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十一章:忍冬 (인동) — 추운 계절을 버텨내는 노동


겨울의 심장부로 깊숙이 걸어 들어갈수록 공장은 하나의 거대한 동토(凍土)로 화(化)해갔다. 정반(定盤) 위에 육중하게 누워 있는 철판들은 밤새 내린 서리를 하얗게 이고 있어, 작업에 임하기 전 토치의 겉불꽃으로 그 차가운 성에를 녹여내야만 겨우 백색 분필 선을 그을 수 있었다. 얼어붙은 철판은 화구(火口)가 뿜어내는 초열(焦熱)을 무자비하게 빨아들이는 거대한 흡혈귀 같아서, 평소보다 두 배의 아세틸렌을 소모해야 겨우 붉은 쇳물의 눈물을 뱉어내곤 했다. 인부들의 손가락은 혹한의 냉기로 감각이 마비되어 토치의 미세한 밸브를 조절할 때마다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통증이 전신을 찔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인간의 육체가 가혹한 계절의 계율을 인내하는 인동(忍冬)의 노동이었다.


강민우는 두꺼운 털장갑 위에 다시 소가죽 장갑을 겹쳐 끼고 화구를 움켜쥐었다. 손목에 박힌 화상 흉터가 추위 때문에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청년은 이제 더 이상 비명을 지르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린 통증을 이정표 삼아 불꽃의 서슬 퍼런 중심을 단단히 붙잡았다. 살을 데어낸 상처가 겨울의 한풍을 만나 한층 더 단단한 결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호흡을 길고 깊게 가져가라. 추울수록 허파가 오그라들기 쉬우니, 의식적으로 단전(丹田)을 부풀려 숨을 쉬어야 해. 내면의 불씨가 꺼지면 철은 단 한 치도 잘려 나가지 않는다."


진성은 민우의 곁에서 묵묵히 정반의 쇳가루를 쓸어내며 낮고 나지막이 일러주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은 가을의 그것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묵직하여, 마치 늙은 장인의 몸 안에서 타오르는 내열(內熱)의 흔적처럼 허공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공장 저편 제2작업장에서는 이미 인간의 숭고한 숙련을 대체할 대형 CNC 자동 절단기 한 대가 육중한 철골 베드를 드러낸 채 시운전 중이었다. 인부들은 자신의 정반 앞에서도 자꾸만 그 거대한 기계 장치의 차가운 구동음 쪽으로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기계는 인간처럼 추위에 손을 떨지도, 고독에 겨울 숨을 몰아쉬지도 않았으며, 컴퓨터에 입력된 수치에 따라 완벽한 직선을 자로 잰 듯이 냉정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 매끄러운 기계의 단면을 바라보는 숙련공들의 눈빛은 서글픔을 넘어 일종의 거대한 실존적 공포에 젖어 있었다. 평생의 세월을 바쳐 이룩한 장인의 숙련이 고작 디지털 프로그램 몇 줄에 밀려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일은, 살점을 베어내는 것보다 더한 고문이었다.


"반장님, 저 기계는 지치지도 않나 봅니다. 차가운 철판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네요."


민우가 화구의 산소 밸브를 잠시 고르며 씁쓸하게 말했다.


진성은 CNC 기계가 내뿜는 정교한 레이저 불꽃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것은 서슬 퍼런 푸른빛을 띠고 있었으나, 진성이 삼십 년간 다루어온 화구의 청백색 불꽃처럼 뜨거운 영혼의 땀방울이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인공적인 사광(死光)에 불과했다.


"기계는 철을 자르지만, 철과 대화하지는 못하네."


진성이 철판의 결을 만지며 묵묵히 말했다.


"저 무생물의 기계는 철판 내부가 얼어 있는지, 혹은 압연 과정에서 기포가 들어차 언제 튀어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해. 그저 정해진 수치대로 밀어붙일 뿐이지. 그러다 철판이 뒤틀리면 기계는 오류를 뱉으며 멈추어 서지만, 인간은 제 손끝의 감각으로 그 뒤틀림의 전조를 미리 달래며 선을 완성한다네. 그게 저 기계와 우리의 차이야. 철은 정직한 육체를 가진 자에게만 제 마음을 열어주거든."


진성은 다시 허리를 깊숙이 숙여 화구를 잡았다. 그의 굵고 마디 진 손가락 마디마디가 겨울의 냉기로 붉게 부어올라 있었으나, 그가 쥔 토치 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단단하여 타협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본관의 인사과 직원이 두꺼운 외투를 걸친 채 작업장 안으로 들어와 진성을 향해 묵직한 손짓을 보냈다. 인부들의 서슬 퍼런 시선이 일제히 진성의 꼿꼿한 등 뒤로 쏠렸다. 올 것이 왔다는 무거운 침묵이 제1작업장 전체를 장막처럼 무겁게 내리눌렀다.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의 최종 면담 명단에, 마침내 이 공장의 산증인이자 노송 같던 오진성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우는 화구를 쥔 채 멀어져 가는 진성의 묵직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공장의 깨진 높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시린 겨울 햇살이 진성의 때 묻은 작업복 위에 새겨진 삼십 년 세월의 쇳가루들을 쓸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의 등은 여전히 한 그루의 거대한 노송처럼 꼿꼿했으나, 그를 에워싼 공장의 한풍(寒風)은 그 노송의 마지막 가지마저 꺾어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민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자신의 철판을 바라보았다. 스승이 자리를 비운 고독한 정반 위에서, 청년은 홀로 외롭게 불꽃을 당겼다. 추위로 손목이 시려왔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지만, 그는 진성에게 배운 대로 호흡을 단전으로 깊숙이 밀어 넣으며 백색 분필 선 위를 정직하게 기어갔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황금빛 불꽃비[火雨]는 여전히 뜨거웠고, 청년은 이 혹독한 인동(忍冬)의 계절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장인의 직선을 고독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삶의 가장 추운 겨울 한복판에서, 인간의 불꽃은 그렇게 꺼지지 않고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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