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곗바늘이 새벽 4시를 가리킬 때,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소멸한 울산의 거리는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세상 모두가 깊은 잠의 수면 아래로 침잠해 있는 시간, 나는 홀로 잠에서 깨어나 채 가시지 않은 수면의 무게를 털어내고 차에 올랐다. 행선지는 팔공산(八公山)의 갓바위.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던 해묵은 번민과 답답함을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영험한 약사여래불 앞에 내려놓고 오겠다는,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간절한 염원이 나를 이 이른 새벽의 길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경산 쪽 들머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내 차를 제외하고는 단 한 대의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새벽 공기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갑고 매서웠다. 시린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아무도 없는 산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달력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해발 850미터가 넘는 관봉으로 올라가는 산의 계절은 속세의 시간보다 언제나 한 걸음씩 느리게 흘러간다. 봄은 아직 산 아래에서 머뭇거리고 있는지, 산길로 접어드는 초입부터 겨울의 완강한 잔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겨우내 내린 눈을 누군가 부지런히 치워 모아놓은 거대한 눈덩이들이 길가 곳곳에서 하얗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얼어붙은 철제 계단 위에는 등산객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거친 흙과 모래가 붉게 뿌려져 있었다.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산의 몸짓이었으나, 그 안에는 길을 걷는 이들을 향한 누군가의 다정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의 가파른 허리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길이 나타났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으나, 채 중간쯤 왔을 때 이미 가슴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터뜨릴 듯 쿵쾅거렸고, 들이마시는 공기보다 내뱉는 숨이 더 가빠오기 시작했다. 무형의 경사도가 육체라는 필터를 거치며 무거운 질량으로 변해 다리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로 묵묵히 걸어 올라오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실루엣의 주인공은 나이가 지긋한, 얼핏 보아도 내 어머니 뻘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었다. 그 고령의 아주머니는 커다란 배낭을 마치 자신의 몸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메고선, 아무런 동요도 없이 일정한 호흡으로 계단을 밟아 오르고 계셨다.
"이 새벽에,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가 또 있었구나."
동질감과 함께 묘한 승부욕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다시 자세를 추스르고 조금 더 힘을 내어 위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젊음의 호기만으로 가파른 산의 사투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이번에는 정말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은 마치 마비된 것처럼 힘이 풀려 한 걸음도 떼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길가에 놓인 널찍한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던 아주머니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왔다. 헉헉거리며 일그러진 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그분의 얼굴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바위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향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더니, 이내 흐트러짐 없는 일정한 걸음걸이로 나를 스쳐 지나쳐 가 버리셨다.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연륜과 세월의 무게에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산을 오르는 것은 다리의 힘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내며 다져온 마음의 근육이라는 것을 그분의 뒷모습이 웅변하는 듯했다.
바위에서 일어난 나는 오기가 생겼다. 저 멀리 앞서가는 아주머니의 배낭을 이정표 삼아, 그분의 리드미컬한 걸음 소리를 쫓아 열심히 발을 놀렸다. 숨은 여전히 턱 끝까지 찼지만,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한결 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팔공산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관봉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아랫배 속에서 거센 폭풍이 치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찬 바람을 맞으며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탓인지, 뱃속이 뒤틀리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이 신성하고 고요한 새벽녘에, 부처님을 뵙기 직전 육체의 가장 원초적인 신호가 나를 붙잡은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살피다 다행히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해우소(解憂所)를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저앉는 순간, 왜 선조들이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이라 이름 지었는지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뱃속을 괴롭히던 통증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오늘 새벽 울산에서부터 차에 싣고 온 온갖 복잡한 생각들과 번뇌들, '더 빨리 올라가야겠다'며 부리던 철없는 오기와 욕심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둠 침침한 해우소 안에서 나는 육체의 배설을 넘어, 내면의 찌꺼기들을 온전히 비워내고 있었다. 약사여래불을 만나기 전, 산이 내게 준 강제적인 '비움의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벼워진 몸으로 해우소 문을 열고 나오자,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전보다 훨씬 더 맑고 청량하게 온몸을 감싸 안았다. 비우고 나니 비로소 산의 진짜 소리가 들렸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촉감이 느껴졌다.
평평한 갓 모양의 천연 바위를 머리에 이고 계신 여래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수많은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을 부처님의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가, 마치 이른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와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르고, 바위 위에서 주저앉았다가, 해우소에서 자신을 비워내며 고군분투했던 나의 전 과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따스하게 반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는 단순한 석조물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친 삶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는 모든 인간을 향한 거대한 위로였고, 지친 청춘을 품어주는 대자연의 자비였다. 만약 내가 해우소에서 내 안의 욕심과 번뇌를 비워내지 못했거나, 계단 중간에서 아주머니의 걸음을 시샘하기만 했다면 저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부처님의 미소를 온전히 가슴에 담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 안의 찌꺼기들을 완전히 비워내어 텅 빈 공간을 만들었기에, 비로소 약사여래의 저 거룩한 미소가 내 마음의 중심에 가득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동쪽 하늘에서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며 갓바위의 미소 위로 황금빛 햇살이 부드럽게 얹히기 시작했다. 새벽 4시 울산에서의 출발은 어둡고 막막했으나, 팔공산 정상에서 맞이한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눈부셨다. 나는 약사여래불을 향해 깊은 절을 올리며, 오늘 새벽 산이 내게 가르쳐준 '비움의 지혜'를 평생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삶이 다시 무거워지고 욕심이 목을 죄어올 때, 나는 이 새벽의 가파른 계단과 나를 스쳐 가던 연륜의 걸음, 그리고 나를 온전히 비워낸 뒤 마주했던 갓바위의 환한 미소를 기억해 낼 것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는 길, 내 등 뒤로 팔공산의 따스한 봄볕이 소리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참! 소원을 안 빌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