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十章:龜裂 (균열) — 오래된 공장의 흔들리는 벽


공장의 겨울은 물리적인 냉기보다 심리적인 불신(不信)을 타고 더 빠르게 번져나갔다. 본관의 양철문 위에 차가운 공고문이 붙은 지 불과 사흘 만에, 제1작업장과 제2작업장 사이를 오가던 인부들의 시선에는 서로를 향한 경계와 의심의 빛이 역력히 감돌았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나야 하는가. 자본(資本)이 던져놓은 해고의 칼날 앞에서, 평생을 '형님, 아우'라 부르며 매캐한 쇳가루를 형제처럼 나눠 마시던 사내들의 연대는 너무도 쉽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의 시멘트 벽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龜裂)이 흐르듯, 인간의 마음 또한 그렇게 차갑게 갈라지고 있었다.


오진성(吳眞聲)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의 정반(定盤) 앞에서 화구(火口)의 총열을 닦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정밀하고 고요했으나, 그를 둘러싼 사방의 공기는 이미 서슬 퍼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침묵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오 반장, 얘기 들었나?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CNC 자동 절단기 조작 조장 자리에 자네 이름이 오르내리더군."


공장 한편에서 조용히 다가온 최 조장이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함께,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자의 시기 어린 원망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삼십 년 숙련공인 자네를 단번에 치기는 어려웠겠지. 기계가 들어와도 그걸 감시하고 수치를 입력할 영감탱이 하나는 필요하니까. 축하하네, 오 반장은 살아남았어."


진성은 총열을 닦던 면장갑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최 조장의 거친 얼굴을 지나, 저편에서 묵묵히 산소통을 나르고 있는 강민우에게로 향했다. 청년은 추위로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육중한 무쇠 통을 옮기고 있었다. 이번 구조조정의 최우선 해고 순위가 민우 같은 신입 노동자들이라는 것은 공장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진성은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하얀 김이 그의 차가운 입술 사이로 쓸쓸하게 흩어졌다.


"기계의 스위치를 누르는 자리가 장인의 자리일 수는 없네, 최 조장. 나는 철판 앞에 허리를 숙이고 화구를 잡을 때만 오진성일 뿐이야. 기계의 노예로 남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화구의 불꽃을 끄는 게 맞지."


"배부른 소리 말게! 지금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인부들이 수십 명이야! 자네가 거절하면 그 자리는 고스란히 다른 사람이 차지할 테고, 자네 조수인 저 어린 신공(新工) 녀석은 당장 내일부터 이 공장 정문도 못 통과해!"


최 조장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돌아섰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본의 논리는 인간의 자존심보다 잔인했다. 기계는 인간의 숙련을 모욕했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동료의 자리를 탐해야 하는 가혹한 균열의 계절이었다.


민우는 산소통을 정돈한 후 진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청년은 공장 안에 감도는 흉흉한 기운을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인부들은 더 이상 서로의 숨소리[心音]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직 저편 본관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소문들에만 귀를 세우고 있었다.


"반장님…… 정말 기계가 들어오면, 저희가 평생 그어온 이 직선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겁니까?"


민우의 목소리가 겨울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붕대 찬 손목의 흉터가 유독 붉게 도드라져 보였다.


진성은 가만히 청년의 안전모를 바라보았다. 이제 제법 기름때와 쇳가루가 묻어 장인의 서슬을 닮아가는 노란 안전모였다.


"민우야. 벽에 금이 간다고 해서 그 벽이 단번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는, 바위가 갈라질 때마다 제 뿌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밀어 넣지. 세상이 우리를 흔들어 가치를 깎아내릴지라도, 자네의 손끝이 기억하는 철의 온도는 기계의 수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네."


진성은 다시 화구를 쥐었다. 그리고 삼십 밀리미터 두께의 철판 위에 분필로 힘주어 직선을 그었다. 그 분필 선은 공장의 흔들리는 벽면 사이에서, 한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존엄의 경계선과 같았다.


'팍――'


청백색의 불꽃이 다시금 초열의 서슬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작업장 저편에서는 이미 CNC 기계의 베드가 설치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콘크리트 바닥을 파내는 함마드릴의 거친 굉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인간의 불꽃과 기계의 파괴음이 공장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거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진성은 흔들림 없이 화구를 인도했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황금빛 불꽃비[火雨]는 공장의 어두운 균열 속에서도 여전히 찬란했으나, 식어가는 철판의 단면 위로 저무는 겨울의 햇살은 유독 시리고 차가웠다. 기계가 인간을 지워내려는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 늙은 장인과 젊은 신공은 그렇게 흔들리는 벽을 등진 채 마지막 불꽃의 자존을 간당간당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삶의 균열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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