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8장: 알고리즘의 사형 선고
"이 자식이 끝까지...!"
박 형사의 얼굴이 짐승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내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액정이 거미줄처럼 갈라졌지만, 라이브 방송의 붉은 'LIVE' 표시는 여전히 명멸하며 진실을 실시간으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박 형사가 당황한 틈을 타 침대 옆 무거운 스탠드를 휘둘렀다. 깡- 하는 불쾌한 금속음과 함께 그가 비틀거렸다. 나는 노트북을 챙겨 모텔 방을 뛰쳐나갔다.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는 와중에도 나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하지만 희망의 수명은 1분을 넘기지 못했다.
[운영정바카라 위반으로 해당 라이브 방송이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사유: 인공지능(AI)에 의해 생성된 가짜 정보(Deepfake) 유포]
허탈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거대한 권력의 손길은 내 손가락 끝보다 빨랐다. 강 회장의 커넥션은 플랫폼의 가이드라인마저 주무르고 있었다. 대중에게 내 진실은 '정교하게 제작된 음해용 영상'으로 낙인찍혔다. 이제 나는 살인 용의자를 넘어, 여론을 조작하는 '디지털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렸다.
폐건물 지하로 숨어든 나는 노트북을 켰지만, 세상은 이미 나를 향해 모든 문을 잠가버렸다. 구글, 인스타그램, 뱅킹 앱까지. 내 모든 계정은 '보안상의 이유'로 차단되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는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박 형사는 이제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합법적으로 사살할 명분과, 내 모든 기록을 지워버릴 지우개를 든 사냥꾼이었다.
"아무도... 아무도 안 믿어."
그때, 지독한 증오 속에서도 다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속이고 기억을 지우려 했던 여자. 하지만 동시에 내가 피를 흘릴 때 내 손을 잡고 울어주었던 유일한 온기. 이 정교한 연극 속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각본에 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내 수사관적인 직감이 본능적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나는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 여보세요?"
다영의 목소리였다. 잔뜩 가라앉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
"나야."
"준호야! 너... 너 지금 어디야? 괜찮은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경악과 안도는 연기가 아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박 형사가 범인이야. 강 회장이랑 한패라고. 다영아, 네가 날 살리려고 기억을 지운 거 알아. 하지만 지금은 그 약이 날 죽이고 있어. 박 형사가 날 사살하려 해."
수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준호야, 잘 들어. 나 지금 옆방에 박 형사 사람들이 있어서 이 전화받는 것만으로도 목숨 걸고 있는 거야. 제발... 한 번만 더 나를 믿어줘. 지금 당장 마포구에 있는 '성모 요양원'으로 가. 거긴 최 박사님이 관리하는 곳이라 박 형사도 함부로 못 들어와."
"널 어떻게 믿지?"
"믿지 마. 대신 네 기억을 믿어. 넌 거기 온 적이 있어. 거기 네가 숨겨둔 게 있단 말이야!"
전화를 끊고 빗속을 걷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영이 말한 요양원이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실험실일지, 아니면 정말 유일한 피난처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박 형사가 내 뒤를 밟고 있는 이상, 내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약 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택시를 잡았다.
"성모 요양원... 빨리요."
요양원의 낡은 간판이 보였다. 입구에 서 있는 노란 우비의 실루엣. 다영이었다. 그녀는 내가 내리기도 전에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았다. 차가운 빗물 사이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지독하게 낯설고도 그리웠다.
"준호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녀의 어깨너머로 요양원의 어두운 복도가 보였다. 그곳은 왠지 모르게 사고 전 72시간 중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장소 같은 기괴한 기시감을 풍기고 있었다.
"다영아, 나 여기... 온 적 있지?"
내 질문에 다영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나를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안으로 들어가. 박 형사가 곧 올 거야."
요양원의 철문이 닫히고 쇠창살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피난처가 아니라, 내가 잊었던 진실이 가장 잔인하게 보관된 '기억의 저장소'라는 것을.
