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조와 푸른 파도가 건네는 위로

수필

by산들강바람

바다 한가운데 서서 맞이하는 여름은 땅 위의 그것과 결이 전혀 다르다. 도심의 여름이 아스팔트 열기와 에어컨 실외기의 불쾌한 바람으로 가득 찬 곳이라면, 이곳 망망대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거대한 자연과 온몸으로 부딪히는 사투의 현장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태양을 피할 그늘 한 점 없는 바다 위, 아침 일찍부터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살결을 태워버릴 듯 매섭고 강렬하다. 사방이 온통 푸른 물빛이라 시각적으로는 시원해 보일지 몰라도, 수면에 반사되어 사방에서 들이치는 자외선과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눅눅한 염분 섞인 공기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가혹하게 밀려든다.


철판으로 이루어진 구조물 위에서 발을 디디고 서 있으면,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와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이 협공을 펼치며 온몸의 진을 빼놓는다. 작업복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땀으로 흥건히 젖어들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을 찌르면 짭조름한 아픔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거친 바닷바람이 간혹 불어오기도 하지만, 달궈진 공기를 머금은 바람은 열기를 식혀주기보다 오히려 숨통을 더 조여올 뿐이다. 이 거대한 대자연의 한복판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작고 무력한가. 하지만 동시에, 그 무더위와 싸우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의 의지는 그 어떤 자연의 웅장함보다도 숭고하게 다가온다.


이곳에서의 여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존의 현장이자,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증거 그 자체다. 땅 위의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이나 바캉스를 떠올리며 여름을 낭만화할 때, 바다 위 일터의 사람들은 밀려오는 파도와 뜨거운 철판 사이에서 오직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땀을 흘린다. 그 땀방울 속에는 가족의 생계가 담겨 있고, 내일의 안녕이 담겨 있으며, 삶을 어떻게든 지탱해 나가겠다는 한 인간의 묵직한 바카라임감이 서려 있다. 그렇기에 이 매혹적이고도 잔인한 여름 바다는, 그 안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이들에게 가장 정직하고도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가르쳐주는 준엄한 스승과도 같다.


하루의 고된 노동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를 간신히 붙잡고 고개를 들면 비로소 바다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황혼의 시간이 다가오면, 그토록 맹렬하게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서서히 힘을 잃고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늘은 순식간에 푸른빛을 잃고 붉고 노란 불꽃같은 색채로 물들어간다. 장엄한 붉은 노을이 온 바다를 덮을 때, 수평선 위로 길게 늘어진 일몰의 잔영은 잔잔하게 출렁이는 파도 위에 부서지며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 길을 만들어낸다. 그 길을 고요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이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다.


그 황금빛 바다 너머로, 머나먼 수평선 위에 점점이 박힌 거대한 해상 풍력 발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센 조류와 거친 바람 속에서도 미동도 없이 묵묵히 서서 날개를 회전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이 거친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우리네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거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그 자리에 박혀 제 역할을 다하는 발전기처럼, 우리 역시 삶이 던지는 수많은 풍파와 현실의 무게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결코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노을빛을 받아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갈 때, 나는 그 안에서 묘한 동질감과 함께 가슴을 짓누르는 바카라임감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이면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 위에 얹어지는 바카라임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지켜야 할 것들의 목록은 늘어만 간다. 특히 세상을 향해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으려는 이들에게, 삶의 현실과 글쓰기라는 이상 사이의 간극은 커다란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작품을 향한 독자의 시선, 혹은 스스로가 세운 완벽함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글쟁이로서의 바카라임감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생계의 무게와 부딪힐 때마다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돈이라는 실질적이고도 냉혹한 장벽 앞에서 감정을 잡으려 애쓰는 일은 때로 서글프고, 때로는 스스로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두려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3. 감정의 고갈과 글쓰기의 두려움


언제부턴가 글을 쓰기 위해 하얀 화면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끝이 얼어붙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예전에는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던 감정의 물길이, 어느 순간 고스란히 말라버린 것처럼 아무런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번민이 웅성거리며 돌아다니지만, 그것을 정제된 하나의 문장으로 엮어내는 일은 마치 거대한 바위를 맨손으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인다. 글이 안 써지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싹트고, 점차 그 불안감은 거대한 두려움으로 자라나 나를 잠식해 들어온다. '내가 과연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안에 더 이상 꺼낼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근원적인 회의감이 밀려드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고갈은 결코 게으름의 소치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을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낸 나머지, 영혼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온종일 거친 바다 위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감당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한 감정의 안테나까지 예민하게 세우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벅찬 과제일지도 모른다. 낮 동안 현실의 무게와 치열하게 싸우며 이성(理性)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놓았으니, 밤이 되어 감성(感性)의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이 녹슬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당장 눈앞의 경제적 결핍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을 누르고 있을 때, 영혼을 털어내야 하는 예술적 작업은 사치처럼 느껴져 죄바카라감마저 들게 만든다.


