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에 기대어 선 청춘(靑春)

수필

by산들강바람

공중에 매달린 타워크레인의 거대한 팔이 서편 하늘의 붉은 노을을 두 동강 내며 무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함마 드릴의 날카로운 굉음과 쇠파이프가 부딪히며 내는 비명 같은 쇳소리, 그리고 대지를 뿌옇게 뒤덮은 시멘트 분진(粉塵)들. 이곳은 거대한 문명의 골조가 매일같이 솟아오르는 이른바 ‘건설 현장’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인간이 땀방울을 쏟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 거칠고 투박한 공간 한구석에서, 내 시선은 문득 한 젊은이에게로 향해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는 이제 막 거푸집을 떼어내어 날것의 살결을 그대로 드러낸,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생(生) 콘크리트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거칠게 마감된 회색빛 기둥은 차갑고 단단했으며, 그 기둥에 기대어 선 사내의 어깨는 지독한 피로의 무게로 인해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노란색 안전모 아래로 흘러내린 땀방울이 이마에 묻은 시멘트 가루와 뒤섞여 그의 얼굴에 지저분한 이정표 같은 갈색 길을 내고 있었다. 얼룩진 작업복 위로 얹힌 주황색 안전조끼는 먼지를 뒤집어써 본래의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 청춘(靑春)의 얼굴에는 오늘 하루 동안 그가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노동의 고단함과, 아직도 이 거대한 빌딩 숲에서 그가 치러내야 할 남겨진 시간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우리는 흔히 청춘을 말할 때 푸른 봄날의 화사함이나 푸른 바다의 청량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차가운 콘크리트 숲에서 내가 마주한 청춘의 색깔은 거친 회색빛이었고,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무거운 침묵의 색이었다. 기둥에 기대어 거친 숨을 고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이 거대한 도시의 무게를 홀로 떠받치고 있는 고독한 아틀라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손에는 먼지투성이가 된 목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그 손가락 끝은 굵은 철근을 나르고 시멘트를 비벼대느라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있었다. 한 손에 쥐어진 플라스틱 생수병은 이미 반쯤 비어 있었는데, 물을 마시는 그의 목줄기가 크게 출렁일 때마다 그가 견뎌온 갈증의 깊이가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삼키고는 이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닿은 곳에는 그가 오늘 하루 동안 쌓아 올렸을 거대한 벽돌 더미와, 앞으로 채워 넣어야 할 수많은 빈 공간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건설 현장의 시계는 정직하지만 잔인하게 흘러간다.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인 새벽녘, TBM(Tool Box Meeting,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을 시작으로 노동의 톱니바퀴는 돌기 시작한다. 젊은 사내 역시 그 시동 소리와 함께 자신의 육체를 가장 거친 방식으로 소모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등짐을 지고 가파른 비계를 오르내릴 때마다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을 땀방울, 무거운 자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귀가 저려오도록 힘을 주어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먼지와 소음 속에서 오직 자신의 안전과 눈앞의 공정(工程)만을 생각하며 극도로 긴장해야 했을 시간들이 그의 깊은 눈망울 속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흥미롭게도 두 가지의 상반된 시간이 동시에 읽힌다. 하나는 이미 지나간 ‘힘든 하루’의 흔적이다. 눈가에 깊게 잡힌 주름과 입술 주변에 하얗게 일어난 각질, 그리고 피로로 인해 약간 충혈된 눈동자는 그가 오늘 하루 동안 지불한 노동의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대변한다. 물리적인 시간은 불과 몇 시간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온 세포를 긴장시키며 육체를 소모한 노동자의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보다 몇 배는 더 밀도가 높고 무겁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이마와 미간 사이에 얹혀 있는 ‘남아있는 일들’의 그림자이다. 오늘 분량의 작업이 끝나간다고 해서 노동이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면 또다시 거푸집을 짜야하고, 철근을 엮어야 하며, 콘크리트를 타설(打設) 해야 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완공되어 화려한 불빛을 밝히는 그날까지, 혹은 그의 삶 속에 예정된 또 다른 노동의 전장(戰場)이 마감될 때까지 그가 짊어져야 할 일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처럼 펼쳐져 있다. 그 막막함과 바카라임감이 젊은 노동자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것이다.


사내가 기대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가만히 바라본다. 거푸집을 떼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만져보면 아직 미미한 수화열(水化熱)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날것 그대로의 기둥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이 기둥은 앞으로 지어질 수십 층짜리 건물의 하중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골조이다. 기둥이 바로 서지 않으면 벽을 세울 수 없고, 지붕을 얹을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는 젊은 사내의 존재 자체가 바로 우리 슬롯, 혹은 한 가정의 거대한 ‘기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세상은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의 외관에 감탄하고, 통유리 너머로 새어 나오는 세련된 조명에 환호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이 차가운 시멘트 기둥이 존재하며, 그 기둥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청춘과 육체를 아낌없이 갈아 넣은 무명(無名)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젊은 사내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쉬고 있는 모습은, 단순히 힘에 부쳐 벽에 몸을 의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흘린 땀방울로 직접 세워 올린 존재와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너를 단단하게 세웠으니, 이제 너는 나의 고단한 등을 잠시만 받쳐다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사내와 기둥 사이에 이러한 무언의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고생하여 만든 결과물로부터 비로소 짧은 휴식과 위로를 얻는 노동자의 역설적인 순간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의 거대한 건설 현장과 매한가지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이라는 대지 위에 자신만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매일같이 거친 노동과 사투를 벌인다. 그것은 정신적인 노동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헌신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모두 얼룩진 작업복을 입고 있으며, 눈앞에 놓인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막막한 내일의 일들을 응시하며 살아가는 서툰 노동자들이다. 기둥에 기대어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 속에서, 나는 비단 그 한 사람의 피로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인 고독과 바카라임감을 목격하게 된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자, 현장의 야간 조명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주황색의 강렬한 불빛들이 거친 콘크리트 바닥과 철근 더미 위로 쏟아지며, 낮 동안 감추어져 있던 현장의 입체감과 음영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기둥에 기대어 있던 젊은 사내는 마침내 깊은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한 손에 쥐고 있던 생수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몸을 떼어낸 콘크리트 기둥 위에는 그가 흘린 땀방울의 흔적인지, 아니면 작업복에 묻어 있던 먼지의 자국인지 모를 희미한 얼룩이 남겨져 있었다. 사내는 노란 안전모를 한번 고쳐 쓰고는, 아직 끝내지 못한 남은 일들을 향해 다시금 거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지만, 기둥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 순간의 움직임만큼은 결코 유약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힘든 하루의 흔적과 남아있는 일들의 그림자는, 그를 주저앉히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음을 깨닫는다. 내일의 노동이 아무리 막막하고 거칠지라도, 오늘 세워 올린 단단한 기둥이 있기에 그는 다시 붓을 쥐듯 연장을 쥐고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갈 것이다.


현장을 빠져나오는 길, 멀리서 바라본 건물의 골조들은 어둠 속에서도 웅장하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저 거대한 구조물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만이 아니다. 방금 전 차가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던, 먼지투성이의 얼굴을 한 그 젊은 노동자의 땀방울과 숭고한 응시가 바로 저 건물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진짜 골조인 것이다. 그의 거친 손과 정직한 노동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요한 찬사를 보내며, 어두워진 도심의 불빛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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