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복권을 한 장 샀다.
사는 순간은 언제나 가볍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 때, 그 짧은 순간만큼은 무언가 가능하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복권 한 장은 당첨도 아니고 꽝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얇은 종이 한 장이 품고 있는 그 가능성의 무게가, 천 원치고는 제법 묵직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서랍 위에 올려두고 나면, 이상하게 확인하기가 두렵다.
열어보면 끝난다. 꽝이면 가능성이 사라지고, 설령 소액 당첨이라 해도 그것은 내가 잠깐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숫자다. 그러니 확인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풍요롭다. 서랍 속 그 종이 안에는 아직 새 차도 있고, 작은 집도 있고, 사표를 내던지는 통쾌한 아침도 있다. 확인하는 순간, 그것들은 일제히 사라진다.
또 꽝일 것이다. 안다. 늘 그래왔으니까.
따지고 보면 복권이 당첨될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벼락을 맞을 확률과 비슷하다느니, 길을 걷다가 외계인을 만날 확률보다 낮다느니 하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산다. 나도 산다. 이번 주도, 지난주도, 그전 주도. 당첨된 적은 없는데 손이 먼저 계산대 쪽으로 간다. 이것을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어쩌면 복권을 사는 마음은 희망을 사는 마음이 아닐까.
정확히는, 희망을 꿈꿀 시간을 사는 것. 천 원을 내고 추첨일까지 며칠간, 혹은 확인하기 전 그 짧은 유예 동안, 나는 합법적으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이 삶 말고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 그것이 천 원짜리 복권이 파는 진짜 상품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늘 그렇게 살아왔다. 씨앗을 땅에 묻을 때 싹이 날지 확신할 수 없어도 묻는다. 편지를 부칠 때 답장이 올지 모르면서도 부친다. 사랑한다는 말을 꺼낼 때 받아줄지 알 수 없어도 꺼낸다. 결과를 모르면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희망의 본래 형태가 아닐까. 확실한 것만 한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계산이다.
복권은 그 희망의 가장 작고 가장 솔직한 형태다. 크게 포장하지 않는다.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천 원, 그리고 잠깐의 꿈. 이렇게 저렴하게, 이렇게 부담 없이,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서랍 위의 복권을 다시 바라본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찌르르릉 울어대는 새소리처럼, 파도가 모래를 흘리듯, 저 종이 한 장도 지금 이 순간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품고 있다.
꽝이어도 괜찮다. 어차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샀다는 것이 중요하다. 꽝이 될 것을 알면서도 천 원을 내밀었다는 것, 그 작은 행동 안에 아직 내가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세상이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희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첨될 리 없는 복권 한 장을 서랍에 넣어두고, 확인하기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그 마음. 어이없을 만큼 작고, 어이없을 만큼 얇은 종이 한 장. 그러나 그것을 사는 손길 안에는, 아직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희망이라면, 꽝이어도 나는 다음 주에 또 한 장을 살 것이다.
천 원은, 충분히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