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장의 지붕은 아득히 높았으나 끝내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방을 철옹성처럼 에워싼 함양(鹹陽)의 무거운 공기는 사계절 내내 미세한 쇳가루를 머금고 있어, 숨을 깊이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서걱거리는 철(鐵)의 함초롬한 핏맛이 났다. 수백 대의 프레스 기계가 일제히 대지를 내리누르는 육중한 진동은 시멘트 바닥을 타고 올라와 작업자의 장화 밑바닥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거대한 기계의 포효와 비린내 나는 쇳바람 속에서, 인간의 가냘픈 언어는 아주 쉽게 분쇄되어 먼지처럼 흩어지곤 했다. 이 거대한 지옥의 고독 속에서 말(言)은 사치였고, 오직 육체의 노동만이 유일한 문장이었다.
오진성(吳眞聲)은 자신의 허리춤까지 오는 육중한 정반(定盤) 위에 놓인 사십 밀리미터 두께의 연강(軟鋼) 철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방 이 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판은 제철소의 뜨거운 가마에서 나와 식은 지 오래된, 생명 없는 대지(大地)의 파편과도 같았다. 붉게 녹이 슬어 있는 철판의 표면은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거친 풍파를 겪어낸 노인(老人)의 살갗처럼 메마르고 투박했다. 진성은 그 붉은 녹의 표면을 거친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철의 완강한 냉기는 장갑의 두께를 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무거웠다.
진성은 숨을 깊이 몰아쉬며 오른손에 묵직한 가스 절단기, 즉 화구(火口)를 쥐었다. 이 사소하고도 무거운 황동빛 쇳덩이는 지난 삼십여 년간 그의 손가락 마디를 굵고 휘게 만들었으며, 손바닥의 지문을 지워버린 그의 분신(分身)이자 삶의 유일한 증거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단한 밥벌이의 도구에 불과하겠지만, 진성에게 이 화구는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고독한 필기구와 다름없었다. 철이라는 가장 단단한 원고지 위에 불꽃으로 생을 기록해 나가는 필묵(筆墨)이었다.
"후우-."
두꺼운 분진 마스크 너머로 새어 나온 긴 한숨이 방수 고글 안쪽을 가만히 흐렸다. 진성은 이내 왼손의 감각만으로 아세틸렌과 산소 밸브를 미세하게 조절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단련된 손길은 계량기의 바늘을 보지 않고도 정확한 공기의 비율을 찾아냈다. 이윽고 '팍-'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매캐한 유황 연기를 품은 불안정한 불꽃이 허공을 찢으며 피어올랐다. 진성의 손끝이 다시 한번 부드럽게 움직이자 고압의 산소가 주입되었고, 사방으로 사납게 흩어지던 붉은 불꽃은 이내 서슬 퍼런 청백색(靑白色)의 예리한 침묵으로 가다듬어졌다.
수천 도에 이르는 초열(焦熱)의 열기가 진성의 안면을 사정없이 달구었다. 고글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제 오직 청백색의 불꽃과 그 불꽃이 가리키는 철의 표면뿐이었다. 이 지독한 열기의 중심에서만 진성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이 거대한 기계의 소음과 자본의 논리 속에서 매몰되지 않고 온전히 한 인간으로 서 있음을 느꼈다. 공장의 소음이 극도에 달했을 때, 그의 내면은 역설적이게도 깊은 사찰의 동명(冬冥)처럼 고요해졌다.
철판의 끝자락에 가느다란 불꽃의 정점(頂點)이 닿았다. 차갑고 완강하던 철(鐵)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융해되어 눈물처럼 붉은 즙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진성은 검지손가락으로 고압 산소 레버를 깊숙이 움켜쥐었다.
'콰아아아-'
굉음을 뚫고 나오는 또 다른 파열음과 함께, 바닥을 향해 찬란한 불꽃비[火雨]가 쏟아져 내렸다. 두꺼운 철의 심장을 관통한 불꽃이 바닥의 시멘트를 태우며 사방으로 붉은 성혈(聖血) 같은 쇳가루를 뿌려댔다. 진성의 눈빛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나 해체가 아니었다. 진성에게 있어 절단(切斷)이란, 거대한 철판 속에 갇혀 있는 단정하고 바른 선(線)을 찾아내어 해방하는 행위였다. 수천 도의 열기 앞에서도 철은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손끝이 떨리거나 토치의 속도가 맞지 않으면, 철판의 단면은 거칠게 씹히거나 아예 잘리지 않은 채 굳어버린다. 진성은 온몸의 무게를 양다리에 싣고, 척추를 곧게 세웠다. 호흡을 단전(丹田)으로 내리누르며 가스 토치를 든 오른손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 삼가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단정히 한다는 그 해묵은 선현의 가르침을, 진성은 이 자욱한 쇳가루와 굉음 속에서 화구를 잡을 때마다 마음속에 새기곤 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대한 기계 장치와 회색빛 벽면뿐이며, 누구 하나 그의 손끝을 감시하거나 칭찬하지 않는 고독한 작업장이었으나, 그는 단 일 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온 신경을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하나에 모았다.
