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퇴근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공장의 높은 함석지붕을 둔탁하게 때린 후, 이내 낮게 깔린 분진의 장막 속으로 번져나갔다. 사방을 집어삼킬 듯 초열(焦熱)의 서슬을 뿜어내던 육중한 프레스 기계들이 일제히 포효를 멈추고 거친 숨을 고르자, 작업장 안에는 비로소 기계의 잔열과 매캐한 광유(鑛油) 냄새만이 밀물처럼 느리게 차올랐다. 피로에 절은 인부들은 서둘러 안전모를 벗어 던지며 함석문 너머 탈의실의 웅성거림 속으로 황망히 사라졌으나, 오진성(吳眞聲)만은 여전히 자신의 정반(定盤) 앞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것은 지난 삼십여 년간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해 온 고독한 부동(不動)의 의식이었다.
그는 장갑을 벗지 않은 채, 방금 전 갈라놓은 대형 연강(軟鋼) 철판의 절단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수천 도의 푸른 불꽃이 살을 찢고 지나간 궤적은 거뭇한 그을음과 함께, 기괴하면서도 신성한 은빛 격자무늬를 남기며 공기의 한기에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진성은 비로소 천천히 가죽장갑을 벗어 찌그러진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장갑 밖으로 드러난 그의 오른손은 인간의 부드러운 뼈와 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모진 해풍을 견뎌내며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노송(老松)의 등걸에 가까웠다. 화구(火口)의 황동 손잡이를 움켜쥐던 검지와 중지는 안쪽으로 단단하게 휘어 구부러졌고, 마디마디는 해묵은 나무의 옹이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제 본래의 해부학적 모양을 잃은 지 오래였다. 손바닥 전체를 완강하게 뒤덮은 황갈색의 굳은살은 어찌나 두껍고 메말랐는지, 현장의 날카로운 철사 끝에 깊숙이 찔려도 이제는 붉은 피 한 방울 쉽게 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철(鐵)이라는 완강한 물질이 그의 육체에 새겨놓은 가혹한 영토(領土)였고, 삶의 최전선에서 정직한 노동으로 버텨낸 노병의 묵직한 훈장(勳章)이었다.
"오 반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어둠이 잉크처럼 번지기 시작한 작업장 구석, 거대한 크레인의 음영 속에서 쭈뼛거리며 다가온 것은 신입 인부 강민우였다. 청년은 이미 기름때 없는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였으나, 여전히 이 거대한 공장이 뿜어내는 가라앉은 침묵이 어색한 듯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진성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게 팬 눈골 사이로 낮 동안 쌓인 피로가 탁수(濁水)처럼 무겁게 고여 있었다.
"이것만 정리하고 가겠네. 자네는 서두르게."
낮고 묵직하여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공장의 기계음 속에서 평생을 보낸 탓에, 그의 성대는 늘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무거운 추를 끌어올리듯 발음해야 겨우 상대방의 귀에 가닿곤 했다.
민우는 진성의 발치에 놓인 철판의 단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로 잰 듯이 곧게 뻗은, 어떠한 타협도 없는 정직한 직선. 가스의 초열로 철을 잘라내면 대개 열 변형 때문에 철판이 활처럼 휘거나 단면이 거칠게 우는 법인데, 진성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예리한 도끼로 단단한 겨울 계곡의 얼음을 단번에 베어낸 듯 서늘하고 단정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르게 자를 수 있습니까? 저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끝이 자꾸 흔들리던데요."
청년의 음성에 어린 호기심은 순수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조급함이 숨김없이 묻어 있었다. 빨리 이 지독한 쇳가루 구덩이를 벗어나고 싶다는, 혹은 이 거친 생태계에서 결코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존의 조바심이었다.
진성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으나, 그 미소는 눈가에 잔주름을 몇 개 더 만들 뿐 입술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는 대답 대신 작업대 위에 놓인,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차가운 연강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민우라 했나."
"예, 강민우입니다."
"철(鐵)이라는 놈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우면서도 가장 정직한 법이네."
진성은 손가락 끝으로 철판의 단단한 표면을 톡톡 두드렸다. 맑고 둔탁한 쇳소리가 적막한 공장 안의 잔향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화구의 불꽃이 가진 힘으로 철을 자른다고 믿지. 하지만 아니야. 철을 자르는 건 불꽃이 아니라, 내 손끝에 닿아 있는 철의 마음을 읽는 거라네. 철판이 얼어 있으면 불꽃을 더 오래 머물려 부드럽게 달래야 하고, 철판이 이미 달아올라 있으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 내 힘만 믿고 억지로 밀어붙이면 철은 반드시 비명을 지르며 뒤틀려 버려. 물질(物質)은 결코 인간의 요령에 속지 않거든."
진성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민우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휘어지고 굳어버린, 지문조차 마모되어 사라진 노병의 육체였다.
"이 손에 박힌 굳은살이 보이느냐. 이건 철이 나에게 준 경고이자 가르침이네. 이 피부가 단단해질 때까지, 나는 수없이 붉은 쇳물에 살이 데고 떨어지는 철판에 발등을 찍혔지. 철을 이기려 들지 말고, 철의 온도를 손끝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불꽃이 제 길을 찾아가는 법일세."
냉철(冷鐵). 차가운 철판을 다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면 또한 그만큼 차분하고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을, 진성은 평생의 세월을 바쳐 깨달았다. 조급한 온기는 단단한 철을 녹이지 못하고 오직 껍데기만 검게 그을릴 뿐이었다.
민우는 진성의 투박한 손과 그 손이 가리키는 철판을 번갈아 바라보며 깊은 침묵에 잠겼다. 청년이 생각했던 '기술'이란 화려한 요령이나 빠른 손재주였을지 모르나, 진성이 말하는 것은 삶이라는 척박한 영토를 대하는 숭고한 예의(禮儀)에 가까웠다.
"가세. 어두워졌네."
진성은 다시 화구를 단정히 닦아 공구함에 넣고 오래된 놋쇠 자물쇠를 채웠다. 공장 밖으로 나오자,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서늘한 밤바람이 진성의 땀에 젖은 목덜미를 쓸고 지나갔다.
하늘에는 공장의 높은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던 푸른 달이 홀로 차갑게 떠 있었다. 진성은 문득 먼 고향 언덕 위에 꼿꼿이 서 있을 푸른 소나무들을 떠올렸다. 거친 쇳가루와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그가 끝내 꺾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그 고요하고 푸른 낙송(落松)의 기억 덕분이었다.
진성은 차가운 밤공기를 허파 깊숙이 들이마셨다. 목구멍에서 여전히 쇳가루의 서걱거림이 느껴졌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밤하늘의 달빛만큼이나 바르고 곧았다. 삼십 년을 지켜온 그의 정직한 직선이, 오늘 밤도 그의 등 뒤를 묵묵히 호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