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무게를 견디는 시간 : 단단함과 기다림에 관하여

수필

by산들강바람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은 세상의 소음이 한 꺼풀 벗겨진 듯 투명하다. 창문을 열면 어제까지 공중을 떠다니던 먼지들이 비에 씻겨 내려간 자리에, 묵직하고도 서늘한 대지의 숨결이 차오른다. 나는 습관처럼 포항의 해안선을 따라 난 방파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벼운 흙먼지를 일으키던 길은, 간밤의 비를 온몸으로 받아낸 뒤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말한다. 고난을 겪고 나면 삶이 더 견고해진다는 이 오래된 격언을, 나는 발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감을 통해 실감했다. 비에 젖은 흙은 서로의 몸을 바짝 끌어당기며 결속했고, 햇살이 내리쬐자 그 틈을 메워가며 단단한 지표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단단함은 결코 폐쇄적인 완고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번에 찾아올 더 큰 비를, 더 깊은 시련을 온전히 받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정돈하는 ‘준비된 강인함’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베란다 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을 살폈다. 며칠 전 심어두었던 씨앗이 드디어 단단해진 흙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사뭇 경이롭고도 애처로웠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연약한 새싹의 머리 위에는, 제 몸집보다 몇 배는 무거워 보이는 흙덩이가 큼지막하게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올라오느라 온 힘을 다했을 텐데,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에도 새싹은 여전히 흙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거인처럼 보였다. “아, 저 무거운 것을 어쩌나. 내가 살짝 치워줘야 할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손끝이 새싹을 향해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저 흙덩이는 새싹에게 방해물일까, 아니면 이 아이가 어둠을 뚫고 올라왔다는 생의 가장 찬란한 증거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새싹은 흙의 무게에 눌려 굴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무거운 흙을 지지대 삼아 줄기에 힘을 싣고 있었다. 흙의 압력은 새싹에게 ‘뿌리를 더 깊이 내려야 한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었고, 줄기는 그 압박을 견디며 더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흙을 이고 있는 그 찰나의 시간은 새싹이 진정한 식물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통과의례’였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머리 위에 얹힌 흙덩이를 볼 때마다 안달복달하며 손을 내민다. 자식의 앞길에 놓인 장애물을 미리 제거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혹은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려는 연인의 마음처럼, 우리는 타인의 성장에 필요한 ‘무게’를 자비라는 이름으로 가로채려 한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말한다. 스스로 흙을 털어내지 못한 새싹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꺾이고 만다고. 머리 위의 흙더미를 제 힘으로 밀어 올리며 줄기의 근력을 키운 새싹만이, 훗날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대지를 붙들고 서 있을 수 있다. 흙을 치워주고 싶은 나의 궁금증과 조급함은, 어쩌면 생명이 가진 자생력을 믿지 못하는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경외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장 정적인 활동이다. 새싹이 햇살을 머금어 몸집을 키우고, 바람에 몸을 흔들며 머리 위의 흙을 자연스럽게 땅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나는 그저 따뜻한 눈길로 그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얼마 전 다녀온 감은사지의 옛 탑이 떠올랐다. 그 거대한 돌탑들도 처음에는 정교하게 깎인 화려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이라는 ‘흙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금의 무디고 투박한 모습이 되었다.


감은사지의 텅 빈 절터에서 나는 처음엔 허망함을 보았다. 화려한 전각은 사라지고 돌덩이만 남았다는 사실에 쓸쓸해졌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 탑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불멸의 새싹’이었다. 탑의 거친 표면은 세월이 남긴 흉터가 아니라,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다져온 단단한 지문이었다. 그 옛날 문무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을 담아 세운 그 정신은, 겉모습의 화려함이 사라진 지금 오히려 탑의 뼈대 속에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탑도, 새싹도, 그리고 포항의 단단한 땅도 모두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월의 허망함은 겉껍데기를 가져갈 뿐, 그 속에서 기다림으로 빚어낸 진정한 화려함은 결코 앗아가지 못한다.


나의 지난겨울도 그랬다. 심혈관 질환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기계음에 의지하던 시간, 가족과 헤어져 홀로 맞이했던 그 시린 공기는 내 인생에 얹힌 가장 무거운 흙덩이였다. “나에게도 봄이 올까?”라는 의문은 흙 속에 갇힌 씨앗의 비명과 같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포항의 단단해진 땅을 밟으며 나는 비로소 이해한다. 그 시린 겨울과 병실의 고독이 나를 짓누른 것은 나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라는 생명의 뿌리를 더 깊게 내리게 하기 위한 대지의 배려였다는 것을. 나는 그 무거운 흙을 이고 여기까지 왔고, 이제야 비로소 햇살 아래 고개를 내민 새싹이 되었다.


이제 나는 내 머리 위의 흙을 억지로 털어내려 하지 않는다. 나를 눌렀던 병마의 기억도, 이별의 아픔도, 이제는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거름이 되었음을 안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치면, 그 무거웠던 기억들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내 발치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온전한 초록의 잎을 펼치며, 내 생의 가장 눈부신 봄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해진 땅 위로 내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는다. 이 발자국은 내가 오늘을 견뎠다는 기록이며, 내일 다시 부드러워질 땅에 새기는 희망의 약속이다. 흙을 뚫고 나오는 모든 생명에게,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무게를 견디며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는 모든 영혼에게, 따뜻한 가을 햇살을 빌려 안부를 전한다.


“그 무거운 흙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고요하게 기다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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