돈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글쓰기처럼 즉각적인 부(富)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행위는 쉽게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스스로도 "머니머니해도 결국은 돈"이라며 씁쓸하게 웃어넘기지만,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현실적 가장으로서의 고뇌는 깊은 멍으로 남는다. 바카라임감이 커질수록 글 한 줄을 쓰는 데도 검열관이 늘어난다. '이 문장이 돈이 될까', '이 글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읽힐까' 하는 계산이 앞서는 순간, 자유롭게 춤춰야 할 문장들은 쇠사슬에 묶인 듯 경직되고 만다. 결국 바카라임감이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를 다그쳤던 채찍질이, 도리어 내 안의 소중한 감정의 샘을 꽁꽁 얼려버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두려움의 터널 속에서 작가는 한없이 고독해지고, 잉크가 마른 펜을 쥔 손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차가운 현실의 장벽 앞에서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일터에서 흘리는 이 정직한 땀방울은 결코 글쓰기와 동떨어진 외딴섬이 아니다. 오히려 이 치열한 노동의 경험이야말로 방구석에 앉아 머리로만 쥐어짜 내는 빈약한 상상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글쓰기의 밑천이 된다. 삶의 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린 거친 호흡과, 손바닥에 배인 굳은살,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의 투박한 진심은 그 어떤 유려한 수식어보다도 강력한 문장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현실에 치여 글을 쓰지 못해 괴로울지라도, 우리가 버텨내는 이 하루하루가 모두 작가라는 내면의 대지를 기름지게 다지는 휴지기(休止期)인 셈이다.


태양이 저 바다 깊은 곳으로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완성하듯, 우리 역시 현실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더해가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글쓰기를 배신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삶을 가장 바카라임감 있게 사랑하고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다. 삶을 무바카라임하게 방관하는 자의 글에는 알맹이가 없다. 오직 현실의 거친 파도에 부딪히며 깨지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는 자의 글만이 타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글쓰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훗날 내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가장 뜨거운 자양분이자 거친 서사(敍事)의 전주곡이다.


그러니 이제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그 무거운 바카라임감의 사슬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주어도 좋다. 완벽한 문장을 지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거창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완성하겠다는 거대한 목표 대신, 오늘 하루 일터에서 느꼈던 바람의 냄새, 피로했던 어깨의 감각, 동료의 툭 던진 한마디 같은 사소한 파편들을 거친 메모 형태로 흩뿌려 놓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삶의 흔적들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여유가 찾아올 때, 비로소 거대한 강물이 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지금 흘리는 땀방울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임과 동시에, 내 영혼의 글방을 채워줄 가장 귀한 보석들이다.


다시 눈을 들어 저물어가는 여름 바다를 바라본다. 그토록 뜨겁게 타오르던 서쪽 하늘도 이제는 서서히 어둠에 자리를 내어주며 보랏빛과 청회색의 차분한 빛깔로 잦아들고 있다. 거친 파도 소리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욱 또렷해져 귓가를 울리고, 낮 동안 달아올랐던 철판의 열기도 서늘한 밤바람에 씻겨 내려간다. 이 고요하고 엄숙한 대자연의 순환 앞에서, 내가 품었던 짧은 번민과 두려움들은 한낱 부질없는 포말처럼 부서져 사라지는 듯하다. 바다는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건넨다. 폭풍우가 몰아치든, 뙤약볕이 내리쬐든 결국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지나가고 평온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글이 써지지 않고 감정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잠시 쉬어가야 할 때라는 자연스러운 신호다. 억지로 마른 수건을 짜내듯 문장을 쥐어짜 지 말고, 이 장엄한 여름 바다가 온몸으로 건네는 오감(五感)의 위로에 그저 나를 맡겨보자. 뺨을 스치는 시원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의 촉감, 고막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파도의 규칙적인 리듬, 그리고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기 시작하는 해상 풍력 발전기들의 경고등 불빛까지. 이 모든 투박하고도 아름다운 현장의 감각들을 마음의 필름에 조용히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메말랐던 영혼의 샘에는 조금씩 다시 물이 고이기 시작할 것이다. 거창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부담감은 저 깊은 심해 속으로 던져버려도 좋다.


오늘 하루도 거친 바다 위에서 현실의 무게를 꿋꿋이 버텨내고 무사히 작업을 마친 스스로에게 깊은 경의와 나직한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다"라는 그 한마디야말로, 지금 지친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치유의 문장일지 모른다. 비록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여전히 돈이라는 현실적인 장벽과 마주해야 하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이 장엄한 여름 바다의 품 안에서 또 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낼 거대한 힘을 얻는다. 이 뜨거운 여름날의 치열한 노동과 고뇌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나의 마음속에는 한층 더 단단하고 깊은 울림을 지닌,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진솔한 삶의 문장들이 가만히, 그리고 눈부시게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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