평생을 철을 자르고 다듬으며 살아왔으나, 철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요령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지독하리만큼 정직한 물질이었다. 방심하는 순간 붉은 쇳물은 작업자의 두꺼운 안전화를 뚫고 들어와 살을 파고들었고, 부주의한 불꽃은 순식간에 작업장을 집어삼켰다. 철은 오직 인간의 정직한 노동과 거짓 없는 땀방울 앞에서만 겨우 그 단단한 몸을 열어줄 뿐이었다. 진성은 그 철의 정직함을 사랑했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렇게 거북이의 걸음보다도 느린 속도로, 가만히 불꽃을 인도하며 철판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던 진성의 시야 가장자리에 낯선 그림자 하나가 겹쳐졌다. 가스 불꽃의 강렬한 잔상 때문에 눈이 침침했으나, 진성은 그것이 최근 작업장에 들어온 신입 인부, 강민우(姜敏宇)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청년의 가슴팍에 새게 진 하얀 안전제일 마크는 아직 기름때나 쇳가루가 묻지 않아 지나치게 깨끗했고, 노란 안전모 아래로 드러난 젊은 얼굴은 현장의 압도적인 서슬과 귀를 찢는 굉음에 잔뜩 질려 있었다. 청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성이 뿜어내는 저 서슬 퍼런 청백색의 불꽃과, 그 지옥 같은 열기 속에서도 미동조차 없이 화구를 붙잡고 있는 늙은 노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일종의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척박한 대지에 깊이 뿌리박은 노송(老松)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기도 했다.
진성은 철판의 마지막 한 치까지 완벽하게 갈라놓은 후에야 비로소 산소 밸브를 잠그고, 이어서 아세틸렌 밸브를 차단했다.
'탁.'
순식간에 눈을 멀게 할 것 같던 신성한 청백색의 불꽃이 소멸했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공장 본연의 둔탁한 굉음과 매캐한 회색 연기가 다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불꽃의 심판을 받던 철판은 완전히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잘려 나간 틈새는 붉은 잔열을 품은 채 마치 거친 숨을 몰아쉬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잘려 나간 단면은 우툴두툴하고 거칠었으나, 진성이 그어놓은 궤적만큼은 마치 먹줄을 튕겨놓은 듯 곧고 바르았다. 그것은 삼십 년 세월이 남긴 정직한 직선이었다.
진성은 땀으로 범벅이 된 방수 고글을 머리 위로 올리고, 턱 밑으로 마스크를 끌어내렸다. 그의 이마와 뺨에는 검은 쇳가루와 분진이 흘러내린 땀과 뒤섞여, 마치 삶의 전쟁터에서 흘린 검은 눈물 자국처럼 길게 선을 그리며 굳어 있었다. 그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작업장 저편에 굳은 채 서 있는 민우를 향해 깊고 묵직한 시선을 던졌다.
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친 노동은 입을 열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차가운 철 위에 새겨진 불꽃의 흔적으로 증명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깊게 패인 눈주름 속에 담긴 시선은, 이 거칠고 척박한 삶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온 젊은 육체에 대한 안쓰러움이자, 자신이 평생을 걸어온 외길에 대한 고독한 긍지(矜持)이기도 했다.
공장의 깨진 창문 틈새로 서녘의 붉은 노을빛이 가늘고 길게 흘러들어와, 방금 잘려 나가 식어가는 철판의 단면 위에 겹쳐졌다. 공장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은 저물어가는 태양의 빛과 묘하게 닮아 있었고, 평생을 철과 싸워온 진성의 삼십 년 노동 또한 그 깊어가는 노을을 닮아 고요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진성은 묵묵히 수건을 꺼내 화구의 그을음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내일 또다시 마주해야 할 또 다른 철판을 위하여,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