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第三章:新工 (신공) — 쇳가루 속에 들어온 청년


공장의 아침은 늘 가쁜 숨을 몰아쉬는 기계들의 금속성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거대한 변전실이 깨어나며 웅웅 거리는 저주파의 전류 소음을 사방으로 뿜어냈고, 밤새 차갑게 침전되어 있던 바닥의 미세한 쇳가루들은 인부들의 거친 장화 굽에 밟혀 다시금 회색빛 허공으로 부옇게 날아올랐다. 각자의 정반(定盤) 앞으로 흩어지는 노련한 인부들의 얼굴에는 일터에 대한 경외심 대신, 하루의 고단한 밥벌이를 시작해야 하는 자들의 건조한 체념이 훈연(燻煙)처럼 짙게 배어 있었다.


오진성(吳眞聲)은 가죽 앞치마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며 자신의 익숙한 정반 앞에 섰다. 그때, 그의 등 뒤로 서툰 발소리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어딘지 모르게 현장의 규칙적인 진동과 리듬을 타지 못하고, 콘크리트 바닥을 서칠게 겉도는 듯한 이질적인 발소리, 강민우였다.


청년의 어깨는 어제 퇴근길보다 한층 더 굳어 있었다. 지급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흠집 하나 없는 신형 용접 마스크와 두꺼운 소가죽 앞치마는, 청년의 왜소한 육체를 대지의 중력 속으로 짓누르는 듯 버거워 보였다. 민우는 진성의 깊은 시선이 닿자 서둘러 안전모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반장님."


진성은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청년의 앳된 얼굴이 아닌, 그의 오른손 끝에 머물렀다. 어제 가을 밤하늘 아래서 나누었던 대화의 무게 때문인지, 청년을 이루는 손가락 마디마디는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부터는 자네가 직접 화구(火口)를 잡는다."


진성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공장의 소음 틈새를 칼날처럼 뚫고 민우의 귀에 내리 꽂혔다. 민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저 잡일을 도맡아 하며 늙은 장인의 뒷모습이나 훔쳐보는 조수의 자리에 머물 줄 알았는데, 이 거칠고 위험한 불꽃의 자루를 이토록 빨리 쥐어줄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진성은 정반 위에 삼십 밀리미터 두께의 조선용(造船用) 후판 조각을 묵직한 굉음과 함께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거칠고 붉은 철의 표면 위에, 백색 분필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고 바른 직선 하나를 그어주었다.


"이 선을 따라 잘라보게. 속도는 자네의 숨에 맞추고, 불꽃의 빛깔이 푸른빛을 유지하는지만 눈여겨보아라."


민우는 타들어 가는 마른침을 깊이 삼키며 황동빛 화구를 움켜쥐었다. 아세틸렌 밸브를 열고 라이터를 켜자, '팍-' 하는 파열음과 함께 매캐한 유황 연기를 품은 사나운 불꽃이 허공을 찔렀다. 이어서 고압 산소를 주입하자 불꽃은 이내 예리한 서슬을 청백색(靑白色)으로 바짝 세웠으나, 화구를 쥔 민우의 손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천 도의 초열(焦熱)이 안면을 사정없이 덮쳐오자,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주춤거렸다. 활자나 교실에서 배우던 노동이란 관념은, 이 살을 태울 듯한 열기와 귀를 찢는 실전의 공포 앞에서 아주 쉽게 기화(氣化)되어 버렸다.


"뒤로 물러서지 마라. 철은 도망치는 자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진성이 민우의 등 뒤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노송(老松)의 뿌리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진성의 손이, 민우의 떪 가득한 오른손 위를 육중하게 겹쳐 쥐었다. 삼십 년간 철을 달래온 거친 손의 온기가 청년의 차가운 두려움을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화구를 아기 다루듯 가볍게 쥐되, 육체의 중심은 아랫배에 두어야 해. 눈은 화려한 불꽃을 보지 말고, 불꽃이 녹여내고 있는 철의 심장을 보아라."


늙은 장인의 손길을 타자, 민우의 흔들리던 손끝이 기적처럼 안정을 찾아갔다. 철판의 가장자리가 서서히 투명한 선홍빛으로 달아오르고, 고압 산소 레버가 당겨지자 정반 밑으로 찬란한 불꽃비[火雨]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청년의 눈앞에서 완강하던 철이 부드럽게 몸을 열며 길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민우는 순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의 쾌감이 아닌, 거대한 물질의 저항을 인간의 정직한 육체로 다듬어간다는 신성한 노동의 첫 성취감이었다.


그러나 진성이 슬그머니 손을 떼고 홀로 서게 하자, 청년의 서툰 걸음은 이내 거친 물질의 정직함 앞에 한계를 드러냈다. 마음이 조급해진 민우가 화구를 너무 빨리 움직이자, 철판은 완전히 잘리지 못한 채 검은 그을음과 생채기만 남기며 완강하게 굳어버렸다. 뒤늦게 놀라 속도를 늦추자, 이번에는 과도한 열기에 쇳물이 떡처럼 녹아내려 단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분필로 그려놓았던 단정한 직선은 간데없고, 난도질당한 짐승의 흔적 같은 뒤틀린 상처만이 철판 위에 남았다.


"죄송합니다……."


민우는 화구의 밸브를 잠그고 차마 진성을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굵은 땀방울이 안전모 테두리를 타고 내려와 청년의 뺨을 적셨다. 자신의 무력함과 현장의 냉혹함 앞에서, 거친 분진 마스크 속으로 뜨거운 숨이 가쁘게 멎어 들었다.


진성은 일그러지고 터져 나간 철판의 단면을 가만히 맨손으로 어루만졌다. 아직 잔열이 남아 있어 장갑 표면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으나, 진성의 눈빛에는 조그만 흔들림도 없었다.


"처음부터 바른 직선을 긋는 인간은 없다. 자네의 손이 흔들린 건, 마음속에 '빨리 잘라내야 한다'는 세상의 조급함이 먼저 달렸기 때문이야. 이 쇳가루 구덩이에 들어온 이상, 자네는 공장의 기계 속도에 영혼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자네 내면의 호흡을 먼저 단정히 다스려야 하네."


진성은 민우의 경직된 어깨를 두껍고 무거운 손으로 툭 쳤다. 그것은 바카라망이 아닌, 이 거칠고 위대한 물질의 세계로 들어온 새로운 피, 신공(新工)에 대한 늙은 장인의 깊은 환대이자 고독한 연대(連帶)였다.


공장의 높은 창문 위로 비쳐든 아침 햇살이 쇳가루 자욱한 대기 속에서 수천 개의 빛줄기로 찬란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 신성한 빛의 서슬 속에서 서툰 청년 노동자는 자신의 상처 입은 철판을 바라보았고, 노련한 스승은 그 청년의 등 뒤에서 묵묵히 불꽃의 다음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쇳소리 가득한 현장 한구석에서,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호흡이 늙은 장인의 바른 직선을 닮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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