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계절의 바퀴는 인간의 고단한 밥벌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매정하게 굴러갔다. 함양(鹹陽) 공설 작업장의 높은 양철지붕 위로 서리가 하얗게 내리 앉던 날, 공장 안의 온도는 대지의 냉기를 그대로 흡수하여 거대한 얼음 창고처럼 변해버렸다. 인부들이 들이쉬는 숨결마다 하얀 입김이 서려 분진 마스크를 축축하게 적셨고, 작업복 안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은 살갗을 베어낼 듯 매서웠다. 그러나 그 겨울의 초입에 찾아온 진짜 한풍(寒風)은 하늘이 아니라, 본관 집무실의 굳게 닫힌 문틈 사이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아침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 작업장 정문 게시판 앞은 인부들의 거친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라면 장화를 갈아 신고 묵묵히 정반(定盤)으로 향했을 사내들이 시커먼 작업복을 걸친 채 떼를 지어 모여 서 있었다.
강민우는 하얀 김을 뿜어내며 인부들의 어깨너머로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하얀 공문지 위에 찍힌 붉은 법인 도장은 마치 철판 위에 떨어진 핏방울처럼 섬뜩하게 눈에 들어왔다.
[구조조정 및 현장 자동화 공정에 따른 인력 재배치 공고]
그것은 자본이 노동을 향해 보낸 차가운 선고문이었다. 선박 건조 물량이 줄어들고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회사 측에서 수동 가스 절단 공정을 대폭 축소하고 컴퓨터로 제어되는 대형 CNC 자동 절단기 두 대를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체하게 되었으니, 기존 숙련공의 절반 이상은 정리해고하거나 외곽의 자재 적재 마당으로 전환 배치하겠다는 연말의 시린 통보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평생을 이 공장에서 쇳가루 마셔가며 배를 만들어왔는데, 기계 몇 대 들여왔다고 나가라니!"
"자동화라니, 그럼 우리 보고 이제 와서 어딜 가라는 건가!"
사내들의 목소리에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거칠게 터져 나왔다. 평생 철판을 다루는 기술 하나만을 믿고 가정을 지켜온 가장들에게, 화구(火口)를 빼앗긴 손이란 아무 쓸모없는 마른 나뭇가지에 불과했다.
민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겨우 화구의 불꽃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장인의 호흡을 닮아가기 시작했는데, 삶의 터전 자체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군중들의 뒤편,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오진성(吳眞聲)을 바라보았다.
진성은 게시판의 글귀를 읽지 않았다. 그저 멀리 본관 건물의 차가운 유리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완강한 바위 같았으나, 그 깊게 파인 눈골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쓸쓸함은 숨길 수 없었다. 삼십 년 동안 수천 도의 불꽃 앞에서도 미동치 않던 거구의 어깨 위로, 겨울의 차가운 음영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 반장, 자네는 들은 얘기 없나? 우리가 평생을 바친 이 정반이 정말 기계 덩어리한테 밀려난다는 게 말이 되나?"
조장 하나가 진성의 곁으로 다가와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진성은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그의 검게 그을린 수염 사이로 흩어졌다.
"철은 정직하다 했네만…… 철을 굴리는 세상은 정직하지 않은 모양일세."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기계의 포효 속에서도 들리던 그의 묵직한 심음(心音)이, 차가운 자본의 한풍 앞에서는 무력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반장님……."
민우가 다가오자, 진성은 청년의 얼어붙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붕대는 풀었으나 여전히 화상 흉터가 붉게 남아 있는 손목이었다.
"가세. 세상이 우리를 지워내려 할지라도, 오늘의 철판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네."
진성은 묵묵히 앞치마를 매고 황동빛 화구를 쥐었다. 공장 안의 분위기는 흉흉했고, 저편에서는 벌써 노동조합 간부들이 붉은 머리띠를 챙기며 술렁이고 있었으나, 진성은 자신의 정반 위에 오십 밀리미터 두께의 연강판을 올려놓았다.
'팍――'
라이터 불꽃이 튀고 예리한 청백색(靑白色)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오늘 피어오른 불꽃은 어쩐지 서글픈 빛을 띠고 있었다. 진성은 평소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이고, 화구의 불꽃을 철판의 가장자리에 가져다 댔다. 고압 산소가 터져 나오며 황금빛 불꽃비[火雨]가 바닥으로 쏟아졌지만, 작업장을 채운 기계음은 이제 노동자의 긍지가 아닌, 인간을 밀어내려는 기계의 냉소처럼 차갑게 들려왔다.
민우 역시 자신의 화구를 잡았으나, 손끝으로 전해오는 철판의 냉기는 이전과 달랐다. 물질의 저항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세상의 냉대였다. 청년의 손끝이 다시금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마라, 민우야."
진성이 불꽃 너머로 민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호통을 쳤다.
"세상의 바람이 아무리 차갑게 불어올지라도, 화구를 쥔 자는 손끝의 온도를 잃어서는 안 돼. 저 기계 장치가 우리의 손을 대신할 수는 있을지언정, 철판을 마주하는 우리의 영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우리가 그어놓은 직선 위를 걸어가야 하네."
스승의 따스한 서슬이 청년의 얼어붙은 심장을 다시금 두드렸다. 민우는 이를 악물고 화구의 레버를 깊숙이 움켜쥐었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불꽃비는 여전히 찬란했으나, 공장의 열기는 이미 급격히 식어가고 있었다.
공장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겨울의 한풍(寒風)은 자욱한 쇳가루를 쓸어가며 노동자들의 살갗을 시리게 파고들었다. 인간의 땀방울이 기계의 기름때보다 값싸게 취급받는 혹독한 계절의 시작이었다. 후반부 소나무(松樹)의 장을 여는 첫 서사는, 그렇게 거대한 시대의 그늘 속에서 시리도록 푸른 불꽃을 품은 채 무겁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