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닐봉지의 가득 찬 양손: 삶의 무게를 쥔 손

수필

by산들강바람

가을 햇살이 스러져가는 무렵, 거리는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그 흐름 속에서 내 시선이 멈춘 것은 한 노인의 뒷모습이었다. 굽은 등, 메마른 어깨, 그리고 양손에 꽉 쥔 가득 찬 검은 비닐봉지. 그 봉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노인의 거친 손등 위로 힘줄이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 세월이 새긴 주름과 굳은살은, 그 봉지가 단순한 장바구니가 아니라 오랜 인고(忍苦)의 시간이 쌓인 삶의 무게임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저녁을 채울 소박한 반찬거리, 손주에게 줄 간식, 아니면 하루를 버티게 해 준 생필품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봉지가 노인에게 생존의 수단이자, 가족을 향한 조용한 헌신(獻身)의 상징이라는 사실이었다. 검은 비닐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필요와 욕망이 담기는 그릇이었고, 노인의 양손은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는 삶의 증인(證人)이었다.


노인의 걸음은 더디고 위태로웠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검은 비닐봉지가 힘겹게 흔들렸고, 노인의 몸은 그 반동에 맞춰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마치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는 낡은 배처럼. 그렇게 한참을 걷던 노인은, 공원 한구석의 낡은 벤치 앞에 멈춰 섰다. 양손의 봉지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벤치에 주저앉았다.


휴식의 순간이었다. 노인은 깊은숨을 내쉬며 굽은 허리를 폈다. 검은 비닐봉지는 벤치 옆에 나란히 놓여, 오랜 친구처럼 묵묵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메마른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봉지 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지친 하루를 마친 안도감과,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비장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그 짧은 순간, 노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지나온 세월의 아픔, 다가올 내일의 불확실함, 아니면 그저 따뜻한 저녁밥 한 끼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인은 다시 숨을 고르고, 양손을 뻗어 검은 비닐봉지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몸을 일으켰다. 잠시 내려놓았던 무게를 다시 짊어지는 순간, 노인의 뒷모습은 아까보다 한결 단단해 보였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위태로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찬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왜 다시 서둘렀을까.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의 의무 때문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노인이 다시 길을 나섰다는 사실, 자신의 삶을 끝까지 바카라임지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모두의 삶도 결국 이와 다르지 않다. 각자 양손에 가득 찬 검은 비닐봉지를 쥔 채, 삶의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다. 그 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든,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노인의 굽은 뒷모습에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조용한 경의(敬意)를 느꼈다. 작아도 괜찮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검은 비닐봉지는 이제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노인의 걸음은 여전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삶의 숭고함(崇高)을 배웠다. 묵묵히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평범한 하루의 숭고함을.


나 또한 내 양손에 가득 찬 검은 비닐봉지를 꽉 쥔다.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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