제9장: 배신의 그림자 (Shadow of Betrayal)
성모 요양원의 복도는 지독하게 어두웠다. 듬성듬성 켜진 형광등은 전압이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신경질적인 소음을 내고 있었다. 다영은 내 손을 잡고 302호실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빗장을 거는 그녀의 손길이 익숙했다.
"이제 말해. 여긴 어디고, 넌 대체 누구야? 간호사 코스프레는 이제 지겨워."
내 차가운 말에 다영이 멈춰 섰다. 그녀는 노란 우비를 벗어던졌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예전의 다정한 연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벽면에 걸린 낡은 달력을 젖히고 그 뒤에 숨겨진 작은 금고를 열었다.
"내 본명은 김이수. 강민수 회장 아들의 비공식 비서였어. 그리고... 20년 전 강 회장의 비자금 세탁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우리 아버지의 딸이기도 하고."
그녀가 내민 서류에는 그녀의 진짜 신분증과 함께 강민수와 나, 그리고 그녀가 함께 찍힌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날카로운 눈매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 네 기억을 지우자고 제안한 건 나였어. 최 박사는 널 당장 처분하려 했지만 내가 설득했지. 널 '살인마'라는 가짜 인격 속에 가둬서라도 살려둬야 한다고. 강 회장의 눈을 속이려면 그 방법뿐이었으니까."
"날 위해서라고? 내 뇌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나는 그녀의 멱살을 잡듯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준호야, 넌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었어. 넌 강민수가 빼돌린 비자금 장부를 디지털화해서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준 '설계자'였어. 네가 기억을 잃은 건 사고 때문이 아니야. 그들이 네 머릿속에 든 '비밀번호'를 알아내지 못하게 하려고, 네 스스로가 최 박사와 거래하며 기억의 문을 잠갔던 거라고!"
머릿속에서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다. 내가 스스로 기억을 지웠다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가 침대 밑 바닥재를 뜯어내자 낡은 보이스 레코더 하나가 나타났다.
"강민수는 강 회장의 친아들이 아니야. 비자금 관리를 위해 입양된 '살아있는 금고'였지. 그가 반기를 들자 강 회장이 직접 처리한 거야. 넌 그 현장을 기록했고, 그 데이터는 지금 네가 가진 SD 카드가 아니라... 네가 만든 어떤 웹사이트의 소스 코드 안에 숨겨져 있어."
그때, 요양원 복도 끝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박 형사와 그의 수하들이 요양원에 들이닥친 것이 분명했다.
"김다영! 아니, 김이수! 준호 데리고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문 열어!"
박 형사의 목소리는 광기에 차 있었다. 다영은 내 손에 레코더를 쥐여주며 나를 방구석의 좁은 배기구 쪽으로 밀어 넣었다.
"준호야, 이제 알겠지? 난 널 사랑해서 지킨 게 아니야. 내 복수를 완성할 유일한 열쇠가 너였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난 여기서 시간을 벌어야 해. 이 레코더에 비자금 장부로 가는 마지막 경로가 들어있어. 박 형사는 이걸 찾으러 온 거야."
다영이 문 앞에 섰다. 그녀는 내 서재에 있던 커터칼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지독하게 외로워 보였다.
쿠광!
문이 부서지며 박 형사가 들이닥쳤다. 나는 배기구 좁은 틈새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박 형사는 다영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이준호 어디 있어? 레코더는?"
"벌써 나갔어. 네놈들이 절대 못 찾는 곳으로."
다영이 비웃으며 박 형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박 형사는 이를 갈며 총구로 다영의 이마를 눌렀다.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강 회장님이 네 정체를 알면 네 아비 곁으로 바로 보내주실 텐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안의 레코더가 살을 파고들었다. 다영의 정체가 배신자였든, 복수귀였든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나를 대신해 지옥의 입구에 서 있었다.
"준호야, 뛰어!"
다영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나는 배기구 통로를 따라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타격음. 나는 눈물을 훔칠 시간조차 없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내가 설계한 그 웹사이트, 픽셀 하나하나 속에 숨겨둔 강 회장의 목줄을 찾아내 세상을 향해 터뜨리는 것. 10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닌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