 긍지와 인간적인 연대마저 참혹하게 분쇄하려 들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소나무의 가지를 꺾어 동료를 내리쳐야 하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생존의 징벌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반장님. 어차피 저는 서툰 조수일뿐입니다. 반장님께서는 공장에 남으셔야지요."


민우는 입술을 깨물며 붕대 찬 손목을 가죽 앞치마 뒤로 숨겼다. 스승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젊은 노동자의 서글픈 자존심이었다.


진성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공장 구석에서 푸른빛을 내뿜으며 차갑게 구동 중인 자동화 기계의 단면을 향했다.


"아니다, 민우야. 타인의 살점을 딛고 서 있는 자리는 결코 인간의 자리가 될 수 없어. 기계의 스위치를 누르며 동료의 퇴출을 감시하는 것은 장인의 노동이 아니라, 영혼을 파는 일일 뿐일세. 나는 내 손으로 화구(火口)를 잡고 철을 자를 때만 오진성일 수 있네. 내 삶의 단면(斷面)은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법이야."


진성은 묵묵히 오른손에 황동빛 화구를 쥐었다. 그리고 삼십 밀리미터 두께의 조선용 강판 위에 백색 분필로 마지막이 될지 모를 단정하고 바른 직선을 그어 내렸다. 그것은 공장의 흉흉한 균열 속에서, 한 장인이 자신의 영혼과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마주한 최후의 경계선이었다.


'팍――'


라이터 불꽃이 허공을 찢고, 이내 청백색(靑白色)의 예리한 서슬이 단단하게 피어올랐다. 진성은 평소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였고, 그의 온 신경은 토치 끝에 맺힌 푸른 열기로 모여들었다. 고압 산소가 철판의 심장을 관통하자, 정반 밑으로 찬란하고도 서글픈 황금빛 불꽃비[火雨]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삼십 년 세월을 갈무리하는 장인의 마지막 절창(絶唱)과도 같았다. 기계의 굉음과 함마드릴의 파괴음이 사방에서 그의 호흡을 방해하려 들었으나, 진성은 오직 아랫배에 중심을 둔 채 자신만의 신독(愼獨)의 궤적을 묵묵히 걸어갔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철판의 단면은 자로 잰 듯이 곧고 바르았으며, 그 어떠한 기계의 수치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정직한 땀방울이 은빛 격자무늬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


마침내 철판의 마지막 한 치가 완벽하게 갈라지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성은 가스 밸브를 잠갔고, 신성하던 청백색의 불꽃은 이내 소멸했다. 잘려 나간 철판의 단면은 붉은 잔열을 품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 단면은 흡사 평생 동안 공장에 붙박여 살던 오진성의 잘려 나간 삶의 자리처럼 시리고 쓸쓸해 보였다.


진성은 마스크를 벗고 땀과 쇳가루로 얼룩진 얼굴로 민우를 바라보았다.


"내일부턴 은퇴를 위한 마지막 은교(隱敎)의 작업이 시작될 게야. 내가 가진 삼십 년의 모든 불꽃을 자네의 손끝에 온전히 전해줄 테니, 자네는 흔들리지 말고 받아내게."


공장의 깨진 창문 틈새로 저무는 겨울의 붉은 노을빛이 흘러들어와, 잘려 나간 철판의 거친 단면과 두 노동자의 굳건한 뒷모습을 황금빛으로 무겁게 감싸 안았다. 쇳물(鐵水)의 장이 끝나고, 스스로 공장을 걸어 나가 푸른 소나무(松樹)의 고요를 향해 나아가려는 한 장인의 위대한 단면이, 그렇게 시린 겨울의 공기 속에서 깊고 묵직한 서사로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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